탁월한 트릭과 반전, ‘환상’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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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탁월한 트릭과 반전,  ‘환상’으로의 초대

<마루타마치 르부아> 
마도이 반 지음·김예진 옮김·학산문화사·1만2000원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공의 경계> 등 라이트 노벨을 정의한다면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엔터테인먼트 소설’ 정도가 된다. 시작은 청소년 대상이었지만 점차 확대되어 30대 이상도 읽는 소설이 되었고, 마이조 오타로와 사쿠라바 카즈키 등 라이트 노벨 출신 작가가 각종 문학상을 받으며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서구로 본다면 <트와일라잇> 이후 중요한 트렌드가 된 영 어덜트 소설과 비슷하다.

판타지, 학원물, SF, 역사물, 러브코미디, 호러 등 수많은 장르를 포괄하는 라이트 노벨은 현실을 다룰 때에도 비현실적인 요소를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남자 주인공이 미녀들로 둘러싸이는 할렘물도 그렇고, 외계인이나 귀신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기도 하고, 엄청난 천재와 미남미녀가 상시로 출몰한다. 소위 ‘만화적 상상력’이라고 할 만한 설정, 캐릭터, 이야기가 태연하게 혹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흘러간다. 그런 점에서 라이트 노벨은 애니메이션 감각으로 쓴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라이트 노벨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로 축조된 상상의 세계다. 비현실적인 장치와 기교를 통해 독자를 끌어당긴다는 점에서는 본격 미스터리와도 상응한다. 라이트 노벨의 선두 주자인 니시오 이신의 데뷔작 ‘헛소리 시리즈’ 1편인 <잘린 머리 사이클>은 절해고도에 은둔하는 재벌가의 딸이 과학, 회화, 요리, 점술, 공학의 천재 여성을 초대한 순간 밀실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설정만 봐도 비현실적이지만,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말로 만들어내는 ‘현실’이다. 독자가 그럴듯하게 느끼는, 앞뒤가 들어맞는 논리가 있다면 공감한다. 다른 세계이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전혀 다른 모습이건 상관없는 그럴듯한 이야기.

마도이 반의 <마루타마치 르부아>에도 절세의 미남미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와 모든 것을 속이는 사기꾼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배경은 교토. 갓 대학에 들어간 시로사카 론고는 할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그가 서는 곳은 법정이 아니라, 사적으로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쌍룡회’다. 

역시 대학생인 타츠야는 선배의 부름을 받아 론고를 도와주러 쌍룡회에 나간다.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론고는 처음 만난 루즈라는 여성과 함께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본 사람도,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 론고가 그 사실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명예도 잃고, 가문의 권리도 잃게 된다. 그러니까 <마루타마치 르부아>는 론고의 무죄를 증명해야만 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하지만 쌍룡회는 법정이 아니다. 합법적인 증거만이 아니라 때로는 거짓이나 조작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그럴 듯 하기만 하다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 라이트 노벨이 그렇듯이. 검사 역할을 하는 타츠기 가문의 수장 랏카는 ‘이 혓바닥은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바꾸는 데 사용’한다고 말한다. 

타츠야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둘 다 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꿈을 보여주지. 하지만 나는 반대야. 말을 흐트러뜨리고 꿈에서 깨우는 자거든.’ <마루타마치 르부아>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는, 말을 통해서 꿈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깨어나도 깨어나도 꿈속이라니, 그건 악몽이나 다름없지만 이렇게 쾌활한 기분으로 눈을 뜬 걸 보면, 마지막에 구원이 있으면 악몽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가 보다’라는 말처럼, 라이트 노벨은 ‘환상’으로 독자를, 고단한 현실을 위무하는 소설인 것이다. 

그리고 <마루타마치 르부아>는 본격 미스터리로서도 탁월한 트릭과 반전을 보여준다. 비현설적인 설정만 독자가 받아들여준다면 ‘일체의 비논리성을 배제한 지적 유희’로서 대단히 즐겁고, 지적인 자극도 주는 작품이다.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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