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화가 이쾌대가 열망한 ‘보편적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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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해방 68주년을 맞는다. 광복절을 맞이하는 마음은 언제나 더 없이 경건하다. 광복절은 바로 우리 현대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68년 전 이맘 때,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8일 소련은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대일본전에 참전했다. 8월 10일 일본은 연합국에 항복의사를 전달하고, 닷새 후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우리는 그토록 염원하던 해방을 이뤘다.

해방은 주권의 회복이자 국민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격동의 현대사였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은 격화됐다. 냉전의 그늘이 짙어진 가운데 1948년 8월 15일 민주공화국이 선포됐다. 그리고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분단은 더욱 고착화됐다. 참으로 험난한 나라 세우기 과정이었다.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국가를 성취했지만 통일은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해방공간에서 이뤄진 예술적 작업들 가운데 내 시선을 끈 한 작품이 진보적 화가인 이쾌대(李快大)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8~49)이다. 이쾌대는 오랫동안 잊힌 화가였다. 월북화가였기 때문이다. 1988년 월북 예술가 해금조치 이후 그는 새롭게 주목받아 왔다. 지난 6월 말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구미술관에선 그의 예술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는 경상북도 칠곡 태생이다.

이쾌대,<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8~49) | 경향자료사진

이쾌대,<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1948~49) | 경향자료사진

1994년 미술잡지 ‘가나아트’는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원들과 근대미술 관련 저자들에게 추천을 의뢰해 ‘한국 근대 미술가 10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 이쾌대는 박수근, 김환기, 오지호, 이인성, 이중섭 등과 함께 선정됐다. 월북한 화가였지만, 이쾌대의 작가적 역량은 이렇게 높이 평가됐다. 해금조치 이후 우리 앞에 나타난 <2인 초상> <군상> 연작 등 월북하기 전까지 그가 남긴 작품들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준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은 이쾌대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을 나는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었던 전시회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근대를 묻다’에서 관람했다.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에 이 그림이 소개됐는데, ‘근대를 묻다’라는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한국의 근대는 세계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출발하고, 그 사이를 진동해 왔다.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내가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해방을 맞이한 예술가의 자의식 내지 정체성을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선명히 드러낸다는 데 있다. 자화상의 대가인 렘브란트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화가에게 자화상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자의식의 표현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이쾌대의 작품은 자의식과 자기성찰을 동시에 보여준다.

중절모를 쓰고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화가는 왼손엔 서양 화구인 팔레트를 들고 오른손엔 한국화를 그리는 모필을 들고 있다. 화가의 뒤로는 전형적인 한국 산야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세 여인이 들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화가의 두 눈이 이쪽 감상자를 당당히 응시하고 있는 작품이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다. 푸른 두루마기와 파란 하늘은 화가가 가졌던 당당한 의지,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적 보편’ 또는 ‘보편적 한국’을 추구한 이쾌대의 문제의식이다. 돌아보면, 해방 68년을 맞이한 현재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기존 발전모델의 근본적 검토, 다시 말해 권위주의 시대를 이끌어온 국가 주도 발전모델과 외환위기 이후 도입된 시장 주도 발전모델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모델의 창출이다.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새로운 국가 발전을 이끌기 위해선 그동안 우리 사회 발전모델을 이뤄온 추격 모방 전략이 아닌 표준 창출 전략을 고민하고 검토해야 한다.

산업화에 뒤처진 후발국가인 우리 사회는 선진국 발전모델의 모방 전략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단선적 발전논리에 따른 모방적 근대화 논리 속에 앞만 보고 돌진해온 압축 발전 과정은 다름 아닌 성찰성과 자생성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해방은 주권의 회복이자 국민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격동의 현대사였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은 격화됐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서대문서에서 출옥한 독립투사들과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 경향자료사진

해방은 주권의 회복이자 국민국가 건설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린 것은 격동의 현대사였다. 미군정이 시작되고,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은 격화됐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서대문서에서 출옥한 독립투사들과 시민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 경향자료사진

문제는 이러한 ‘빠른 추격자’ 전략이 지구적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침체, 외부 시장에의 과도한 의존, 그리고 중국의 추격 등과 맞물려 자립적 성장동력의 취약성을 드러내 왔다는 점이다. 모방을 통한 경쟁 추구의 방식은 혁신을 취약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내생적 발전과 역동적 성장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돼 왔다. 이 점에서 경제민주화 추진, 복지국가 구축과 함께 신성장 동력 발굴은 우리 사회 발전모델의 재구성에서 매우 중차대한 과제다.

해방 70주년으로 가는 현재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적 특성과 세계적 특성이 새롭게 결합한 ‘한국식 표준’의 창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에 진입한 두 사례는 일본과 아일랜드인데, 두 나라 모두 ‘일본식 표준’과 ‘아일랜드식 표준’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현재 우리 사회는 모방에 의한 산업화나 민주화가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의 일방적 강요나 이식이 아닌, 우리 사회 현실에 걸맞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발전모델의 표준 창출을 요구받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으로 올라간 이쾌대는 결국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념을 좇아 북한을 선택했지만 오랫동안 남과 북 모두로부터 망각됐다. 그러다 월북 예술가가 해금되고 유족이 몰래 간직해온 작품들이 공개되면서 20세기 전반의 우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새롭게 재조명돼 왔다.

오랜만에 도판으로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다시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화폭 안에 존재하는 한국적 현실과 서양적 방법은 바로 내가 지금 공부하는 사회학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구, 안창호 등을 포함한 유명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한반도와 동북아 곳곳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숱한 무명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희생을 통해 우리는 해방을 이뤘다. 해방의 궁극적 목표는 올바른 나라 세우기와 나라 만들기다. 그 나라는 이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신성장 동력 등을 포함한 한국적 표준의 창출이라는 엄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한 주는 광복절이 주는 의미를 차분히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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