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운명’과 음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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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서 예술로서의 음악을 대표하는 단 한 곡을 들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예술이 갖는 다양성을 무시하는 초등학생 수준의 호기심이겠지만, 간혹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마도 그것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5번 교향곡이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바흐나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의 곡을 떠올리고, 다른 이들은 비틀스나 봅 딜런, 김민기의 노래를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근대 이후 최고의 음악가로 베토벤이 칭송되고 5번 교향곡이 그의 가장 뛰어난 곡으로 지목되는 만큼, 5번 교향곡은 음악을 대표하는 곡으로 꼽힐 만하다.

5번 교향곡은 흔히 ‘운명’ 교향곡이라 불린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비서인 안톤 쉰들러가 베토벤에게 제1악장 서두의 주제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고 했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5번 교향곡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일본과 한국에만 통용될 뿐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여하튼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5번 교향곡의 도입부는 운명과도 같은 삶의 비장미를 느끼게 한다.

음악은 인간에게 공감과 위로와 치유를 선사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음악과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상처받은 영혼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 사진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한 음악다방. | 경향자료사진

음악은 인간에게 공감과 위로와 치유를 선사한다. 1970년대와 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음악과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은 상처받은 영혼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 사진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한 음악다방. | 경향자료사진

‘운명’은 1807~1808년에 작곡됐다. 베토벤은 6번 교향곡 ‘전원’도 이 시기에 함께 작곡했다. 비장한 선율의 ‘운명’과 아름다운 선율의 ‘전원’을 동시에 작곡할 만큼 그의 역량은 천재적이었다. 그

는 하이든, 모차르트로 이어진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낭만주의 음악을 열었다. ‘운명’은 절제와 균형이라는 고전주의적 이상과 인간에게 내재된 비애와 그것을 넘어서려는 낭만주의적 열정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운명’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음악을 들을 때 중요한 것은 첫 느낌이다. 현악기들과 클라리넷 소리로 시작하는 제1악장의 도입부는 어린 내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음악을 이루는 세 요소는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인데 ‘운명’만큼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가 적절히 결합된 곡을 찾기 어렵다. 음악사에서 너무 유명한 곡은 그 유명세 때문에 정작 관심을 적게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운명’은 그러한 사례인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동요나 ‘운명’과 같은 곡으로 시작한 개인적인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면, 50여년을 살아오면서 음악은 가장 가까운 벗들 중 하나였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음악을 정말 소중하게 느낀 때는 유학 시절이었다.

스물다섯의 가을 어느날 도착한 독일 빌레펠트대학은 무척 낯설었다. 니클라스 루만 교수와 클라우스 오페 교수 등 당시 빌레펠트대학이 제공하는 사회학 프로그램은 훌륭했지만, 그렇다고 종일 내내 공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면서 워크맨으로 듣던 음악은 더없는 위로를 안겨줬는데, 베토벤의 음악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자본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음악의 취향이 달라진다. 

이 주장을 우리 사회에 적용할 경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격렬한 산업화 과정에서 아직 계급이 견고하게 구조화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는 계급에 따른 문화자본의 차이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노래를 불렀다. 문화자본에 따른 취향의 미세한 차이보다는 오히려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유행이 더 큰 영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를 포함한 우리 세대는 특히 그러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시간에 클래식을 듣고 배웠지만, 당시 즐겨 듣던 것은 팝송이었다. 1970년대 크게 유행했던 존 덴버와 엘튼 존 노래는 물론 앞선 세대들의 우상이었던 비틀스와 봅 딜런 노래를 무던히도 들었다. 

당시 청소년들에게 영향력이 컸던 것은 라디오 심야방송이었는데, 문화방송의 ‘별이 빛나는 밤’ 등에서는 유행하던 팝송들을 반복해 틀어줬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취향이 다소 변화됐다. 선배들로부터 민중가요를 배우면서 김민기, 정태춘, 서울대 노래동아리 메아리 등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그리고 클래식을 마치 공부하듯 배우면서 듣게 됐다. 20대 젊은 나이 탓이었던지 특히 재즈의 자유로운 선율에 매혹되기도 했는데, 듀크 엘링턴, 엘라 피츠제랄드, 마일스 데이비스, 키스 자렛 등의 노래와 연주를 좋아했다. 이러한 취향은 유학 시절과 귀국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초상. | 경향자료사진

루트비히 판 베토벤 초상. | 경향자료사진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음악의 힘이다.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듣다 보면 “음악이 언젠가 죽게 될 당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나요?”(Can music save your mortal soul?)라는 구절이 나온다.
 
다소 과장스런 표현이지만, 음악이 인간에게 공감과 위로와 치유를 선사하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음악은 그 형식이 무엇이든지 외로움을 덜어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준다.

물론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른 만큼 음악에 대한 선호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나치게 상품화된 댄스뮤직도 있고, 폭력성이 과도한 랩뮤직도 있고, 관용을 아무리 발휘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음악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고급과 저급, 대중음악과 클래식음악의 이분법은 많은 경우 그릇된 것이며, 개인들이 선택하는 음악적 취향은 존중돼야 한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그것이 트로트면 어떻고 민중가요면 어떻고 또 클래식이면 어떤가? 듣는 이에게 공감과 위로와 평화를 안겨준다면 그것으로 이미 음악은 자신의 의미를 성취한 것 아닌가? 

젊은 시절 베토벤은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음악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의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운명’을 위시해 베토벤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던 때는 유학 시절이었다. 한밤중에 학교 도서관에서 기숙사까지 혼자 터벅터벅 걸어오는데 귀에 꽂은 워크맨을 통해 울려 퍼지던 베토벤 곡들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니가 연주한 ‘운명’을 들으면서 ‘이제 곧 자유로운 변주곡의 제2장이 시작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던 그때 음악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요즘도 멀리 여행을 갈 때면 MP3 플레이어에 듣고 싶은 곡들을 챙기는 자신을 돌아볼 때 음악은 여전히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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