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와 시대정신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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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공부한 지 35년이 된다. 대학교 1학년인 1979년 가을학기에 사회학을 처음 알게 됐다. 열아홉 나이에 배웠던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사회학의 기본 성격은 여전히 내 생각의 중추를 이룬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한, 우리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은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학을 포함해 예술은 인간 탐구의 한 형식이자 인간 유희의 한 방식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탐구와 유희는 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개인적이라 함은 어떤 예술이든 개인적 상상 및 체험에 기반해 창조된 것임을 뜻한다면, 사회적이라 함은 인간의 사회적 성격을 고려할 때 그 상상 및 체험이 허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라는 구체적인 공간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며 또 소멸하는 것임을 함축한다.

이러한 공간에 시간이라는 변수를 도입하면 그것은 시대가 되고 역사가 되며, 예술가는 이러한 시대와 역사에 대한 자기 감성과 사유를 갖게 된다. 이 점에서 예술사에서 우뚝 선 거장들은 다름 아닌 자기 시대와 자기 역사에 맞선 이들이다. 

예술가가 자기 시대에 맞선다는 것은 시대가 갖는 사회적 특징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뜻한다. 근대 이후 등장한 예술가들 가운데 자기 시대에 대한 탐구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앞선 이를 찾기는 어렵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한편의 비극1>, 김수용 역, 책세상. / 책세상 제공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한편의 비극1>, 김수용 역, 책세상. / 책세상 제공

예술과 사회를 마무리하는 이 글에서 괴테를 선택한 것은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 한 편의 비극>(Faust: Eine Tragodie) 1·2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서양 문학사에서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 

<파우스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들은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정도일 것이다. 이 가운데 <파우스트>가 돋보이는 것은, 단테·셰익스피어·세르반테스와 달리 괴테가 근대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에 살았고, 이 시대에 대한 자기 인식을 <파우스트>에 담았다는 점이다.

괴테가 산업혁명과 함께 서구 모더니티를 만든 프랑스대혁명을 목격한 것은 그의 나이 마흔 살 때였다. 서구 모더니티의 역사에서 프랑스대혁명이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이 갖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는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결정적 전환점을 이뤘다는 데 있다. 

<파우스트>가 빛나는 것은 이 새로운 체제의 시대정신과 인간정신을 탐구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제자인 바그너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그대들이 시대정신이라 부르는 것은, / 실로 매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 저자(著者) 양반들 자신의 정신이라네 / 그래서 실로 한탄할 만한 일들이 종종 벌어지지!”

“그러나 이 세계! 인간의 마음과 정신! / 모두가 이것들에 대해 무언가 알고 싶어합니다.”

주인공 파우스트의 탄식에 대한 바그너의 답변이다. 프랑스대혁명에 대해 괴테는 양가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편에선 낡은 앙시앙 레짐의 극복에 적극 동의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혁명의 급진적 전개과정을 크게 우려했다. 이러한 양가적 판단은 독일 부르주아 계급으로 태어나 일찍이 정치적·예술적 성공을 거둔 그의 삶을 돌아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파우스트>가 위대한 것은, 이런 양가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괴테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했다는 데 있다. 모더니티란 한마디로 신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인 시대,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한 시대다. 

문제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파우스트> 1·2권을 통해 주인공 파우스트가 벌이는 모험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이 갖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는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결정적 전환점을 이뤘다는 데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빛나는 것은 이 새로운 체제의 시대정신과 인간정신을 탐구했다는 점이다. 들라크루아, 1830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260×325㎝. 루브르미술관 소장 / 경향자료사진

프랑스대혁명이 갖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의미는 낡은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는 결정적 전환점을 이뤘다는 데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빛나는 것은 이 새로운 체제의 시대정신과 인간정신을 탐구했다는 점이다. 들라크루아, 1830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260×325㎝. 루브르미술관 소장 / 경향자료사진

괴테가 우리에게 제시한 답변은 삶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완성된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주인공 파우스트는 새롭게 얻은 삶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유토피아는 주어진 게 아니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바로 그러한 노력과 분투의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게 새로운 모더니티의 시대정신이자 인간정신이라는 사실이 괴테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한 메시지일 것이다.

문제는 현재다. 괴테가 꿈꿨던 그 모더니티에 담긴 과정으로서의 유토피아가 이제 역사의 한 순환을 마감하고 있다. 모더니티는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사회를 열어 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그 도전은 전쟁·불평등·인간소외·환경파괴 등과 같은 모더니티의 그늘이며, 이러한 그늘을 넘어서는 것은 현재 인류사회에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2014년 현재 우리 사회에 부여된 이중적 과제다. 그 하나가 일국적 차원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모더니티의 완성 과제라면, 다른 하나는 지구적 차원에서 모더니티의 그늘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라 명명하든 지속가능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열어야 하는 모더니티의 극복 과제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이 일찍이 말한 ‘모더니티의 이중 과제’에 대한 탐구는 여전히 유효한 인문·사회과학과 예술의 사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소중한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네. / 그러나 삶의 황금 나무는 초록색이지.”

<파우스트>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언명 중 하나인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이다. 이 말에는 그 어떤 이론과 사상, 시대정신이라 하더라도 삶을 선행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과연 이 땅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물론 예술가들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모더니티의 이중 과제에 어떤 생각을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우리는 좀 더 삶으로, 현실 속으로, 시대의 과제 앞으로 당당히 걸어가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자들은 물론 예술가들의 우리 시대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더 없이 중요한 시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그동안 ‘김호기의 예술과 사회’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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