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전도사’로 변신한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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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 잘 살겠다는 이들이 공직자 되니 권력형 비리 생겨나는 것”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만은 아니다. 구태나 관습을 깨뜨리는 파격에서 우리는 신선함을 느낀다. 요즘 김성호 재단법인 행복세상 이사장의 행보는 주위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김폴레옹’ ‘작은 거인’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강직한 검사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부정축재사건, 수서비리사건, 공군 참모총장 인사비리, 율곡사업 비리,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사건 등 대형 사건을 수사했고 법무장관·국정원장을 역임했다. ‘서슬퍼런’ ‘물불 안 가리는’ 등의 강직한 이미지로 알려진 그가 공직 퇴임 후 선택한 것은 대형 로펌이 아니라 ‘행복세상’이다. 요즘 그는 이곳에서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고 협동조합을 돕는 일에서 새로운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온나라가 사회갈등과 범죄로 지뢰밭 같은 요즘, 김성호 이사장을 만나서 행복의 향기라도 맡고 싶어 행복세상 사무실로 찾아갔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행복 전도사’로 변신한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왜 다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2007년 법무부 장관 재임 때도 방문취업제, 이민행정 콜센터 제도를 시행하는 등 점차 다문화사회가 되어가는 우리나라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을 했죠. 2011년 말 기준으로 국내 총 외국국적 체류자가 140만명에 이르고, 결혼이민자는 14만5000명에 이릅니다. 국제결혼도 3만건으로 전체 혼인의 9%를 차지합니다. 지방 학교에 가면 학생의 40%가 다문화 자녀인데 아마 더 늘어날 겁니다.

다문화는 단순히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 늘어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다문화 가정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라 복지 차원에서만 생각하는데, 전 사회안전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2011년 노르웨이에서 다문화주의를 반대하는 극우파 브레이비크가 총기를 난사해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나, 프랑스·호주 등에서 발생한 이민자 폭동 문제를 보세요. 외국인 노동자, 조선족 등이 연관된 여러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타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문화 자녀인 ‘리틀 싸이’ 어린이는 그런 편견으로 상처를 받고 있죠. 이런 사회적 갈등을 지금부터 잘 조절하지 않으면 10~20년 후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문화와 관련해서는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등 각 부처에서 업무를 맡고 있고 각 지자체에서도 여러 사업을 하던데요. 예산도 많고요.
“안타까운 점은 다문화 관련 예산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실제로 효율적인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 부처마다 다문화 관련 예산으로 보여주기식 행사를 하거나, 지원사업을 남발하는 탓에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중복지원되고 예산이 낭비되는 등의 문제가 많아요. 컨트롤타워가 없어 정책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통합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가수 초청해 공연하고, 친정 보내기 등으로 다문화가정의 갈등과 고통이 해결되겠습니까.”

요즘은 특히 다문화가정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심해 왕따나 악성댓글 등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던데요.
“대개 편견이란 잘 모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충분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으니 본능적으로 나쁜 감정, 부정적 평가가 생기죠. 더구나 편견은 집단적 현상으로 나타나 더 무섭습니다. 우리나라는 단일민족, 단일국가란 자부심을 오랫동안 가져와서 이런 편견이 좀 더 강하죠. 그런데 정말 우리가 단일민족일까요? 제가 김해김씨인데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이 허황옥이라고 인도 출신입니다. 그러고보면 저도 다문화가정 출신 아닌가요? 이런 편견을 극복하려면 왕도가 없어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홍보가 꾸준히 이어져야죠. 무엇보다 계속해서 다문화 문제를 사회적 담론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현재 다문화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안하신다면.
“다문화에 대한 대처방법으로는 모두 녹여 하나로 만드는 용광로(melting pot) 방식과 각자의 개성을 잘 살려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샐러드보울(salad bowl)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장일단이 있으니 각 방식에서 좋은 점들을 잘 취해야죠.”

수년간 다문화가정과 접촉하셨는데 직접 만나본 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이나 고민은 무엇인지요.
“아무래도 자녀교육 문제와 경제적 자립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다문화가정은 거의 어머니가 외국인이어서 우리나라 말이나 문화, 관습 등에 익숙지 않아 당연히 아이 교육과 양육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단순히 자녀 학교교육 문제만이 아니라 부모 교육까지 고려해야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죠. 하지만 관점을 바꾸면 어머니 나라의 언어까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입니다.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면 2개 국어가 가능하고 폭넓은 시각과 체험을 가진 글로벌 인재로 키울 수 있죠. 어머니 나라와의 네트워크 발전의 주역도 되고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바로 다문화가정의 상징 아닙니까. 또 경제적 자립 문제도 다문화가정의 큰 고민거리죠. 우리 재단에서는 이와 관련해 결혼이민 배우자의 가족에 대해 외국인근로자 고용허가 쿼터 내에서 우선 취업허가를 내주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12월부터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이후 다문화 가족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다문화협동조합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행복 전도사’로 변신한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협동조합 운영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현재 금산, 경기, 남원, 대전 등 전국 25개 지역에서 다문화협동조합이 설립되었거나 설립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금산의 경우 인삼 재배를 하고 있는데 다들 열심이고 경쟁력도 있습니다. 사실 다문화가정은 농업이나 식당일 등 일을 나가는 젊은 부인과 비교적 고령에 무기력한 남편들의 만남이 많아 가족 해체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을 만들어 부부가 함께 일하고 돈을 벌게 해주니 다들 열심히 일하고 즐거워하더군요. 우리 재단에서는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은 못해도 법률적 지원과 컨설팅을 해줍니다. 작은 협동조합이어도 기업이어서 정관도 만들고 정기총회도 하고, 필요한 서류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것들을 우리 재단에서 도와주고 각 조합간의 연대활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30일에 행복세상 부설 한국협동조합진흥연구원도 발족했는데요. 21세기형 협동조합의 차별화 전략은 뭔가요.
“특별히 차별점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부상조하는 협동조합의 정신과 사회적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니까요. 물론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경제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런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효율성과 성장의 대표주자인 주식회사 중심의 자본주의경제만으로는 상생·복지·고용·환경·돌봄·교육 등 분야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이를 전략적으로 보완해 시장경제를 성숙하게 발전시키는 또 하나의 동력으로 협동조합을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21세기의 협동조합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자본주의 주식회사의 대안이나 대체물이 아니라 시장경제 하에서 자본주의 주식회사를 전략적으로 상호 보완하는 보완재죠. 

우리나라에서는 협동조합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없는 자, 약한 자들의 전유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협동조합도 다른 형태의 기업입니다. 다만 1인 1표여서 의사결정의 신속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이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해요. 새마을운동이 우리 근대화를 이끌었다면, 자주·자조·자립정신을 가진 협동조합은 우리나라 선진국 진입을 선도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의 동력이 될 겁니다.”

그동안 행복세상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지요.
“아직 특별히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죠. 애초 내세운 설립 취지도 4~5년 한다고 이뤄질 것도 아닙니다. 재단이 2007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름이 ‘행복세상’인 것처럼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정 모토이기도 했구요. 2011년부터 ‘행복포럼’을 열어 서울을 비롯해 부산·대구·강원 등 전국을 돌며 ‘행복국가 건설’에 대한 비전을 알려왔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모토가 ‘행복국가 건설’인데 교감이 있었나요, 아니면 표절인가요?(웃음)
“공교로운 우연이죠. 사실 정부가 국정 모토로 삼을 만큼 중요한 시대적 화두인데 제가 보다 앞서 제시해왔고 알리는 데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행복세상이 거둔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요.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은 아니니 말입니다. 그 외에도 중소기업·소상공인·다문화·규제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정책과제도 제안했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제시하고 실질적 대안을 제안했다는 측면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장관, 국정원장 등 제가 국민과 나라에서 받은 사랑과 은혜에 대한 보답이기도 합니다.”

법무장관 퇴임사에서 ‘공직자는 모름지기 국민을 두려워해야지 사적 이익이나 정파적 이해관계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오도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떡검사, 성검사 등의 후배 검사들만 봐도 너무 문제가 많던데요.
“권력형 비리는 가치관의 혼란 탓입니다. 권리를 차지하려고만 하고 공동체 의식에 소홀한 이들, 자기만 잘 살겠다는 이들이 공직자가 되니 일어나는 일이죠. 이건 제도적으로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검사나 판사를 선발할 때 성적 위주로만 하지 인성교육은 전혀 살피지 않습니다. 법조계도 결국 사람을 다루는 것이라 인간 중심의 사고가 중요해요. 판·검사 선발과정도 로스쿨이나 사법고시의 성적만 보기보다 심층면접을 한다거나, 1~2년 정도 시보 생활을 거쳐야 인성을 알 수 있습니다. 검사가 왜 공정해야 하는지, 왜 청렴해야 하는지, 왜 엄중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이런 윤리의식을 갖고 절대로 해서는 안 된 일과 꼭 해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으로는 어려우니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행복 전도사’로 변신한 김성호 전 법무부 장관

별명이 김폴레옹이시죠?
“검사 때 제가 좀 무서웠습니다. 당차고 추진력이 강하고 한 번 달려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배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제가 검사가 된 이유가 우리 사회 약자에 대한 보호, 그리고 사회정의 실현이 꿈이어서였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된 후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리를 캐는 데 관심이 많았죠.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을 구속한 것 역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니 큰 범죄를 강력히 단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제왕적 부패는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니까요.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큰 사건보다는 작은 사건에 더 보람을 느낍니다. 강도상해로 수형생활을 하는 청년이 숙모에게 간 이식을 해주고 싶다기에 구속집행정지로 풀어줬고, 수십년간 폭력에 시달린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 역시 정당방위를 주장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 역시 사회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전직 국정원장으로서 요즘 국정원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정원장 직책상 무덤에 갈 때까지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연봉 수십억원이 보장되는 대형 로펌도 마다하고, 행복전도사로 활동하는데, 진정한 행복, 그리고 행복한 세상이란 뭔가요.
“더불어 잘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삶의 만족과 행복은 사실 인간관계 속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부와 명예 등 인생에서 성공이라 말하는 것들도 사실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제가 꽃길만 걸어온 게 아닙니다. 2000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을 지낼 때 어떤 기초단체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이 권력 고위층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는지, 검찰 상층부로부터 호되게 질책도 받고 힘들게 검사장 승진을 한 후에도 이른바 한직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한직에 있을 때 서예를 배워서 글씨도 쓰고 좋은 글귀도 알았습니다. 제가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니는 처염상정(處染常淨·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피면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은 서예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공직자는 연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깨끗해야 외부의 압력이 들어와도 무너지지 않고 소임을 다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항상 마음에 새깁니다. 무엇보다 사심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죠.”

행복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만, 노무현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관,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정원장을 지냈습니다. 또 최근에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혹시 현 정부에서도 일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요.
“글쎄요. 전 행복전도사란 새로운 별명에 만족합니다. 뜻 맞는 이들과 더불어 행복전도사들의 모임을 발족하는 게 일단 새로운 과제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김성호 이사장의 명함을 봤다. 법무장관 퇴임 시 후배들이 선물했다는 한복을 입은 인형 같은 캐릭터가 담겨 있었다. 전직 국정원장이 이런 귀여운 명함을 갖고 있다니…. 그는 진짜 행복을 실천하고 있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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