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다하는 ‘직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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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듯싶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했는데, 퇴근도 정해진 시간에 하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어차피 정시에 못할 퇴근이라면 시간외 근무수당이라도 챙겨 받으면 얼마나 신날까’라고….

입사할 때 쓴 근로계약서에는 분명 근무시간과 시간외 근무수당이 명시돼 있었는데, 정산할 때는 계약서가 무색하다.

KBS <직장의 신> | KBS 제공

KBS <직장의 신> | KBS 제공

지난 1일 첫 방송된 KBS2 새 월화극 <직장의 신>은 기존 드라마의 형식을 깨고 직장인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주인공은 자발적 비정규직인 미스김(김혜수)이다. 미스김은 비정규직이지만 무척 당당하다.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열패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정규직에 대한 갈망도 없다. 3개월간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난 후에는 재계약에 목매지 않고 해외로 떠난다.

그동안 직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은 비정규직 여주인공이 갖은 무시와 괄시를 받다가 결국 능력을 인정받고 정규직이 되면서 끝을 냈다. 비정규직 여주인공은 주로 지방대 출신이다. 영어나 전공 실력은 뛰어난데 가난한 집안환경 때문에 ‘유학’이라는 배경을 따지 못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이 노력 끝에 정규직이 된 후에는 행복했을까. 정규직은 진정한 직장의 꽃인가. <직장의 신>은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쾌감을 준다.

팀장인 장규직(오지호)이 말하고 있는 도중에도 미스김(김혜수)은 “점심시간이 됐다”며 자리를 뜬다. 미스김의 태도에 빈정 상한 장규직이 일부러 자료정리를 시키지만 “당신은 내 상사가 아니다. 업무분류표에 따라서 당신이 시키는 일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일갈한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또 보통의 드라마라면 상사가 지적을 할 때는 “죽을 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고개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어야 한다.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일을 떠민 줄 알면서도 밤을 새우고 해내야 하는 게 드라마 여주인공의 숙명이었다. 밤을 새워도 못할 분량의 일이지만 재벌2세(요즘은 재벌3세인 경우가 늘어나고 있지만)인 남자주인공이 나타나 몰래 도와주고 가는 게 한국 드라마였다.
미스김의 발칙한 반란은 직장인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미스김은 “쓸데없는 책임감과 소속감은 정규직이나 갖는 것이다. 계약직은 계약대로만 한다”면서 수당 없는 야근은 하지 않는다. 시간외 수당은 정확하게 챙긴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뛰어난 능력뿐이다.

원치 않는 회식도 단호하게 거부한다. 이유는 “회식은 업무사항에 없다”는 것.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상사의 말에 “불필요한 친목과 음주와 아부를 도모하면서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 같은 회식을 할 이유가 하등 없다”고 일갈한다.

KBS <직장의 신> | KBS 제공

KBS <직장의 신> | KBS 제공

혹시 그래도 같이 일하는 한 회사 사람인데 회식은 가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상사 무정한(이희준)이 “같은 회사를 다니는 가족으로서 회식에 참석해주면 안 되겠냐”고 정에 호소하지만 “저는 교회가 아니라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라며 버스를 탄다.

<직장의 신>의 미덕은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이지만 아무도 할 수 없던 그 말을 드라마 여주인공이 내뱉어준다는 데 있다.

일 하나만으로 평가받고 싶지만 직장에선 아부나 인간관계 같은 여타 다른 능력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오히려 비정규직인 미스김은 정해진 일을 충실히 하고 여타의 능력은 끊어내면서 통쾌함을 준다. 너무 평범하지만 못하기 때문에 모두가 바라는 일 아닌가.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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