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법 정착돼야 국회 제 기능하고 국민들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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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새누리당 의원

국회는 3월 22일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편과 관련한 법률안 40개를 일괄 처리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지난 1월 30일 국회에 제출된 이후 52일 만에 국회를 통과하게 됐고, 박근혜 정부도 출범 26일 만에 정상 가동하게 됐다. 박 대통령이나 각료들은 속이 바짝바짝 탔겠지만 52일 만에라도 통과된 게 다행이다. 정치력 부재, 정치 실종, 식물국회 등의 표현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인가.

[유인경이 만난 사람]“선진화법 정착돼야 국회 제 기능하고 국민들 행복해진다”

그러고보면 국회의원들은 참 놀라운(?) 능력자들이다. 공천을 받고 선거를 치르는 등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과정도 지난하지만,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발의하고 통과시키는 것, 그리고 계파싸움이나 노선갈등 등은 또 얼마나 복잡하고 힘겨운가. 국회에서도 멱살잡이를 하거나 실신할 때도 있고, 엄동설한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농성을 하기도 하고, 지역 행사에도 참석해야 하며,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해야 한다. 청문회 때는 탐정이나 수사관보다 더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도 꿋꿋하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48)은 5선 의원이다. 15년이 넘게 이런 과정을 반복한 것만으로도 온몸에 사리가 생기고 절로 입이 다물어질 것 같은데, 그는 늘 개혁과 쇄신을 외쳐서 5선인데도 여전히 ‘소장파’로 불린다. 또 항상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다. 야당이나 진보진영에서도 “남경필 의원이라면 함께 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그는 지난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새누리당이 위헌소송을 한다며 법적 검토에 들어갔다. 그의 심정이 궁금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질 당시 비대위원장이던 박근혜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찬성한 이 법안에 왜 이리 뒷말이 많은가. 특히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 선진화법 가운데 신속처리제라고 해서 전체 의원의 5분의 3이 찬성하면 바로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는데, 5분의 3은 과반수가 돼 다수결 원칙에 어긋나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위헌 제소를 한다면 헌법학자들이나 헌재에서 판정을 할 문제다. 선진화법에 의해서도 모든 표결은 과반수로 한다. 다만 절차를 넘어갈 때, 상정될 때는 5분의 3의 숫자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 결정할 때는 모든 법안의 과반 득표로 돼 있다. 지금도 헌법을 고치기 위해서는 과반이 아니라 3분의 2가 찬성을 해야 한다. 꼭 과반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법은 18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이 아주 열심히 주장을 하고 여야가 합의를 통해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작동이 잘 안 되는 듯하다고 버리자, 바꾸겠다는 것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 좀 어눌하다고 해서 의사에게 내 자식인지 아닌지 판정을 해달라고 하는 꼴이다.”

정권 재창출을 하고도 왜 새누리당은 늘 삐그덕거리고 영 맥이 빠져 있나.
“집권 여당 초반에는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 초기엔 대통령의 파워가 워낙 강해 당청관계가 예속관계로 보일 수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때도 비슷했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되면 결국 막강한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한이 부메랑이 되어 상처를 입힌다. 그런 일을 막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다시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통령의 인기 덕분이 아니다. 당 안에 박근혜라는 대통령 예비후보가 존재해 팽팽한 긴장감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서였다. 당청관계에서 여당이 지나치게 예속되면 결국 국민에게 외면당한다. 당장은 불편할지 몰라도 당청관계가 대등하고 원만한 것이 결국 대통령에게 도움이 된다.”

그런데 왜 아무도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거나 제 목소리를 내는 새누리당 의원이 안 보이나. 청와대 인사들도 그렇고.. 오죽하면 전원책 변호사가 ‘내시 정당’이란 말까지 했겠나.
“그건 그분들이 할 일을 제대로 못해서다. 그래도 오늘(20일) 당내에서 김병관 후보가 부적격하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하자, 자진사퇴시키도록 하자는 말들이 나왔다.(김 후보는 22일 자진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애국심, 사심 없음, 올곧음 등은 의심할 바 없지만, 너무 강한 자기확신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못하게 한다.”

남 의원의 각종 발언을 보면 야당 같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쓴소리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친박 해체하라고 하고, 노회찬 전 의원 구명선언도 하고..
“난 새누리당 주인이다. 5선 의원으로 15년간 한나라당을 거쳐 새누리당에서 의원생활을 하며 식솔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마음을 갖고 있다. 처음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많이 변했다. 김부겸, 김영춘 전 의원이 당을 떠날 무렵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자는 요구만 해도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알아서 안 하던 시절이다. 그 사이에 당의 정책과 행동이 조금씩 바뀌었다. 보수도 늘 옛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새롭게, 바르게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쇄신을 주장하다보니 그렇게 보는 이들도 있다.”

5선 의원의 무게감을 느끼나.
“당연히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아까도 말했듯 이제 식솔 먹여 살리는 가장의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 마음으로 국회의 행태와 구조의 문제를 바꾸고 싶다. 선진화법이 바로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 국회의원들은 그야말로 매일 쌈박질하는 사람, 밥그릇 챙기는 사람이다. 그런 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치선진화법이 통과되면 너무 낯설어 당분간 식물국회가 될지도 모른다. 법은 금방 바꿀 수 있어도 문화는 그리 쉽게 안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처럼 싸우기만 하는 동물국회보다 식물국회가 낫지 않은가.”

다시 선진화법의 핵심을 설명해 달라.
“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권을 돌려주자는 것이다. 현 공천권 제도로는 힘 있는 자, 당대표, 대통령 측근에게 몰려들 수밖에 없다. 그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그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일엔 몸싸움을 한다. 그리고 국회가 장기 표류한다. 국회의원이 누구의 눈치를 봐야 하나. 국민의 눈치만 보게 해야 한다. 국민이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몸싸움은 안 한다. 선진화법의 요체는 민생현안에 관련한 법안 등 재빨리 해결해야 할 법안은 패스트 트랙에 의거해 빨리 통과시키고, 한·미 FTA 등은 1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정치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이다.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온갖 문제들, 쉽게 표현하면 각종 문제의 쓰레기 하치장이 국회다. 충돌과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더 큰 꼴불견인 몸싸움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제도와 대화로 빨리 해결하자는 것이다. 2000년 이후 국회에서는 12년 동안 31번의 몸싸움이 있었다. 1년에 세 번꼴이긴 하지만, 국민에겐 국회의원들은 입법하는 이들이 아니라 싸움꿈으로만 각인됐다. 99%는 문제없이 통과되는데 예산안 등 한두 건의 법안 때문에 난장판이 되고 국회가 꼼짝 못한다. 야당은 장외로 나가버린다. 선진화법이 정착되어야 국회가 제기능을 하고 국민들도 행복해진다.”

기득권 포기가 그리 쉬울까.
“모든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선한 의지로 지켜나가려면 제도로 견제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분산, 중앙정부의 권력분산이 필요하다. 이것이 현재의 시대정신이다. 선거 때는 온갖 약속을 다해놓고 선거 끝나면 입장이 바뀌는데, 이제 그 약속을 지키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구조의 또 다른 문제는 이젠 국가 전체 운영의 틀을 바꿀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회적 시장경제 연구모임을 4월부터 운영하려 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선진화법 정착돼야 국회 제 기능하고 국민들 행복해진다”

그 모임에서 어떤 연구를 하나.
“광복 이후에 미국식 시장경제가 우리 발전에 공헌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양극화가 심해지고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더 이상 미국식 시스템으로는 성장복지를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성장과 복지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독일을 열심히 공부해 대한민국형 모델을 만들려는 것이다. 독일은 통일경험, 전쟁의 상처, 자원부족, 라인강의 기적 등 우리와 비슷한 역사와 사례가 많다. 내가 아는 한 교수가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당시 주머니에 돈이 별로 없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사는 게 불안하지 않았단다. 학비도 없으니 아이들 교육도 걱정할 필요없고, 월세인 집세를 비롯해 물가도 안정되어서였단다. 그런데 지금 연봉 1억원이 넘는데도 엄청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하다고 한다. 국민 한 사람의 행복지수가 복지시스템을 의미하는데, 개인이 안정과 안전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복지시스템만 연구하나.
“아니다. 권력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연구한다. 과연 미국형 대통령제가 우리 체질과 현실에 맞는지도 따져볼 때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 법안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는데 과연 양당제가 맞는가. 양당제보다는 여러 당이 연대하는 방식으로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5선 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무엇인가.
“보수정당의 중도화, 개혁에 대해서 끝없이 고민하고 노력한 것이다. 폴 크루그먼 교수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면서 보수정당도 진보적으로 정책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정치하면서 정치철학을 끝없이 강화시키고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흔히 말하는 ‘87년 체제’의 경우도 과거의 공은 인정하나, 체제의 효용성이 다했기 때문에 교체되어야 한다. 그 중심에 남경필이 있다. 국회의원이란 자리는 그걸 완성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부산물일 뿐이다.”

부끄러운 순간도 있었을 텐데….
“국회의원 초기에는 나의 주장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관철시키려는 태도와 언행에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보수당에서 너무 튄다는 평가를 받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비판도 들었다. 그런 점이 아직도 부족하고 갈 길이 멀다.”

그래서 한때 국회의원인데도 오렌지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건 내 불찰이다. 물론 그 당시엔 당의 매카시즘 분위기도 있었다. 새로운 종류의 사람이 들어오면 색깔로 규정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빨강도 아니니 오렌지라고 한 것 같다.”

국회의원으로서 진짜 필요한 자질은 뭔가.
“첫째는 스킬이다. 유권자와 악수하거나 연설하는 것, 스킨십을 다루는 것 등이다. 둘째는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다 갖춘 정치인은 드물다. 이제는 이 세 가지를 다 아우른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 내가 왜 정치를 하는지와 나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리고 내 철학과 정체성이 부합해야 좋은 정치를 한다. 그래야 당의 의지나 당 실권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소신대로 할 수 있다.”

야당 의원이나 진보진영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이들이 많다.
“나는 정치의 본질은 내가 인간이므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둘이, 여럿이 토론하면 더 정의에 가까워진다. 아마도 내가 그들과 노선과 당적을 떠나 토론할 대상으로 봐주는 것 같아서 기쁘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해도 남의 주장이 틀렸다고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걱정되는 것도 이 점이다. 박대통령은 보통 사람이 갖기 힘든 성직자 같은 아우라가 강하지만 내가 선이니 당신은 악이고 틀렸다고 보면 안 된다. 이제는 영웅의 시대는 지났다. 국민들도 탁월한 히어로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 서로 연대하면서 그 중 앞선 사람을 리더로 지지한다. 리더는 인내하고 양보하는 사람이다.”

차기 원내대표에 도전하나.
“당의 분위기를 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선진화법 위헌소송을 막는 게 우선이다.”

남경필 의원과의 인터뷰는 그가 국회 상임위 참석 등으로 너무 바빠 점심시간 중에 의원실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진행됐다. 남 의원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그의 새정치 철학이나 열정만이 아니다. 햄버거만 달랑 내놓은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콜라와 샐러드까지 준비한 배려심 덕분이다. 정치도 이런 사소한 배려, 디테일이 중요하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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