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의원 “안철수와 신당창당 소문은 당 주류들이 만들어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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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표 도전 김한길 의원

악플보다 무플, 비난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고 서러운 세상이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비대위원장인 문희상 의원이 가뜩이나 올라간 눈을 치켜뜨며 “민주당의 역사와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고 했지만 별 호응도 없고 당연히 변화도 없었다. 요즘 민주당이 눈길을 끈다.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김한길 의원도 출마선언을 했다. 4선에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킹메이커 역할을 했고,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 수석 등의 화려한 스펙이면 충분히 당의 얼굴이 될 만하다. 한편으론 의문이 든다. 베스트셀러 소설의 작가, 방송진행자 등으로 얼마든지 다른 분야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부인인 탤런트 최명길씨가 곧 새 드라마에 출연해 생계형 정치인도 아닌데 왜 그는 이 진흙탕 싸움이란 정치선거에 뛰어들려고 할까. 또 소설가의 상상력은 현실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당대표 출사표를 던진 후 진심으로(?) 바쁜 김 의원을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김한길 의원 “안철수와 신당창당 소문은 당 주류들이 만들어낸 얘기”

대체 무엇이 김 의원을 또 민주당 대표로 출마하게 했나요.
“정치 선배, 동료, 후배들의 권유가 컸어요. 이번에 당신이 나서야 당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심각하게 고민했죠. 대선 패배 후에 국민들의 민주당에 대한 불만과 요구는 첫째, 계파정치에서 벗어나라, 둘째,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라로 압축됩니다. 저는 계파가 없는 사람이고, 5년 전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던지라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5년 전에 총선 불출마 선언 말인가요.
“예. 2008년 1월 6일에 대선 패배에 사죄하면서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지역구를 내놓았죠. 전 당시 대선에서 명목뿐인 공동선대위원장 중의 한 명으로 실제로 책임져야 할 만큼의 역할을 맡은 것은 아니었어요. 또 제 지역구(서울 구로 을)는 17대 총선에서 서울의 우리당 당선자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을 만큼 기반이 탄탄한 상황이라 다들 무모한 결정이라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당에서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면, 총선에서 승리가 담보된 사람이 내려놓아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민주당의 얼굴이 되면,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시 19대 총선에 나왔고 지난해에 당대표에도 도전했지요.
“지난 총선을 앞두고 ‘정권을 빼앗긴 데 책임을 지고 물러났으니 정권을 다시 찾아올 책임도 있다’며 설득하는 분들의 말씀에 따라, 갑자기 선거를 20여일 앞두고 낯선 지역구인 광진갑에서 출마해 당선됐죠. 총선 결과는 패배로 끝났고, 지도부가 사퇴한 지 며칠도 안 되어서 ‘이박(이해찬 박지원) 연대’란 이름으로 당대표와 원내대표직을 나눠갖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거 아니다 싶어 또 사전준비 없이 당대표 경선에 나섰죠. 당원과 대의원 투표에서 1등을 하고도 모바일에서 졌습니다. 물론 제 책임도 있겠지만….”

민주당에서 비주류의 좌장으로 불리던데요.
“비주류는 계파가 아닙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을 통칭해 비주류라 부르더군요. 전 계파를 만들지도 않았고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지연·학연·직업연 등으로 계파가 만들어지는데, 전 부모가 함경도 출신인 데다 일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도 이대부고라 동창회를 하면 7명 정도 모이고, 교수나 법조인도 아닌 소설가라 참 희귀한 존재죠. 더구나 야권에서 흔한 운동권 출신도 아니거든요. 저는 계파의 힘에 기댈 수 없는 사람이고, 그게 김한길의 힘이기도 합니다. 비주류의 좌장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비주류는 좌장에 의해 통솔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저는 비주류 내 어떤 모임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비주류를 미술사조에 빗대면 후기인상파라고나 할까요. 인상파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공통점 이외에 일관된 사조나 공통점이 없쟎습니까. 그래서 대선 패배 이후에 우리 당이 처한 상황에서는 저같은 자람이 필요하고 요구되는 겁니다.”

4선 의원인데 비주류에 계파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데요.
“그렇죠. 계파를 만들지도, 특정 계파에 속하지도 않고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것은 흔치 않기도 하고, 엄청난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제가 나름대로 원칙과 철학을 갖고 전체를 이야기하자는 소신으로 버틴 거죠. 김대중 대통령이 저를 각별한 애정으로 대해주셨는데도 저는 동교동 계파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또 연청 회장을 맡으라는 권유도 사양했죠. 대부분의 계파는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 나라보다는 당의 이익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계파 청산이 되면 정당이 민주화가 되고 당이 정상화가 됩니다. 새누리당이야 이미 사당화가 되어 있지만, 민주당이라도 당내 개혁을 통해 계파패권주의를 청산해야 합니다. 당의 주체이자 주인이 누굽니까. 계파 수장이 아니라 바로 당원입니다.”

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몇몇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이 지지도 1위이긴 하지만 주류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신문에서도 ‘김한길 대세론’이란 제목이 붙여졌고 대세론이 형선된 저를 견제하기 위해 당내 ‘반(反) 김한길 전선’이 꾸려지고 있다는 뉴스도 나오더군요. 그런 언론보도를 보고 국민들은 ‘민주당, 아직 정신 못차렸다’고 걱정하실 겁니다. 김한길 하나 잡겠다고 민주당을 다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김한길이 당대표가 되는 걸 용납지 않겠다면서 이제까지 당권을 장악한 범주류가 다시 뭉쳐서 기득권을 유지하게 되면 국민이 민주당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지난 대선 때도 김 의원이 안철수 후보와 교류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또 이번엔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결국 신당 창당 기획이 작동할 것으로 본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더한 소문과 시나리오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주류측에서 제가 당대표가 되면 자신들이 비주류로 밀려나며 배제될까봐 만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안철수씨는 제 모친상 때 위로전화를 했지만 여의도에 들어와 따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안철수씨와 합당할 구상은 없나요.
“우리 민주당에 중요한 것은 안철수씨를 당에 입당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안철수씨를 끌어안는다고 그분의 지지자들이 우리 당으로 오지 않아요. 대선 당시 안 후보를 지지하던 이들의 상당수는 민주당을 지지하다 실망하고 돌아선 이들입니다. 민주당이 제대로만 하면 안철수를 지지하던 이들이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당 안에서 저를 공격하는 이들이 각종 이야기를 만드는데, 저는 민주당을 정말 사랑하고, 민주당은 긴 역사만큼 공과가 많지만 공이 과보다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나마 정치를 이끌어온 민주당의 공을 폄하하면 안 됩니다.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죠.”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도 보면 경제민주화나 복지 등의 정책을 새누리당이 선점한 것 같습니다.
“사실 아버지(김철 전 통일사회당 대표)가 1971년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사회를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경제민주화란 말의 원조가 중요한 게 아니죠. 다만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에 새누리당의 공약들이 더 피부에 와닿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우리 당의 소통 부족일 겁니다. 구호만 내걸었을 뿐 국민이 체감하는 구체적인 민생정책 제시에 실패했다는 게 대다수의 평가입니다.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는 생활밀착형 민생정책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헌법정신인 ‘민주적 균등사회’를 이룩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에 앞장설 것입니다.”

문화부 장관 시절에 인터뷰를 했을 때 “새로운 과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규제를 푸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대부분 업적주의에 함몰해서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데, 하던 일을 덮는다고 해서 신선했어요.
“아, 그걸 기억하는군요. 그때 확실히 안 되는 것을 그저 묵혀두면 부담이 된다고 판단해서, 중단시키거나 폐지하는 일을 먼저 했습니다. 안 된 일, 못한 일 등등을 다 도마에 올려놓고 분석한 다음에 버린 거죠. 생텍쥐페리가 ‘완벽함이란 덧붙일 게 없는 상태가 아니라 떼어낼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일단 불필요한 일들을 떼어냈는데 생색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나름 보람을 느낍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김한길 의원 “안철수와 신당창당 소문은 당 주류들이 만들어낸 얘기”

김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력이 탁월하다는 평가입니다. 그게 꼭 좋은 의미만은 아닙니다만….
“정치는 참 숭고한 거예요. 제 생각에 안철수씨의 잘못은 정치를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이들에게 이끌려갔다는 겁니다. 비리정치인을 혐오하고 기존 정치에 염증을 느낄 수는 있어도 정치는 결코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는 내재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자기가 옳다고 한 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바로 정치죠. 요즘 상영중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을 봐도 정치지도자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보이죠. 만약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확실히 책임져야 합니다. 정치는 그 밑바닥에 무서운 힘을 갖고 있어서 정치권력이 위험해지고 유독 책임윤리가 깅조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우 부끄러움을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인간관계로 버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녁 약속도 거의 안 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대신에 정치 사안에 대해 많이 생각하려고 노력하죠. 정치인은 자기 입장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정치적이라는 것은 아마도 제가 누굴 만나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정치인으로서의 제 강점은 조용히 있다가도 한다면 거침없이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기자, 방송진행,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체험했는데 특히 소설가적 상상력이 정치에 도움이 됩니까.
“그럼요.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이 모인 사회에 대한 관점을 표현하는 것이라 정치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외국의 경우엔 영국의 제프리 아처 등 소설가 출신의 국회의원도 꽤 됩니다. 생각해보면, 과거의 직업이나 일들이 다 적당히 행복했고, 제 정치생활에도 자양분이 되었다고 봅니다.”

다른 분야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는데 왜 정치를 합니까. 얼마 전 방송에서 가수 조영남씨가 김 의원이 작사하고도 저작권을 포기한 ‘화개장터’ 저작권료 덕분에 집을 샀다고 자랑하던데요.
“정치는 정말 보람있는 일이에요. 20대에 문단에 등단하며 <세네카의 죽음>이란 단편소설을 썼는데 남자주인공이 ‘정치란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꿈과 자유의 일부를 저당잡아, 저당잡은 것들을 정당한 것으로 돌려주는 거야’란 말을 합니다. 20대의 제 생각이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치를 하고 정권을 잡으려 합니다. 정치의 주역이 되어야 우리를 지지한 이들에게 돌려줄 수 있으니까요. 야당의원으로 활동하다보면 무력감이랄까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건 지지자들에게 돌려줄 것이 별로 없어서예요. 우리 사회의 근간인 서민과 중산층의 어려운 문제를 정말 도와드리고 싶은데 한계를 느끼거든요. 그래서 제가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을 새로운 정당, 큰 정당, 이기는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겁니다.”

이기는 정당을 만든다는 것은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는 의미인가요.
“제 개인보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되고, 국민들에게 정권교체의 기쁨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김 한길 의원이 대표가 되면 민주당은 조금은 더 문학적이고 문화적으로 변모할까. 다른 것은 몰라도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확실히 하지 않을 것 같다. 에너지 낭비보다 더 나쁜 것이 정책과 정치자금 낭비 아닌가.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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