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식 수상소감 “유감입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TV 세상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관문은 바로 시상식이다. 지상파 3사 <연예대상>과 <연기대상>은 공동수상 남발과 시청률 최우선 선정방식으로 해마다 비난을 받는다. 그래도 욕하면서 보게 된다.

이런 시상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수상소감이다. 수상자가 호명된 뒤 옆자리의 누구와 포옹하고, 어떤 동료에게 꽃다발을 받고, 어떤 말을 할 것이지가 시상식의 관전포인트다. 그런데 그 많은 수상소감을 듣다보면 감동은커녕 ‘한국의 스타들이 이토록 창의력이 없는지’ 한탄하게 된다.

MBC 연기대상 | MBC 제공

MBC 연기대상 | MBC 제공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하는 건 귀여운 편이다. “이 자리에 있게 한 고마운 사람들” 혹은 “이 자리에 서니까 생각나는 사람들”이라며 드라마 감독과 작가, 스태프들 이름, 기획사 사장부터 말단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어떤 때는 미용실 원장까지 십수명씩 열거되는 걸 듣다보면 TV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해진다. ‘내가 대체 왜 이걸 들어줘야 하는 거지?’라고….

수상자는 말해줘서 후련하고 호명된 당사자는 기쁠지 모른다. 허나 시청자 입장에선 무의미한 이름의 열거일 뿐이다. 오히려 “감사합니다”라는 소지섭의 한 마디 수상소감이 담백해서 기억에 남는다. 시상식은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되는 엄연한 프로그램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상자의 지인 이름은 전파낭비일 뿐이다. 한국의 수많은 스타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밥 먹고 차 마시는 소소한 일상을 올린다. 감사할 사람이 그렇게 많다면 SNS를 이용하면 어떨까 추천한다.

KBS 연기대상 | KBS 제공

KBS 연기대상 | KBS 제공

사람들을 울릴 수상소감은 이름 열거가 아니다. 메시지를 주면서도 위트가 있으면 좋다. 이런 분야에선 미국의 시상식이 앞선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배우 장 뒤자르댕이 “당신들의 나라를 정말 사랑합니다”라며 탭댄스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영화 <아티스트>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래미 시상식 6개 부문에서 수상한 아델은 마지막 트로피를 들고 “금이 좋긴 좋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에도 재치와 의미 있는 시상식 발언이 있긴 하다. 강호동은 KBS <연예대상> 시상자로 나서 “가능하다면 2013년에는 신인상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년 만에 방송 복귀한 데 대한 다짐처럼 들렸다. 수상소감이 아니라 시상 멘트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SBS 연기대상 | SBS 제공

SBS 연기대상 | SBS 제공

SBS <연예대상>에서 개그맨 정현수는 “다른 프로그램의 경쟁 프로그램은 <해피투게더>인데 저희는 <심야토론>과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중계와 경쟁한다”고 말했다. 심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투나잇>의 방송시간대가 너무 늦다는 걸 익살스럽게 지적한 것이다.

신구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스로 시상식의 위상을 세우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방송 시상식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비슷하다. 상을 못받는 스타들은 ‘귀신같이’ 안 온다. 참석자들은 최소한 하나의 트로피를 챙겨간다. 이쯤 되면 시상식 전에 상을 탈지 안 탈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거면 인상 깊은 수상소감 하나쯤은 준비하는 게 어떨까. 그게 연기라 하더라도 이름 열거에 질린 시청자들은 이미 감동받을 준비가 돼 있다.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로 인상 깊은 수상소감 하나쯤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클릭TV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