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세상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관문은 바로 시상식이다. 지상파 3사 <연예대상>과 <연기대상>은 공동수상 남발과 시청률 최우선 선정방식으로 해마다 비난을 받는다. 그래도 욕하면서 보게 된다.
이런 시상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수상소감이다. 수상자가 호명된 뒤 옆자리의 누구와 포옹하고, 어떤 동료에게 꽃다발을 받고, 어떤 말을 할 것이지가 시상식의 관전포인트다. 그런데 그 많은 수상소감을 듣다보면 감동은커녕 ‘한국의 스타들이 이토록 창의력이 없는지’ 한탄하게 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하는 건 귀여운 편이다. “이 자리에 있게 한 고마운 사람들” 혹은 “이 자리에 서니까 생각나는 사람들”이라며 드라마 감독과 작가, 스태프들 이름, 기획사 사장부터 말단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어떤 때는 미용실 원장까지 십수명씩 열거되는 걸 듣다보면 TV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이 한심해진다. ‘내가 대체 왜 이걸 들어줘야 하는 거지?’라고….
수상자는 말해줘서 후련하고 호명된 당사자는 기쁠지 모른다. 허나 시청자 입장에선 무의미한 이름의 열거일 뿐이다. 오히려 “감사합니다”라는 소지섭의 한 마디 수상소감이 담백해서 기억에 남는다. 시상식은 생방송으로 전국에 방송되는 엄연한 프로그램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상자의 지인 이름은 전파낭비일 뿐이다. 한국의 수많은 스타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밥 먹고 차 마시는 소소한 일상을 올린다. 감사할 사람이 그렇게 많다면 SNS를 이용하면 어떨까 추천한다.
사람들을 울릴 수상소감은 이름 열거가 아니다. 메시지를 주면서도 위트가 있으면 좋다. 이런 분야에선 미국의 시상식이 앞선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프랑스 배우 장 뒤자르댕이 “당신들의 나라를 정말 사랑합니다”라며 탭댄스로 수상소감을 마무리했다. 영화 <아티스트>의 한 장면 같았다. 그래미 시상식 6개 부문에서 수상한 아델은 마지막 트로피를 들고 “금이 좋긴 좋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한국에도 재치와 의미 있는 시상식 발언이 있긴 하다. 강호동은 KBS <연예대상> 시상자로 나서 “가능하다면 2013년에는 신인상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1년 만에 방송 복귀한 데 대한 다짐처럼 들렸다. 수상소감이 아니라 시상 멘트라는 게 아쉬울 뿐이다.
SBS <연예대상>에서 개그맨 정현수는 “다른 프로그램의 경쟁 프로그램은 <해피투게더>인데 저희는 <심야토론>과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중계와 경쟁한다”고 말했다. 심야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투나잇>의 방송시간대가 너무 늦다는 걸 익살스럽게 지적한 것이다.
신구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스로 시상식의 위상을 세우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방송 시상식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비슷하다. 상을 못받는 스타들은 ‘귀신같이’ 안 온다. 참석자들은 최소한 하나의 트로피를 챙겨간다. 이쯤 되면 시상식 전에 상을 탈지 안 탈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거면 인상 깊은 수상소감 하나쯤은 준비하는 게 어떨까. 그게 연기라 하더라도 이름 열거에 질린 시청자들은 이미 감동받을 준비가 돼 있다.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로 인상 깊은 수상소감 하나쯤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