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배우자에게 주고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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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에 백화점과 마트에서 온 전단지가 한가득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라고 채근하는 광고들입니다. 장갑, 목도리, 털옷, 화장품과 보석류. 더 비싸지고 화려해지긴 했으나 작년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상품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왜 책 선물세트 같은 건 없을까, 의문이 듭니다. 물론 책으로 큰 이문을 남길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미끼상품으로 맞춤형 책 선물세트를 만들면 손님들에겐 참신한 인상을 줄 것이요, 빈사지경의 출판계에는 생색이 날 것이며, 나빠진 대형 유통업체의 이미지도 좋아질 텐데 말이지요. 더구나 딱 이맘때, 그러니까 날은 춥고 해(年)는 저물어 마음은 싱숭생숭하고 몸은 망년의 술에 절어 피로하기만 한 이런 때 읽으면 제격인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하면 아쉽기만 합니다.

<술의 나라 1·2> 모옌 지음·박명애 옮김·책세상·각권 6900원

<술의 나라 1·2> 모옌 지음·박명애 옮김·책세상·각권 6900원

기왕 말이 나왔으니 연말연시 부부용 선물세트로 맞춤한 책 두 권을 소개하지요. 먼저 아내가 남편에게 주면 좋을 책으로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작가 모옌의 <술의 나라>를 추천합니다. 연말 회식을 핑계 삼아 만날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남편 때문에 화가 났다면 더욱 좋습니다. 술꾼에게 술 먹지 말라고 해봐야 홧술만 부를 뿐이니, 술에 취해 일을 망치고 몸을 상하고 헛것을 보다가 똥통에 빠지는 이야기로 은근히 술맛이 떨어지게 하는 편이 백번 낫지요.

물론 ‘술의 나라’ 주꾸어(酒國)가 배경이라 온갖 술이 다 나오고 술의 역사부터 제조법까지 술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그로 인해 술 생각이 나지는 않을 겁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시고 토하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술에 취해 어린아이의 인육까지 먹어대는 인간들에 이르러선 욕지기만 느낄 테니까요. 하지만 너무 안심하진 마세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더럽고 추한 주꾸어와 다르지 않으니 이런 세상을 취하지 않고 어찌 살겠느냐며 술잔을 기울일 일말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김영사·1만6000원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박수용 지음·김영사·1만6000원

이번엔 남편 차례입니다. 춥고 외롭다고 투덜대는 아내가 모피코트라도 바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면 다큐멘터리스트 박수용이 쓴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선물하세요. 적어도 올 겨울엔 춥고 외롭다는 말은 안 할 겁니다. 영하 30도의 시베리아 숲속에 한 평짜리 지하 비트를 파고 6개월 동안 언 주먹밥을 먹으며 갇혀 있는 한 인간의 삶 앞에서 누가 추위와 외로움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사람이 20년을 뒤쫓은 시베리아호랑이의 처절할 만큼 고독한 삶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감당하는 외로움에 그만 수굿해지고 말 테니까요. 하지만 아내의 타박이 줄었다고 너무 즐거워하진 마세요. 고독을 수긍한 사람의 깊은 침묵은 때로 옆 사람을 외롭게 하니까요.

안달복달 살아온 지난날이 가뭇없게 느껴지는 세밑입니다. 더불어 잘 살자고 가족을 이루고 기를 쓰고 일하며 동동거렸건만 정작 무엇을 위해, 누구를 바라보며 이날까지 왔는지 모든 게 아득해지는 이 겨울, 지친 내 사랑에게 책 한 구절 읽어주면 어떨까요.

“사람들은 왜 산을 오를까? 왜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땅속으로 들어갈까? 봄날 애벌레조차 나비를 꿈꾸며 꿈틀거립니다. 꿈이 없는 삶은 허무합니다. 아니 삶이 허무하기 때문에 꿈을 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나중의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전부일 때까지 기다리지 맙시다. 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을 하겠습니까?”(<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에서)

조용히 책을 덮고 그이의 손을 잡아봅니다. 새로운 날을 시작할 힘이 따스하게 전해집니다. 책이 잊었던 사랑을 깨웁니다.

김이경 <소설가·독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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