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면 공감하고 참여하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유럽 국가들의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최근 유럽 전역 23개국에서 벌어졌다. 스페인에서는 수백만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프랑스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전면적인 경제위기를 노동계급의 희생을 통해서 넘어서려는 자본의 시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저항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17년생 레지스탕스 투사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분노한 사람들에게> 스테판 에셀 지음·유영미 옮김·뜨인돌·1만2000원

<분노한 사람들에게> 스테판 에셀 지음·유영미 옮김·뜨인돌·1만2000원

스테판 에셀의 책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2010년 그가 펴낸 소책자 <분노하라>는 프랑스에서만 30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는 35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열광적인 반응이다. ‘분노하라!’는 간명하고도 시의적절한 메시지가 갖는 호소력이 그러한 반응의 한 요인이라면, 다른 요인은 아마도 그의 발언 자격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독일군에 체포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에셀은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전력이 있다. 이 선언문의 1조는 이렇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분노한 사람들에게>에서 에셀은 이 조문이 갖는 이상적 성격을 인정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 ‘특별하고 놀라운 내용’을 아직 온전하게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것은 “희망이고, 목표이고, 강령”이다. 분명 아직은 실망스러운 상태이지만 1950년 이래 많은 진보도 이루어냈다는 게 에셀의 평가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전후의 상황은 이러한 낙관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을 만들고 유럽에 평화를 정착시킨 세대로서의 자부심이 자칫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에셀로 하여금 젊은 시절을 능가하는 활발한 활동에 나서도록 만든다.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고 또 대항해야 하는가. 되짚어보자면, 에셀은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세계의 양극화이다. ‘1%’가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최소 3분의 1이 비인간적인 조건 아래서 생존하고 있다면 그러한 사실 자체가 특단의 대책을 필요로 한다. 둘째는 환경의 파괴다.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의 무차별적인 개발과 착취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의 분노를 촉발하는 위험들이다. 물론 분노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에셀은 연이어 펴낸 <참여하라>를 통해서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에게 참여하고 연대할 것을 촉구했다. 이성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분노와 그러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참여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거기에다 에셀은 ‘공감하라’는 주문을 덧붙인다. 우리는 공감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옛 세계와 공감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문턱에 살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단합하는 것”이다. 변화는 연대 없이 가능하지 않다. 공감은 그 연대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연대는 물론 개인간의 연대뿐 아니라 국가들간의 연대를 포괄한다. 이러한 공감과 연대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세계는 증오의 테러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셀이 좋아하는 릴케의 시구는 “그대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이다. 그는 이렇게 호소한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합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현우 <서평가·필명 ‘로쟈’>

북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