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앞바다 신비의 섬, 외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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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일하러 나간 마을은 한산하다. 그래 외연도에 발을 디디면 누구나 서성거리게 마련이다. 섬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주민이고, 서성거리는 이는 외지인이다.

문득 떠나고 싶다면, 그 섬이 어디냐고 물어볼지어다. 가끔 고요히 긴 호흡의 가슴으로 숨 쉬고 싶다면, 그 섬의 앞바다에 달이 차오르는지 물어볼지어다. 어쩌다 어이쿠, 사는 게 무어냐, 생각이 미칠 때면, 그 섬에 새벽 바다를 지키는 늙은 어부가 몇이나 살고 있냐고 물어볼지어다. 그 섬에 가고 싶거든, 그 섬에서 늙은 당산나무 아래 잠시 쉬어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볼지어다.

해무에 둘러싸인 망재산.

해무에 둘러싸인 망재산.

육지를 온전히 떠나는 법칙
외연도. 섬의 이름자만 풀어 헤치자면. 외톨박이 섬처녀의 연정이 깃든 것은 아닌가? 섬처녀의 그리움처럼 그 섬 앞바다에는 짙은 안개만이 아득하다. 지난 여름 가슴에 요동치던 파도를 어찌할 바 모르던 섬처녀가 안개 너머로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그리운 연정으로 석양을 바라보고 있다. 보령 대천항에서 꼬박 2시간을 나서야 만날 수 있다는 그 먼 바다, 그 아늑한 바다에 오롯이 떠 있다는 섬을 찾아간다.

읍내 장터라도 다녀오는 섬 토박이 어르신을 만나는 것이 육지를 나서며 바다의 길을 찾는 가장 쉬운 요령이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로 황해의 짙은 바닷빛에 그을린 황금 구릿빛 얼굴과 바다의 바람들이 빚어낸 억세고 굵은 어부의 손마디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섬으로 가기 위해선 여객터미널에서 하루 두어 번 왕래하는 배를 타야 한다. 본래 여객선의 운항 횟수야 왕복 두 번이 정해져 있지만, 일기 변화가 심한 서해의 바다에서 딱히 떨어지는 일정을 고집하는 것 역시 육지에서 살며 익숙해진 습관일 따름이다. 느긋함으로 안개가 걷힐 때까지의 수고를 감당하고, 혹시 발이 묶일지도 모를 천재지변의 요행까지 마음작정을 해야만 한다. 승선신고로 이름자와 주민번호 등 육지에서 밴 흔적이나 습관을 모두 남겨두고 그 섬으로 떠난다.

그 섬은 보령 앞바다의 70여개 섬들 중 가장 먼 바다에 있다고 했다. 해무가 자욱한 바다로 들어 두 시간을 꼬박 달려야 보이는 점점이 섬들을 몇 차례 지나고 나서야 그 섬을 만날 수 있다. 외연도는 보령 앞바다의 오도, 횡경도, 대청도, 중청도, 무마도 등 15개 섬과 함께 외연열도라 불린다. 그 중 외연도는 보령팔경 중 제6경으로 그만큼 섬의 풍광이 빼어나다. 특히 외연도의 섬 풍광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짙은 해무. 자욱한 해무 사이로 솟아오른 섬의 두 봉우리, 봉화산 봉우리와 망재산의 정상이 서해 먼 바다에 잠겨 있는 듯이 숨어 있다가 솟구치듯 떠오른다.

보령항을 떠난 쾌속선은 파고 1.5m 내외의 잔잔한 바다를 가른다. 외연도를 들어서기 전에 같은 바닷길에 늘어선 호도와 녹도항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유난히 푸른 물빛이 돌 때 좌회전 한 번, 바로 직진하여 파도가 잔잔해지는 바다 앞에서 동력을 좀 내리면 섬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파도가 슬그머니 뱃등을 밀자 외연도 최고봉인 봉화산 산자락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선다.

사실 외연도는 새하얀 해무가 섬을 감싸안을 때가 많아 연기에 가려진 섬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창가에서 관광객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섬주민 김기남씨(충남 보령 외연도리)가 길물음을 거든다.

“외연도는 새벽이 젤여. 바람이 자부는 새벽이면 저 멀리 중국서 달기 새끼 우는 소리가 여 외연도 섬에서도 들린다 안혀. 저기 망재산 꼭대기가 살푸시 보일 때쯤이 제일 경관이지.”

오랜 세월과 이야기를 따라 걷다
봉화산 자락과 마주보고 있는 망재산 정상이 짙은 안개 속에서 머리를 내어미는 것이다. 안개 자욱한 외연도에서 제일 안개가 오래도록 머무르는 곳이 바로 망재산. 망재산 봉우리의 해무가 걷히면 관광객들은 봉화산 정상의 봉수대 산책로를 거쳐 명금해변의 해안 산책로를 지나 망재산 고래조지까지 산행을 즐긴다. 이 섬에서 6대째 살아오고 있다는 김계덕씨(보령시 오천면 외연도리)가 운영하는 민박집에 짐을 푼다.

외연도에서 섬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부녀회장 김정애씨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 에 두어 번 방파제에서 섬을 드나드는 이들을 마중하는 것이다.

외연도에서 섬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부녀회장 김정애씨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 에 두어 번 방파제에서 섬을 드나드는 이들을 마중하는 것이다.

“봉화산 쪽으로 올라 봉수대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참 좋습니다. 명금해변은 해안선의 일부가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요. 돌삭금, 누적금 등 해변에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가 걷기에 편합니다. 고래조지까지 찬찬히 둘러보려면 서너 시간쯤 걸립니다. 멀리 앞바다의 외연열도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고래조지가 전망이 제일 좋습니다.”

망재산이란 이름보다 섬사람들이 많이 입에 올리는 지명이 ‘고래조지’다. 포유류인 고래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자이다. 고래조지에는 바다의 신인 고래에 대한 섬김이 담겨져 있음직하다. 망재산을 오르는 길, 해안선을 따라 걸으면 천혜의 장관이 펼쳐진다.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면 해안선의 일부가 육지 안쪽까지 움푹 파인 지형에는 ‘금’자를 붙이고, 튀어나온 곳은 ‘배’자를 붙인다. 돌삭금과 누적금 등의 해안가를 지나자 황금빛 암반지형이 눈에 들어온다.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는 황금빛 바위가 바로 고래조지다. 자욱한 안개가 음의 기운이라면 황금빛 고래조지는 섬의 기운을 북돋우는 양의 기세를 의미한다.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보하고 나누는 것이다.

서해 먼 바다의 신비의 섬
하루 두 차례에 걸쳐 섬을 오가는 여객선은 섬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셈이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일하러 나간 마을은 한산하다. 그래 외연도에 발을 디디면 누구나 서성거리게 마련이다. 섬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주민이고, 서성거리는 이는 외지인이다. 외연도에서 섬의 살림살이를 챙기는 부녀회장 김정애씨가 방파제 끝에서 손을 흔든다. 하루에 꼭 두어 번 방파제에서 섬을 드나드는 이들을 마중하는 것이 6년째 부녀회장를 맡아보고 있는 그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보령팔경 중 제6경으로 꼽힐 정도로 섬의 풍광이 빼어난 외연도의 마을 풍경.

보령팔경 중 제6경으로 꼽힐 정도로 섬의 풍광이 빼어난 외연도의 마을 풍경.

“우리 외연도는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입니다. 보령 앞바다에서 제일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오래도록 사람이 살아온 유인도로 섬마을의 풍속과 마을주민들의 인심이 참 좋습니다. 주민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지만 몇 해 전부터 서해바다를 대표하는 섬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자연산 먹거리와 천혜의 자연경관 그대로입니다. 참말로 좋은 기운을 얻어 가실 수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새롭게 마을 담장에 벽화도 그리고 해안선을 중심으로 해안산책로를 정비하는 등 섬 단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대략 130여 가구에 500여명의 주민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살아온 전형적인 어촌마을입니다. 아직도 섬을 지켜온 당산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 보름에는 당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봉화산 자락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외연도의 당제는 중국 제나라 때의 장군 전횡이 한때 이 섬에 머물렀던 것에 기인하는데, 벌써 수백 년도 더 된 14세기 말 이전부터 섬 주민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 성지에서 당제를 지내며 풍어와 평안을 기원하는 오래된 풍속이다. 또 봉화산(273m) 정상의 봉수대는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가장 육지와 멀리 떨어진 봉수대다. 조선전기 왜적을 감시하고 바다 건너 중국을 경계하는 역할과 조선후기 자주 출몰했던 이양선에 대응하기 위한 봉수대로, 외연도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상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신비의 섬 외연도. 외연도는 홍도, 청산도, 매물도와 함께 지난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어 섬 개발이 마무리되고 있어 서해를 대표하는 섬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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