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을 보는 남과 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남자는 의심한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들끼리만 친구로 뭉치기도 힘든데, 변호사, 건축가같이 잘 나가는 직업에 집도 좋고 차도 좋다니…. ‘데이트도 아닌데 좋은 식당에서 밥 먹고 술 마시며 사는 남자친구들이 존재할까’라고.

여자는 공감한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처럼 노는 40대 남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유치하고, 폼 재기 좋아하고, 친구라면 사족을 못 쓴다. 직장에선 교수님이고, 대표님 소리를 듣지만 여전히 철없이 산다고 말이다.

SBS <신사의 품격> (SBS 제공)

SBS <신사의 품격> (SBS 제공)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는 남성과 여성의 온도차가 무척 크다.
40대 남자들이 주인공이지만 남자들은 <신사의 품격>에 공감하지 못한다. ‘엠엘비파크’ 같은 ‘남초’ 커뮤니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외계 드라마”라는 남자들의 글이 넘치고 있다. 반면 주부와 여성들이 많이 찾는 ‘82쿡’ ‘미씨유에스에이’ 등 인터넷사이트에는 드라마 신봉자들이 넘쳐난다. 극과 극의 반응이다.

여자들은 “<신사의 품격> 보는 재미로 주말 밤을 산다”나 “진짜 버릴 장면이 없다”는 댓글을 올린다. 남자들은 분노에 가까운 저항을 하고 있다. “나하고 너무 동떨어진 얘기가 공감이 안 간다”부터 “<신사의 품격> 같은 드라마 때문에 현실세계에서 연애하기가 힘들다”는 원망도 이어진다.

<신사의 품격>은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을 히트시킨 김은숙 작가와 신우철 감독이 다시 뭉친 작품이다. 장동건은 이 드라마로 <이브의 모든 것> 이후 1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화제작이지만 남자와 여자는 드라마를 보는 방법이 다르다. 감성이 발달한 여자는 캐릭터에 몰두한다. 장동건이 김하늘의 허리에 옷을 묶어주거나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겨주는 것만으로도 장동건이 해야 할 ‘꽃중년’ 역할은 다한 거다.

SBS <신사의 품격> (SBS 제공)

SBS <신사의 품격> (SBS 제공)

김은숙 작가의 톡톡 튀는 대사는 캐릭터를 더 생동감 있게 만든다. 장동건은 김하늘의 엉덩이를 ‘공격형 엉덩이’이라고 칭찬성 타박을 한다. 장동건이 사치스러운 선물이라고 거절할 때 “그럼 사치스럽게 말구 가치스럽게 신어요”라고 말한 건 여성 시청자들의 오감을 집중시켰다. “안 가고 싶지만, 억지로 갈게요. 더 있다간 뭔가 나쁜 짓을 할 거 같거든요” “건강한 남자의 밤은 건강한 여자의 밤과 다르다”는 장동건의 말은 장동건의 그 어떤 노출보다 더 짜릿했다.

이성적인 남자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보려고 하지 않는다. 40대 초반의 남자가 저렇게 돈이 많을 수 있나, 사업가면 눈코 뜰새 없이 바빠야지 만날 친구들 만나 떠들 시간이 있나. 40대면 삼겹살에 소주가 제격이고, ‘인격’이라는 배도 좀 나와야지, 빨래판 복근에 와인이나 홀짝거리는 게 가능한가 등등. 수없는 질문을 한다. 답을 구하지 못한 남자들은 채널을 돌리거나, 항의성 댓글을 단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행성 사이의 거리만큼, 다른 방법으로 드라마를 본다. 그래서 80~90년대 현대사를 관통하는 드라마 <모래시계>는 남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당겨 ‘퇴근시계’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설정이지만 여주인공들의 버럭 고함과 매서운 눈빛이 강렬했던 <아내의 유혹>은 한국을 넘어 중국 대륙 주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클릭TV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