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원형적 풍경, 하동 평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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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는 어느 곳보다 너른 들녘을 품고 있었다. 또 들녘 곁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둘레의 지리산 남부 능선 역시 든든한 배경으로 손색이 없는 터였다. 그렇게 악양면 평사리가 <토지>의 무대로 정해진 것이다.

‘만석꾼’이 나옴직한 너른 들은 대개가 전라도에 있었고, 경상도에서는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악양 들판. 악양의 너른 들판을 가득 채우는 것은 늙은 부부송과 황금물결 치는 들녘, 그리고 그 들녘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최참판댁.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최참판댁.

악양의 들판에 금실이 좋은 부부마냥 오래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어느 가을 새벽. 한 노모가 이 황금들녘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있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마을 토박이들에게 별로 쓸모없는 땅이라 여겨져 무딤이들이라 천대를 받던 악양의 들녘을 지나 평사리 최참판댁을 찾아 서붓서붓 오른다.

어느 가을날 커다란 감나무
그해 가을 어른 주먹보다도 커다란 대봉이 실하게 매달린 감나무는 온 동리의 담장을 감홍빛으로 물들였다. 악양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넓은 들녘과 가을이면 온 동리를 붉게 물들이는 감나무들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만나게 되는 감나무들은 어지간한 동네에서 보아온 허우대만 멀쩡한 다른 동리의 여느 감나무들과는 그 생김에 차이가 있었다. 대략 수령이 수십년이 된 감나무들은 고목에 가까운 형태로 허리를 살짝 구부리거나 비틀어진 모습인데, 그 모습이 마치 꼬장꼬장한 양반마을의 상어른 풍모를 지닌 듯도 하여 잠시 주춤거리게 하는 품이 있었다. 

그래 그 감나무에서 열린 감들은 가볍게 노란 빛이 고이거나 잘 여물지 못해 드는 녹색의 기운이 없이 깨끗하며 말끔한 담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또 꼭 작은 아이의 얼굴만한 그 감의 모양 역시 사뭇 달랐다. 머리를 곱게 빗어넘겨 쪽을 곱게 진 낯빛 좋은 반가 아낙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도 하고, 대봉이란 이름자처럼 커다란 산봉우리를 닮은 듯 참 듬직한 것이었다. 그래 윤기가 반지르르한 짙은 홍빛을 머금은 감 두어 개를 작은 소쿠리에 담아 대청마루 한편이거나 장독대 위에 얹어놓기만 하여도, 누추하고 낡은 오래된 시골집을 참 점잖고 고상하게 하는 품격이 있었다. 작은 정물이 고상하고 훌륭한 품격을 세우는 것으로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 땅의 근본에 가까운 원형적 삶터
박경리 선생이 찾았던 악양의 평사리는 바로 그런 곳이었다. 악양의 너른 들판을 가득 채우는 것은 늙은 부부송과 황금물결 치는 들녘, 그리고 그 들녘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의 모습이다. 평사리는 전형적 한국 농촌의 모습으로 우리 민족의 원형적인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최참판댁의 명예 참판인 백산 백종웅옹은 최참판댁을 찾은 관광객과 어린 학생에게 선조의 정신문화를 알려준다.

최참판댁의 명예 참판인 백산 백종웅옹은 최참판댁을 찾은 관광객과 어린 학생에게 선조의 정신문화를 알려준다.

근년에 작고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토지의 배경으로 이곳 평사리를 낙점한 것 역시 그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남 완도의 청산도가 임권택 감독이 낙점한 원형적 한국 풍경이었던 것처럼, 이곳 평사리 역시 박경리 선생이 발길을 멈추고 찾아내어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를 그려낸 가장 원형적인 삶의 터인 것이었다. 선생은 <토지>를 구상한 후 마땅한 무대를 찾던 중 여행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이곳 평사리를 만나 소설의 첫 무대로 삼게 된다. 

“내가 경상도 안에서 작품의 무대를 찾으려 한 이유는 언어 때문이다.” 통영에서 태어나 자라고 진주에서 공부를 했던 선생은 익숙한 터를 찾아 경상도에서 작품의 무대를 찾아야만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의 말투, 즉 언어와 풍습 등 태도에 대한 자연스러움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그러나 ‘만석꾼’이 나옴직한 너른 들은 대개가 전라도에 있었고, 경상도에서는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평사리는 어느 곳보다 너른 들녘을 품고 있었다. 또 들녘 곁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둘레의 지리산 남부 능선 역시 든든한 배경으로 손색이 없는 터였다. 그렇게 악양면 평사리가 <토지>의 무대로 정해진 것이다.

하동의 서부에 자리한 악양면은 북쪽으로 지리산에서 뻗어나온 봉우리를 등지고, 동서쪽 지맥이 악양면을 좌우로 에워싸고 있다. 가운데에 토질이 비옥한 분지와 악양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들판을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겨 ‘무딤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평사리는 평사낙안(平沙落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평사리는 악양면 서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데 산기슭에는 상평마을이, 섬진강변에는 외둔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산 아래의 들녘을 한참 내려보다 마을 들머리로 올라선다. 낮은 담장 너머로 어린 서희(소설 <토지>의 주인공)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낭랑한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가 멈추면 그 사이 사이 어르신의 호통이 이어진다. 

“악양면은 본디 신라 경덕왕 때에는 소다사현(小多沙縣)이라고들 혔제.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아가’라 허고, 한자로 악아(岳兒)로 쓰는데, 그래서 악양의 ‘악(岳)’자는 ‘작다’란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제. 또 볕을 뜻하는 양(陽)은 ‘따사롭다’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여.”

하동의 섬진강변.(위) 평사리 최참판댁 주변으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아래)

하동의 섬진강변.(위) 평사리 최참판댁 주변으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물건을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아래)

평사리 최참판댁 사랑채에 점잖은 어르신이 두어 남짓 아이들에게 말씀을 이르고 있다. 아이들에게 훈육을 하고 있는 이는 최참판댁의 명예 참판인 백산 백종웅옹(하동군 고전면 전도리). 최참판댁을 찾은 가족 단위의 관광객과 어린 학생들에게 양반가의 풍습, 한학 등 동양철학을 기초로 선조들의 정신문화를 알리고 바른 마음가짐을 일깨운다. 

“유학자 가문의 후손으로 자란 터이니, 몸에 밴 양반가의 생활을 아이들에 들려주는 것이여. 햇수로 5년째인데, 요즘 아이들이 똑똑하고 오히려 예의도 바른 편이니 걱정할 것이 안 됩니다. 어른이 먼저 덕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공경하면 아이들 역시 그대로 배우는 것이지요. 그게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선조들의 지혜였으니까.” 

아이들은 바른 말씀을 일러줄 것만 같은 선생을 뵈러 허물없이 사랑채에 들어선다. 무서울 것만 같은 어른 앞에 몇몇 아이들이 무릎앉음으로 선생의 말씀을 듣는다. “어데를 가건 넓은 들과 그 들녘을 닮은 사람의 덕은 사람을 끌어모으기 십상이다. 이곳 평사리의 들녘이 바로 그러한 곳이다.”

느림의 미학, 슬로 시티 하동으로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를 소설의 공간으로 택한 이유는 ‘만석꾼’이 나옴직한 악양의 너른 들판 때문이다.

박경리 선생이 평사리를 소설의 공간으로 택한 이유는 ‘만석꾼’이 나옴직한 악양의 너른 들판 때문이다.

마을에서 제일 높이 자리한 최참판댁 담장 아래로 지리산 골 아랫녘에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현재 소설 속의 최참판댁은 한옥 14동으로 지어져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과 생활모습을 재현해놓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최치수와 최서희 일가를 중심으로 한 최참판댁을 실제로 재현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마치 소설 속에 직접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하고 있다. 또 다도체험과 풍물체험, 민속놀이 등 각종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평사리는 실재와 허구가 맞물려 생활과 역사가 어우러지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인근의 평사리문학관과 한옥체험관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오래도록 머무는 곳들이다. 

또 악양면 전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2009년 이탈리아 슬로시티 국제조정이사회에서 슬로시티로 인증되면서 느림의 미학으로 우리 전통마을의 면모를 새롭게 알리고 있다. 지리산을 따라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남해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천혜의 절경이 ‘느림의 미학과 향기를 지닌 마을’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실제 악양벌 너른 들판에는 비닐하우스가 일절 없다. 마을주민들은 자연 그대로의 대지에 들이치는 햇살과 선선한 바람으로 농토를 일구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 물길을 젖줄로 알곡을 키워가고 있다. 

이에 따라 악양면뿐 아니라 하동군 역시 웰빙도시로 거듭나면서 외지인의 방문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평사리를 둘러본 관광객들은 이웃 마을인 화개면 탑리의 ‘화개장터’와 봄이면 십리 벚꽃길로 유명한 지리산 쌍계사와 숲과 계곡을 찾아간다. 숲길과 물길과 꽃길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과 문화역사가 살아 숨쉬는 고장, 그리고 여유로움으로 하동에는 늘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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