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의 기본, ‘캐릭터의 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시트콤 속 인물들 캐릭터의 힘은 드라마의 그것보다 세다.
<순풍산부인과>의 선우용여는 보통의 아줌마보다 훨씬 더 빠른 속사포 말투를 구사했고, <지붕뚫고 하이킥>의 이순재는 보통의 가장보다 더 큰 호통과 방귀소리를 들려줬다. 캐릭터가 센 만큼 인물의 개성은 선명해진다. 캐릭터의 강도와 개성은 정비례다.

MBC 시트콤 <스탠바이>(연출 전진수, 극본 박민정 외) 속 인물들의 캐릭터는 꽤 강렬하다. 방송사 예능국에서 펼쳐지는 PD와 아나운서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탠바이>의 주인공인 아나운서 류진행은 걱정과 청결에 집착한다. 진행을 맡은 프로그램을 잘해보려 걱정만 하다 밤잠을 설치고 결국 지각으로 방송을 망치는 식이다. 또 자기 주변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절대 참지 못한다. 류진행을 맡은 류진은 그간의 밋밋했던 ‘모범생’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가장 강렬하게 캐릭터를 드러낸다.

스탠바이 | 경향신문

스탠바이 | 경향신문

류진행의 동료인 하석진은 ‘국민 아나운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외모며, 학벌이며, 심지어 류진행이 갖지 못한 진행능력까지 타고났지만 그에게도 콤플렉스는 있다. 고등학교 시절 소심한 성격과 못난 외모 때문에 겪었던 ‘왕따’ 이력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PD인 김수현은 남동생을 발차기로 가격하는 강한 누나다. 그러나 회사에선 류진행을 향한 짝사랑의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의 앞에만 서면 지고지순한 여인이 된다.

이 시트콤의 재미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충돌할 때 폭발한다. 하석진은 고등학교 동창인 류기우(이기우)가 조연출로 들어오자 왕따 이력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당시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분노를 표출한다. 류기우가 구박하는 대상이라면 사람이든 토끼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사랑하고 보호한다. 내막을 아는 시청자들은 웃음이 터진다.

김수현은 진행을 향한 마음을 들킬까 항상 고민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김수현과 다른 남자들의 관계를 의심한다. 인물들의 약점에서 시작된 상황 코미디가 이 작품이 주는 즐거움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스탠바이>는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약자인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기본에 충실하다. 시청자들은 ‘하이킥 시리즈 말고도 명품 시트콤이 있다는 걸 알려준 의외의 보물’이라고 평하고 있다. 4~6%대에 그치고 있는 낮은 시청률을 안타까워하면서 게시판에 각자의 홍보방안까지 올리는 재밌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스탠바이 | 경향신문

스탠바이 | 경향신문

극대화된 인물의 약점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준다. <스탠바이> 속 인물들은 ‘누구에게나 천적은 있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임시완은 공부도 전교 1등이고 꽃미남 외모로 팬클럽까지 형성하고 있지만 류진행의 아버지(최정우) 앞에서는 고기반찬도 집어먹지 못한다. 어머니를 사고로 잃은 후 그 집에 얹혀 살기 때문이다. 항상 호통만 치는 류진행의 아버지 류정우는 깐깐한 박준금에게만은 꼼짝을 못한다. 결국 준금과 결혼해 ‘여왕님’으로 받들고 산다.

<스탠바이> 속 인물들의 욕망은 일상적이다. 재벌가의 돈이나 운명적인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아니라, 승진이나 연애 같은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 수준의 욕망이다.

그럼에도 생동감 있게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은 알아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출생의 비밀이나 살인교사 같은 막장 요소 없이도, 아이돌 그룹 출신의 청춘스타나 한류스타가 없이도 충분히 재미를 이끌어낸다.

<박은경 경향신문 대중문화부 기자>

클릭TV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