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맛-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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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 그렇다고 모든 신문, 모든 방송에서 다루는 것은 아니다. 좀 삐딱한 시선을 가진 매체, 이른바 진보매체에서 집요하게 다룬다. 진보매체가 세상에 까발리는 소재 중에는 ‘불편한 진실’들이 꽤 있다. 이를 <돈의 맛>이라는 이름 아래 묶었다. 칸 국제영화제는 이 삐딱한 영화를 주목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2012)은 천민자본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재벌 가문의 이야기다. 돈으로 산 권력과 언론의 비호아래 승승장구하는, 혹은 그럴 것 같은 그들의 이면을 직설적으로 겨눈다. 재벌3세 윤철은 “할아버지에게 받은 60억원으로 200조짜리 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모 재벌그룹의 편법 증여액과 묘하게 일치한다. 윤철의 누나 나미는 회사를 경영하겠단다. 윤철과 나미, 누구의 메타포일까.

[영화 속 경제]돈의 맛- 돈이면 안되는 게 없는 ‘불편한 진실’

외국인 투자가인 로버트는 “한국은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라고 말한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경외일 수도, 비이상적인 국가 정의에 대한 비꼼일 수도 있다. 그러자 재벌의 딸 윤나미가 맞받는다. “니네도 노예무역과 제국주의 자본으로 부를 이룬 것 아니냐”고. 원천적인 부도덕의 근원지는 자본주의의 발생지, 서구라는 얘기다.

영화는 4명의 시선을 따라 전개된다. 돈을 내세워 가문의 돈세탁과 뒤처리를 맡아온 윤 회장(백윤식 분), 재벌가의 딸로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윤 회장의 처 백금옥(윤여정 분), 딸인 윤나미(김효진 분). 그리고 이들의 비서, 주영작(김강우 분)이다.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에로티시즘이 파고 든다. ‘돈의 맛’이란 ‘섹스의 맛’이라고 임 감독은 말한다. 돈은 권력을 탐하고, 성(性)을 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돈의 맛>은 임 감독의 전작 <하녀>(2010)를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백금옥은 <하녀>에서 안주인인 해라(서우 분)가 연상되고, 윤나미는 은이(전도연 분)를 좋아했던 해라의 딸인 나미가 연상된다. 두 사람은 영화 속에서 홈시네마를 통해 영화 <하녀>를 본다. 감독의 장난기다.

재벌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최대 50%까지 부과되는 상속세와 증여세다. 200조원짜리 그룹을 상속이나 증여받는다면 100조원(공제 제외)의 세금을 내야 한다. 상속세나 증여세가 높은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이다.

상속세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죽고나서 상속받는 재산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이다. 증여세는 살아 있는 피상속인으로부터 받는 재산이다. 두 세금은 세율구간이 똑같다. 1억원 이하는 10%, 1억원 초과~5억원 이하는 20%,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는 30%,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는 40%, 그리고 30억원 초과는 50%다.

상속세는 사망자의 재산 전체에 부과되는 반면 증여세는 증여를 받는 재산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된다. 때문에 증여세가 상속세보다 통상 적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40억원의 재산을 남기고 사망했다. 이를 상속세로 계산하면 40억원에 50%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2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만약 이 사람이 사망 전 배우자와 자식 등 4명에게 10억원씩 증여했다고 가정해보자. 각 10억원에 대해 30%의 증여세율이 매겨진다. 1인당 3억원씩, 그러니까 4인은 12억원만 내면 된다. 상속세에 비해 8억원을 절세할 수 있다. 단 공제를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다.

각종 공제를 적용하면 통상 10억원까지는 상속을 받아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상속세 논쟁에 일반인들이 전혀 동요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

영화 속에는 옥쇄파업을 벌였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경찰에 쫓기는 장면들이 나온다. 윤 회장가가 이 회사를 해외자본에 매각하는 자리에 검찰이 급습해 회장을 체포한다. 숱한 희생자를 남긴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한 임 감독의 위로였을까. 진한 여운이 남는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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