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멸망보고서 - 침체상황 못 벗어나는 ‘좀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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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술지 사이언스는 5월 11일자에서 마야 지구멸망 예언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마야 상형문자를 해독해보니 2012년은 단지 새로운 달력이 시작되는 전환점이지 인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야문명 달력은 2012년 12월 21일로 끝난다. 이 때문에 인류문명도 올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종말론이 퍼졌다.

김지운, 임필성 감독의 <인류멸망보고서>(2011)는 ‘인류종말’이라는 주제로 3개 단편영화를 담아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3개 영화간 연관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의미를 찾아 굳이 묶으려 한다면 지루한 영화다. 영화 속에 담긴 풍자와 해학만큼은 주목해볼 만하다. 지구 마지막 날까지 다른 정당과 설전을 벌이고, 홈쇼핑에서 상품을 팔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분명 저럴거야…’라면서.

[영화 속 경제]인류멸망보고서 - 침체상황 못 벗어나는 ‘좀비경제’

3편의 단편은 <멋진 신세계> <천상의 피조물> <해피 버스데이>다. 임필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멋진 신세계>는 광우병 이야기다. 분리수거하지 않고 버린 음식물쓰레기들이 사료가 되고, 소가 먹은 뒤, 도축돼 다시 나의 입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잘못된 사료를 먹은 쇠고기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이를 먹은 나도 감염이 된다. 바이러스가 퍼지자 하나의 당, 뉴라이트 연합, 옳은생각연대 등 어디선가 본 듯한 단체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은 현실에 대한 풍자다. 2006년 기획됐다고 하니까 조금 더 빨리 개봉됐더라면 2008년 촛불시위와 맞물려 큰 화제가 될 뻔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울하고 음산해 전작인 미스터리극 <남극일기>(2005)와 많이 닮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좀비로 변한다. 산 것도,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존재. 정상인들의 몸을 물어뜯으며 바이러스를 퍼다 나른다. 우리가 자초한 섬뜩한 미래다.

좀비는 경제에도 종종 쓰인다. 현금 지급, 세금감면 같은 경기부양 정책을 아무리 펴도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별로 반응을 안 해 침체상태가 계속되는 경제를 좀비경제라 부른다. 1990~2000년 초 일본 경제를 빗댔다. 어떤 정책을 내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며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좀비경제는 일본화(Japanification)라고도 말한다. 한때 세계 2대 경제국이었던 일본이 침체의 상징이 됐다.

최근에는 좀비국가라는 단어도 종종 쓰인다. 아무리 구제금융을 주어도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는 국가들을 말한다. 유로존의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좀비 위기국이다.

좀비는 경제전망에도 쓰인다. 비관론, 낙관론이 아닌 좀비론이다.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부채의 늪에 빠진 경제주체들이 소비를 늘리지 않아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다. 저금리로 돈을 빌린 기업들은 내부유보만 하고 투자를 하지 않으며, 개인은 저축을 하고 소비를 하지 않는다. 돈은 흘러나갔는데 재투자가 되지 않으니 경기침체는 계속된다. 좀비론은 비관론보다 더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가 나거나 비가 오는 날이 아닌 구름 낀 날이 더 답답한 것과 같다.

좀비기업도 있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정부 또는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간신히 연명하는 기업이다. 시장에서 당장 퇴출시킬 경우 큰 충격을 줄 수 있거나 채권단의 피해가 크다고 판단한다면 추가 지원을 할 수 있다. 대마불사의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잠재력 있는 기업에 지원되어야 할 몫이 그만큼 줄어들고 구조조정이 미뤄진다는 측면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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