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 소수계 빈곤 유발하는 ‘야성적 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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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의 대통령은 ‘흑인’ 오바마다. 하지만 50년 전인 1960년대만 해도 미국의 흑백차별은 일상이었다. 인종차별 철폐를 담았던 마틴 루터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과 함께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명연설이다.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영화 <헬프>(The help·2011)는 루터킹 목사의 명연설이 있던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잭슨이 무대다. 작가 혹은 기자의 꿈을 꾸고 있는 발랄한 숙녀 스키터(엠마 스톤 분)가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나섰다. 자신들의 이름이 공개되면 길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살벌한 시대다. 스키터는 친구의 가정부 에이빌린(바이올라 데이비스 분)을 설득한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다혈질의 미니(옥타비아 스펜서 분)도 섭외 대상이다. 이들은 입을 열게 될까.

[영화 속 경제]헬프 - 소수계 빈곤 유발하는 ‘야성적 충동’

원작은 캐서린 스토킷의 자전적 소설 <헬프>다. 그녀는 미시시피 잭슨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흑인 가정부 손에서 컸다. 극중 스키터는 자신의 아바타다. 이 소설은 밀리언셀러다. 하지만 출간에 앞서 60여 차례나 출판을 거절당한 경력도 지니고 있다.

미시시피 주는 흑인 비율이 높다. 미국의 목화지대(코튼 벨트) 중심에 위치한 탓에 흑인 노동력이 집중 투입됐다. 미국에서 가장 늦은 1964년 흑인과 백인 학생이 같이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지금도 미국 어느 주보다 흑인인구 비율이 높다. 1인당 평균 연간소득은 미국 최하위다. 흑인들의 가난한 생활이 반영됐다.

자본주의에 던져진 질문 중 하나는 ‘왜 소수계의 빈곤이 계속 대물림되느냐’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소수계가 잘사는 나라는 드물다. 

미국에서 흑백평등이 이뤄진 지 40년이 지났지만 경제적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흑인 빈곤율은 백인의 3배, 실업률은 2배다. 경제학에서 흑인들이 가난한 이유는 기술과 금융자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의 시각은 다르다. 소수계가 가난한 것은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의 영향 때문이라고 밝힌다. 야성적 충동이란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비경제적인 본성을 통틀어 말한다. 예를 들어 남들이 주택을 사니 나도 괜히 급해져 집을 사는 것은 야성적 충동 때문이다. 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케인즈다. 그는 “인간 활동의 대부분이 수학적 기대치(합리성)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낙관주의에 의존하려는 인간의 불안정성이 판단과 결정의 주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가 정의한 ‘야성적 충동’은 5가지 요소가 있다. 이 중 소수계의 빈곤을 설명하는 야성적 충동은 두 개다. 하나는 공정성, 또 하나는 이야기다.

각종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들은 미국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불신한다. 이 시스템은 기득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불공정한 시스템이어서 나의 가난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우리’ 흑인은 ‘그들’ 백인에게 착취를 당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돈 벌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배경에 깔려 있다.

우리나라의 소수계라고 다를 게 없다. 한국 경제 시스템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과 당신들이 한국인과 똑같다는 의식을 심어주지 않는다면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몇 푼의 보조금 지급이나 직업교육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수계의 빈곤은 사회통합을 방해하고 사회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애커로프와 쉴러는 소수계의 야성적 충동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해답으로 소수계 우대정책을 제안했다. 하지만 탈북자, 조선족, 외국인노동자 등 우대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컨센서스(동의)가 얼마나 형성돼 있는지는 자신하기 어렵다. 새누리당 비례대표인 이자스민씨에 대한 인터넷 상의 논란은 그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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