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 예산은 많고 효과는 작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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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건축가

“여러분 고맙습니다/나무도 고맙고/바람도 너무 고맙고/하늘도 고맙고/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되면, 욕심과 분노를 모두 내려놓게 되면 세상 모든 것이 고맙다. 고 정기용 건축가는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고맙다”고 했다. 정기용은 공공건축의 대가다. 무주 공공프로젝트와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도 그가 설계했다.

[영화 속 경제]공공건축, 예산은 많고 효과는 작다면

<말하는 건축가>(2012)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작품이다. 지난해 3월 정기용 선생이 타계하기 직전 1년여의 여생을 담았다. 영화는 그의 사후 1년 만에 공개됐다.

영화는 정기용의 대표작인 무주 프로젝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주군 안성면사무소를 만들 때 정기용이 먼저 한 일은 주민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뭐가 필요한가요?” 면사무소의 실제 주인인 주민들이 바라는 것은 뜻밖에도 목욕탕이었다. 제대로 된 목욕탕이 없어 목욕을 잘하지 못하는 주민들에게는 멋진 면사무소보다는 목욕탕이 더 필요했다.

무주공설운동장 스탠드 위로는 등나무가 에워싸 있다. 주민들이 앉았을 때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연친화적 차양막이다. 3~4월 등나무꽃이 흐드러지면 장관을 이룬다. 그런데 군청에서 뒤늦게 등나무 위로 태양열집열판을 세웠다. 집열판 그늘 속에 들어간 등나무가 제대로 자랄 리 없다. 정기용은 말한다. “이런 게 녹색성장이라니…….”

정기용에게 건축은 소통이었다. 그에게 건축가는 자유인이고 지식과 시대정신, 상상력을 담는 사람이었다.

그는 공공건축물을 지으면서 돈은 적게, 효과는 크게 나도록 했다. 공공건축이란 공공성이 있는 건축물을 말한다. 관공서가 대표적이다.

공공건축에는 대개 예산이 투입된다. 일정금액 이상의 사업은 비용편익분석(BC분석)을 통과해야 한다. 비용편익분석은 정책의 비용과 편익(효과)을 화폐단위로 바꿔 계산하는 것을 말한다. 편익에서 비용을 뺀 순현재가치법(B-C)과 편익을 비용으로 나눈 비용편익비(B/C비) 등이 있다. 순현재가치가 0보다 크거나 비용편익비가 1보다 크면 투자 대비 편익이 크다는 의미다. BC분석은 공항, 항만, 도로, 댐 등 사회간접자본(SCO)사업에도 적용된다.

문제는 비용편익비의 신뢰성이다.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편익 측정에는 건축에 따른 외부효과들이 포함된다. 예컨대 경전철을 놓는다 치자. 경전철 이용객 수와 이에 따른 예상수익뿐 아니라 경전철 건설에 따른 관광산업 발전, 지역개발효과, 교통량 분산에 따른 혼잡비용 감소효과, 인근 땅값 상승효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외부효과 계산에는 해당 지자체의 의지가 높게 반영된다. 경전철 건설을 계기로 대규모 추가 투자계획을 잡아뒀다면 외부효과의 예측치도 훨씬 높아진다.

또하나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다.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을 경우 주관적인 개입이 이뤄진다. 문화재, 환경보존 등의 가치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반도대운하가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BC는 2.3이었다. 하지만 비용에 유지관리비 등이 빠졌다. 이를 넣고 다시해보니 BC는 0.24를 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시골에 들어선 기적의 도서관에 대해 정기용은 “자본의 논리로 가면 이런 좋은 건축물이 그런 지역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비용편익이 떨어지더라도 공공성만 크게 높다면 지어질 수 있는 것이 공공건축물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다. 너무 많은 예산을 쓴다면 시민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정기용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대해 “평당 2000만원씩이나 써야 하는 공공건축이라면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질타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계획된 디자인서울 등 많은 사업이 재검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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