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과 남촌, 옛 골목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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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은 지금의 종로구 가회동·재동·삼청동 일대의 한옥이 모여 있는 동리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가깝고, 남촌은 중구 남산동에서 필동을 거쳐 묵정동에 이르는 남산 기슭의 근방 동리로 충무로역이나 동대입구역에서 신발끈을 다잡으면 수월하다.

북촌과 남촌의 골목길은 에돌아 걷는 옛 시간 속으로의 나들이다. 북촌에서는 팔자걸음으로 거드름도 피워보고, 남산 아랫녘에선 허생이 살던 마을을 그리며 옛 풍경 속으로 서붓서붓 거닐어볼 참이다. 머지않아 봄이 오면 골목골목, 저기 저 담장마다 개나리며 벚꽃, 산수유 등 봄꽃들이 천지사방으로 흩어질 게다.

북촌마을에는 일종의 카메라 존(Zone)인 북촌팔경을 지정해 놓았고,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북촌마을에는 일종의 카메라 존(Zone)인 북촌팔경을 지정해 놓았고, 이를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북촌은 팔자걸음, 남촌은 딸깍발이
서울 땅 남산 아래에는 묵정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허생이라는 가난한 선비가 살았다. 남산의 기슭에 다다르면 우물가에 오래된 살구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사립문이 나무를 향해 열려 있었으며, 초가 두어 간이 비바람도 가릴 수 없었다. 명색이 양반입네 하지만 변변찮은 신발 한 짝도 없는 남산 딸깍발이였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허생전>을 쓴 때는 조선 후기 정조 때다. 당시 한양에서 경복궁과 창덕궁의 궁궐 근처는 예로부터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북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남산 아래 지금의 남산한옥마을이 있는 근방은 남촌이라 하였다. 북촌에는 팔자걸음 한 번으로 뭇 백성들을 헤쳐모여 할 만한 세를 지닌 궁중의 일가붙이나 사대부들이 솟을대문을 세우고 모여 살았고, 남촌에는 ‘나도 양반입네’ 하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에 벼슬도 변변치 못한 반팔자걸음의 남산샌님과 상인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매천야록>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 이하 삼색(三色)이 섞여서 살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예전에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말이 흔했다. 북촌은 떡을 잘 만들고, 남촌은 술을 잘 담근다는 말이다. 하지만 남촌의 ‘술’은 빈 속에 요기가 되게 마시는 가난한 남산골 선비들의 텁텁한 막걸리요, 북촌의 ‘떡’은 배부른 궁중 일가붙이나 사대부가에서 때마다 심심찮게 해먹던 진수성찬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통과 현대가 어울린 북촌한옥마을
북촌은 지금의 종로구 가회동·재동·삼청동 일대의 한옥이 모여 있는 동리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가깝고, 남촌은 중구 남산동에서 필동을 거쳐 묵정동에 이르는 남산 기슭의 근방 동리로 충무로역이나 동대입구역에서 신발끈을 다잡으면 수월하다.

(왼쪽) 휴가를 맞아 온가족이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을 찾았다는 카우르 가족. (오른쪽) 사단법인 북촌예술단의 김진이씨는 북촌 자랑에 여념이 없다.

(왼쪽) 휴가를 맞아 온가족이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을 찾았다는 카우르 가족. (오른쪽) 사단법인 북촌예술단의 김진이씨는 북촌 자랑에 여념이 없다.

먼저 허위허위 팔자걸음을 흉내내며 북촌으로 길을 잡는다. 북촌은 1920년대까지 별다른 변화가 없다가 1930년대 일제를 거치면서 서울의 행정 경계가 새로이 확장되면서 근대도시의 형태로 변형되기 시작한다. 당시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의 중소규모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북촌한옥마을에 밀집되어 있는 한옥은 대부분 이 시기에 지어진 것들. 이에 따라 전통 한옥의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함석처마를 덧대는 등의 근대 주택 유형으로 다소 변형된 한옥의 모습을 나타낸다.

천천히 골목을 따라 기웃기웃 돌아보니 지붕 처마를 잇대고 이웃과 어울린 한옥의 느긋한 풍경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백년 세월을 버텨온 고집스런 전통 한옥의 풍치는 다소 줄었지만 도도한 처마 끝을 세우고 있는 품은 여전한 것이다. 또 최근 북촌한옥마을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늘어난 덕택에 현대식 상가 등 건물들과 한옥의 조화가 새로운 어울림으로 특색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단법인 북촌예술단의 김진이씨(종로구 가회동)는 “북촌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근대화 이전 조선시대 왕족과 고위 관직의 양반들이 많이 거주했던 역사적 중심지이자,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며 “북촌은 ‘거리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볼거리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덧붙인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북촌한옥마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북촌한옥마을.

그래서일까, 작은 골목골목마다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넘치고 벌써 한옥 담장 너머로는 봄기운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북촌마을의 대표적인 관광 포인트인 북촌팔경에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관광객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북촌마을에서는 일종의 카메라 존인 북촌팔경을 지정해 놓았는데, 1경부터 8경까지 순례를 하듯 북촌팔경을 돌아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골목골목 숨어 있는 박물관을 기웃거리다 멀리 남산타워를 바라보고서야 남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허생이 살던 남산 아랫마을
이제 남촌이다. 남산 딸깍발이 허생원이 살았던 때의 남촌은 비만 오면 길이 푹푹 빠지기 일쑤인 진고개(지금의 충무로)·필동·묵정동 등 남산 아래의 밑둥치를 일컬었다. 하지만 남촌 역시 1930년대 전후로 개화의 덕을 입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신식 문물이 들어오면서 서울의 풍경이 근대적으로 바뀌며 ‘모던’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새로운 가치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시 돈줄을 쥔 은행이며 상가가 명동 등 남촌 일대에 들어서면서 북촌보다 살기가 넉넉해진 것이다.

이후 남촌은 서울이 강남과 강북으로 나누어지는 현대까지 서울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명성을 누린다. 특히 명동·충무로는 종로통과 함께 사람과 돈이 모여드는 서울의 중심으로 신남촌(강남)이 탄생되기 이전까지 명실상부한 번화가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1989년 서울 중구 필동에 남산골 제모습찾기 사업에 의해 조성된 남산한옥마을.

1989년 서울 중구 필동에 남산골 제모습찾기 사업에 의해 조성된 남산한옥마을.

허생이 살았을 것만 같은 옛 남촌의 모습은 남산한옥마을에서 그려볼 수 있을 뿐이다. 충무로역에서 가까운 남산한옥마을은 1989년 중구 필동에 남산골 제모습찾기 사업에 의해 조성된 마을로 서울의 여러 곳에 남아있던 한옥을 그대로 옮겨 복원한 한옥을 중심 테마로 한 전통문화 체험파크이다.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북촌의 한옥처럼 생생한 맛은 좀 덜하나, 오히려 우리 전통 한옥의 건축미와 주택문화 등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한옥은 변형이 없는 순수한 전통가옥으로 당시의 생활방식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집의 규모와 살았던 사람의 신분에 걸맞게 재현해 놓았다. 또 정자와 정원은 바라다보이는 남산의 산세를 살려 전통양식으로 꾸며 놓았으며, 전통 연극·놀이·춤 등이 상설 공연되며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한국 찾은 말레이시아 관광객 카우르 가족
이에 따라 남산한옥마을은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단골 코스 중 한 곳이다. 비교적 서울의 도심권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주간에는 명동에서 쇼핑관광을 즐긴 후 야간에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진 서울N타워를 오르기 전에 들르는 곳이다. 온가족과 휴가를 맞아 한국을 찾았다는 카우르(Brendon Kaur·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가족이 남산한옥마을을 둘러보았다. 카우르 가족은 이틀 전 한국을 찾아 강원도로 스키 여행을 다녀오고, 오늘은 명동 등에서 쇼핑과 관광을 즐긴 후 남산한옥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카우르는 “오전에는 경복궁을 관광했는데, 가족 모두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반했다”며 “명동에서는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서 놀랍기도 하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즐거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번 한국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아름다운 설경을 즐기며 스키를 탈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원더풀 코리아, 뷰티풀 코리아”를 연발했다. 카우르 가족은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N타워에 불이 켜지자 서둘러 남산으로 향했다.

글·사진|이강<여행작가·콘텐츠 스토리텔러> leeghang@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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