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시리즈 사극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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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은 젊은 연기자들이 기피하는 장르 중 하나다. 100부작 안팎의 대하사극이 중심을 이루면서 1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촬영에 매달려야 한다. 지방 촬영이 많아 몸이 고되고, 수염이나 가채 등 분장도 고역이다. 한여름 더위에는 겹겹이 입어야 하는 한복이 원수 같고, 추운 겨울에는 칼바람을 막아주지 못하는 한복이 얄궂기만 하다. 이른바 ‘사극 톤’이라고 하는 대사도 쉽게 입에 붙지 않는다. 현대극에서는 펄펄 날던 연기자가 사극에서는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KBS 공주의 남자

KBS 공주의 남자

한동안 KBS1이나 MBC 대하사극이 주를 이뤘던 TV 사극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지난 7월 4일부터 SBS 월화극 <무사 백동수>가 첫선을 보였고, 20일에는 KBS2 수목극 <공주의 남자>가 방송된다. 25일에는 MBC <계백>이 첫 방송을 하면서 <무사 백동수>와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 주말 저녁시간대에 집중됐던 TV 사극이, 트렌디 드라마가 차지해온 미니시리즈 시간대를 꿰찬 것이다. 세 작품은 24부작(무사 백동수, 공주의 남자) 혹은 32부작(계백)으로 구성돼 100부작 안팎의 대하사극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제 ‘미니시리즈 사극’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니시리즈 사극’의 시대에 맞게 사극이 달라졌다. 우선 출연진이 젊어졌다. <무사 백동수>에는 <솔약국집 아들들> <웃어라 동해야>로 주목받은 신예 지창욱과 ‘국민 남동생’으로까지 불리는 유승호를 비롯, 윤소이·신현빈 등 20대 연기자들이 포진했다. <공주의 남자>에도 박시후·문채원·홍수현 등 젊은 스타들이 출연한다.

내용도 왕을 중심으로 해 한 시대를 폭넓게 다루기보다는 인물에 중점을 둔다.

SBS 무사백동수

SBS 무사백동수

<무사 백동수>는 조선 후기 박제가·이덕무와 함께 무예교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만든 협객 백동수의 이야기다.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배경으로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을 했다는 내용을 그린다. 드라마 <계백>도 계백 장군을 훌륭한 전략가이자 무예가로 평가한다. 그래서 적국인 신라에서조차 위대하게 평가할 만큼 대쪽 같은 충신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와 함께 백제 의자왕을 방탕하고 무능한 군주가 아닌, 개혁이 좌절된 군주로 재조명한다.

‘미니시리즈 사극’은 지난해 KBS2 <추노>가 이뤄낸 성과들이 밑바탕이 됐다. 24부작이라는 짧은 구성에, 현대적인 영상미, 또 기존의 왕 혹은 영웅 위주의 이야기에서 탈피해 천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이는 사극의 주시청층으로 꼽히는 중장년층 남성들뿐 아니라 젊은 층, 그 중 여성 시청자까지 끌어들였다.

MBC 계백

MBC 계백

이 같은 ‘스타일리시 사극’은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대사도 고어(古語)보다는 현대에 쓰는 말이 주를 이룬다. 배경과 복장만 과거일 뿐 대사나 인물, 구도, 영상미는 현대물에 버금간다. <무사 백동수>의 전광렬과 최민수의 검술 대결 신에서는 꽃잎이 날리는 가운데 주요 칼 동작에 슬로모션 기법을 도입하는 등 스타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

역사적 인물의 매력적인 재해석, 상대적으로 짧은 방송 및 제작 기간,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제작 등 때문에 사극을 두려워하던 젊은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미니시리즈 사극’이 만개하게 됐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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