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 캐릭터 인간미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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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1990~2000년대 드라마 속 왕자들은 좀 쉬웠다. 사업 후계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에 반해 예술에 관심이 있는, 반듯한 왕자님이 대세였다. 시청률 60%를 넘어섰던 <젊은이의 양지>(1995)에서 진미화장품 회장의 아들인 배용준은 회사 대신 영화감독을 꿈꿨다. 자신의 집안 배경을 보고 접근한 친구 이종원을 진심으로 대하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왼쪽부터)성훈, 강지환, 김재원.

(왼쪽부터)성훈, 강지환, 김재원.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의 차인표도 백화점 경영보다 색소폰과 샤워를 더 가까이 했다.

2000년대 왕자님들에게는 까칠함이 더해졌다. <가을동화>의 원빈이나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 <내 이름은 김삼순>의 현빈은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의 원조다.

진정한 사랑(부모든 여자든)을 갈구하던 순수한 왕자님들은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됐다. 조건이 더 복잡해졌다.

SBS 월화극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현기준(강지환)은 코믹함을 입었다. 재벌 2세 호텔 사장으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1등 신랑감이지만 까칠한 성격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코믹 상황이 연출된다. KBS2 월화극 <동안미녀>의 지승일(류진)은 패션회사 사장. 선정적인 광고도 이용하고 노이즈마케팅도 쓴다. 부하직원들의 직언을 참지 못하면서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면 동화 속 왕자보다 짐 캐리에 가깝다.

신체적 어려움도 있다.
MBC 주말극 <내 마음이 들리니>의 차동주(김재원)는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송승환)가 재벌인 외할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현장을 지켜보다 사다리에서 추락해 청력을 잃었다. 상대의 입술을 보며 대화하는 연습을 한 동주는 자신의 장애를 숨긴 채 외할아버지의 회사를 삼키려는 의붓아버지에게 맞선다.

류진

류진

KBS 수목극 <로맨스타운>의 강건우(정겨운)는 초인적인 다이어트에 성공한다. 극 초반 몸무게가 150㎏에 육박하는 거구로 나왔는데, 아버지에게 강제로 떼밀려 유학을 다녀온 뒤에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차가운 왕자님이 됐다.

‘왕자님’들은 고생도 자처한다. SBS 주말극 <신기생뎐>의 아다모(성훈)는 내로라하는 유통기업의 2세지만 사랑하는 단사란(임수향)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단사란이 일하는 기생집 웨이터가 된다. 음식을 나르고, 마당 청소를 한다. 

선배 웨이터들의 발 냄새를 맡으면서 한뎃잠을 자고, 사란의 신발을 손수 닦아준다. 용돈이 아쉽지 않은 그에게 기생집을 찾은 손님들은 “이런 데서 일하기 아까운 인물”이라며 팁을 준다.

MBC 주말극 <반짝반짝 빛나는>의 송승준(김석훈)은 알고보니 재벌이다. 홀어머니가 순댓국집을 운영하고 있고 대기업이 아니라 출판사에서 편집장을 한다. 퇴근 후에는 식당 카운터에 앉아 어머니를 돕는다. 하지만 알고보니 순댓국집은 부업이고, 그의 어머니는 수천억원을 굴리는 사채업자다.

로맨틱 코미디나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재벌 2세 왕자님들은 사랑이나 자아실현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최근 드라마 속 왕자님들은 부족한 게 많다. 덕분에 왕자님들이 좀 더 인간적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왕자님의 조건이 더 강화된 것 같기도 하다.

<박은경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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