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빠져나가는 공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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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영화 속 경제]나랏돈 빠져나가는 공납비리

2월 9일 참여연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년간 발생한 검찰의 ‘문제있는 수사’ 15건을 발표했다. 검찰이 부실하게 수사하거나 반대로 무리하게 수사했던 목록이다. 여기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의혹 수사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국세징수 총책임자가 비리수사를 피해 2년간 미국으로 도피해 있지만 검찰은 “강제소환할 수 없다”며 수사에 손놓고 있는 이상한 사건이다.

정조 16년 세금을 빼돌리는 공납비리가 만연한다. 정조는 ‘탐정’을 파견해 공납비리를 저지른 관료 일당을 잡아내기로 결심한다. 밀명을 받고 특파되는 자가 조선 제일의 명탐정(김명민 분)이다. 공납비리와 호방 살해 혐의로 옥에 갇힌 사또는 자객으로부터 살해당한다. 명탐정은 누명을 쓰고 체포됐다가 감옥에서 개장수 서필(오달수 분)과 만난다. 한국판 셜록 홈즈와 왓슨의 탄생이다.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또 살해에 사용된 주요 단서가 각시투구꽃이다. 각시투구꽃은 한객주(한지민 분)와 노론의 거두 임대감의 조카며느리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한객주는 빼돌린 공납 세탁을 돕는다는 혐의를 받는 상인이고, 조카며느리는 지아비를 못잊어 절벽에서 몸을 던진 열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납세비리 얘기다. 조선시대에는 현물, 특히 지방특산물로 세금을 냈다. 이게 공납이다. 하지만 공납은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너무 많은 양을 부담시킨 데다 특산물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예컨대 부산은 신발을 납부하도록 했다고 하자. 지금은 신발공장이 망했다. 그런데도 조정은 계속해서 신발을 보내라고 요구한다. 시민들은 신발을 사서 조정에 납부해야 했다. 공납물품을 구매해주는 상인과 이들과 결탁된 세정관료들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신발값을 과도하게 요구한 것이다. 

반드시 신발을 사야 하는 시민들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신발을 살 수밖에.
이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쌀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했다. 공인(貢人)은 쌀로 왕실이 필요한 특산물을 구입했다. 대동법은 조선의 상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 조달로 대규모 물건거래가 이뤄졌고, 이를 중개한 공인은 거상으로 성장했다. 쌀은 오늘날 돈으로 바뀐다. 세금의 역사는 이렇게 변했다.

조선명탐정이 파헤치려 한 납세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벌백계를 가하는 중죄다. 국가재정을 위협할 수 있는 데다 세정에 대한 불신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금징수에는 종종 비리가 따라 다닌다. 워낙 큰 이권이기 때문이다. 세정공무원이 세금을 빼돌려 개인적 부를 축적하는 것이 원시적 방법이었다면, 전산시스템이 마련된 지금은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뇌물를 받는 사례가 많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자신의 승진을 위한 청탁으로 사용된다.

‘돈’줄을 쥐고 있다보니 국세청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불린다. 권력자의 비자금 조성에 이용되기도 했고, 정적에 대한 보복 세무조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치의가 근무하던 병원부터 점심을 즐겼던 식당까지, 이명박 정부 하의 국세청은 샅샅이 털어 수백억원대의 벌금을 물렸다. 당연히 보복 세무조사 주장이 나온다.

영화에서 노론의 거두 임판서는 빼돌린 공납을 단원 김홍도 등 고가의 그림으로 세탁한다. 부정한 돈을 그림으로 세탁한다는 발상에 뜨끔할 만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다.

한상률 전 청장은 세정비리의혹의 종합판이다. 조선명탐정이라면 한 전 청장의 의혹도 낱낱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조선명탐정 같은 이가 없을까. 차이는 하나다. 조선엔 정조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에는 없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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