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이지만 아주 달콤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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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영화 속 경제]치명적이지만 아주 달콤한 ‘유혹’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는 픽션이 아니라 팩션에 가깝다.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간 알력, 스폰서와 인맥으로 얽힌 검사, 경찰을 낀채 부동산 개발을 하는 폭력배, 접대를 받고 기사를 쓰는 기자까지 오늘밤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이야기들이 다루어진다. 폭력적인 장면이나 야한 장면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것은 기득권자들의 가려진 진실을 다룬 것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불편했기 때문은 아니냐는 의견이 있을 정도다.

거래란 A와 B간 이뤄지는 매매행위다. 그런데 매매행위가 정당하지 못하다면 부당거래가 된다. 대표적으로 ‘부당내부거래’가 있다. 같은 계열사끼리 거래하는 내부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상식 밖으로 매매를 하면 부당내부거래가 된다. 예컨대 그룹내 자회사끼리 돈을 시중금리보다 현저하게 낮은 조건으로 빌려주거나 부동산, 주식 등을 고평가해 사고 팔면 부당내부거래가 된다. 자기네들끼리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밀어주는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이때 다른 기업들은 경쟁에 낄 수가 없으니 자유시장이 침해받는다.
영화에서도 ‘자기네들끼리 잘먹고 잘 살기 위한’ 부당거래는 얽히고 설킨다. 

최초의 부당거래는 비경찰대 출신인 광역수사대 최철기 반장(황정민 분)과 경찰국장간의 거래다. 거래 내용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유아 성폭력범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거래 대가는 최 반장의 ‘승진’이다. 최 반장은 해동건설 장석구 회장(유해진 분)과 거래를 한다. 증거는 없지만 혐의자를 범인으로 둔갑시켜 달라는 것이다. 조건은 장 회장이 건설 중인 건물의 뒤를 봐겠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혐의자 이동석과 거래를 한다. “너 지금부터 범인 해라.” 장 회장이 이동석에게 건넨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명대사다. 조건은 장애가 있는 가족들에게 현금 1억원을 준다는 거다.

검사 주양은(류승범 분)은 또다른 부동산 거물인 김 회장과 거래관계를 맺고 있다. 구속된 김 회장은 주 검사의 도움을 통해 유유히 걸어나온다. 골프와 술접대, 선물 제공의 대가다. 주 검사는 기자와 거래를 한다. 최 반장이 체포한 성폭행범이 진범이 아닐 수 있다는 기사를 써달라는 것이다. 대가는 성접대다.

주 검사와 최 반장은 ‘빅딜’을 한다. 주 검사는 최 반장이 연출한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로, 최 반장은 주 검사의 스폰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부당거래의 특징은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정당하지 못하니 소문나면 A도 B도 곤란해진다. 부당거래가 알려지면 패가망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부당거래를 하는 것일까.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경제적 유인’ 즉 ‘인센티브’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맨큐의 경제학>에서 꼽은 경제학의 10대 원리 중 4번째가 ‘사람들은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다. 경제학에서 의사결정의 기본은 경제적 유인이다. 경제적 유인이 있어야 이득과 비용을 비교할 수 있다. 처벌 가능성도 경제적 유인이다. 처벌돼 모든 것을 잃는다면 행동을 하지 않겠지만 처벌되더라도 보상이 더 많으면 행동을 한다.

가짜 아동유괴 범인을 만들어 달라는 최 반장에게 폭력배 출신 장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칼침(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 놓는 대신 몇년 대타로 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잡히는 순간 끝장이다. 그 정도 배우를 어디서 캐스팅해 오느냐.” 대통령까지 나서 사회문제가 된 아동유괴사건인 만큼 범인은 최소한 무기징역, 혹은 사형이다. 

하지만 그도 최 반장의 한 마디에 거래를 받아들인다.
“공사 다시 하기 싫어? 태경 김 회장에게 넘길까.”
“목숨을 걸고 사업을 한다”는 장 회장에게 서울시내 노른자위 33층 빌딩은 어떤 하이 리스크도 감수할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이었던 셈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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