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우위론’ 현실에서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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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연애조작단>

[영화 속 경제]‘비교우위론’ 현실에서의 오류

‘시라노 연애기획단’은 연애에 서투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연애 ‘대행’ 업체다. 단순히 만남을 알선하거나 상담만 해주는 연애 ‘정보업’이 아니라는 데 주목하시라. 그들이 제시한 시나리오대로만 따라하면 당신은 사랑을 쟁취하게 된다.

우선 의뢰인(클라이언트)이 좋아하는 대상을 철저히 분석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반응을 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영화는, 그리고 취향은 무엇인지 등등을 꼬치꼬치 따진다. 이를 근거로 연애 심리학에 기초해 행동지침을 내린다. 언제,어떤 장소에서,어떻게 행동하라! 그래서 기획단이 아니라 감히 ‘조작단’이라 부른다.

대상이 눈치채면 안되는 만큼 작전은 비밀스럽게 이뤄진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 안 한다’는 사훈도 예사롭지 않다. 지금도 도청과 미행, 사찰을 열심히 하고 있을 것 같은 모 기관과 겨루겠다는 말인가.  
 
상용(최다니엘)은 교회에서 만난 희중(이민정)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시라노 연애기획단을 찾는다. 상용은 펀드매니저다. 경제학으로 똘똘 뭉쳤을 그가 시라노를 찾은 데는 이유가 있다.

“(연애를 시라노에 맡긴 것은) 아웃소싱한 거죠. 제가 잘 못하는 거니까. 돈쓰는 것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제가 시간당 버는 돈이 얼마인데.” 
 
만약 상용이 여성들을 꼬시는데 ‘선수’였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시라노를 찾았을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그래도 상용은 시라노 연애기획단을 찾아간다’가 정답이다. 비교우위론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두 가지 상품 모두 경쟁력을 갖고 있더라도 둘 중 상대적으로 효율이 떨어지는 상품은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상용이 펀드 운용을 통해 시간당 100만원을 번다고 가정하자. 시라노 연애기획단은 연애기획으로 1시간에 50만원을 번다. 시간은 2시간이 주어져 있다. 상용이 1시간은 펀드운용을, 1시간은 연애준비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자. 상용이 1시간 일해서 버는 돈은 100만원이다.

나머지 1시간은 연애 준비로 시간을 보냈으니 더 이상의 수익은 없다. 대신 별도의 지출도 없다. 상용의 이날 수익은 100만원이다. 시라노 연애기획단은 일을 맡지 못했으니 수익이 없다.  

그런데 상용이 연애기획을 시라노 연애기획단에 맡겼다. 상용은 2시간 동안 펀드 운용을 했더니 수익이 200만원으로 늘었다. 그 사이 시라노 연애기획단은 1시간 동안 상용의 연애계획서를 짜줬다. 상용은 50만원의 지출이 생겼지만 총 수익은 150만원이다. 시라노 연애기획단은 50만원의 수익이 생겼다.

전자의 상용은 100만원, 시라노 연애기획단은 0원을 벌었다. 후자의 경우 상용은 150만원, 시라노는 50만원을 벌었다. 전자는 모두 합쳐 100만원이, 후자는 200만원의 가치가 창출됐다.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교우위론은 신자유주의의 근간이 됐다. 세계화나 자유무역협정(FTA)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교역을 방해하는 관세부과나 쿼터제, 보조금 도입은 순식간에 악이 됐다.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이 문을 열어젖힐 것을 요구했다. 과거 자신들이 중상주의를 바탕으로 관세와 쿼터를 도입하던 것과는 상반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비교우위론은 오류가 많다. 미국이 자동차에, 한국이 사과에 강점이 있다고 두 제품만 만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한국은 영원히 자동차를 만들지 못하게 된다. 선진국은 계속해서 첨단제품을, 개도국은 저가품만을 만든다는 얘기다.

비교우위론은 ‘완전고용’이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한다. 하지만 산업간 고용유발효과는 똑같지 않다. 자동차 산업이 붕괴돼 직장을 잃은 한국 노동자들이 사과농사를 통해 모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약자의 관점에서 비교우위론은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다. 개도국이 선진국 수준으로 영원히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정치 논리’가 숨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비교우위론을 경계하는 이유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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