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명곡, 뮤지컬로 환생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율슉업>

아바, 퀸, 비틀스, 빌리 조엘.
활동하던 시대도 다르고 인기를 누린 음악 장르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요즘 공연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소재라는 점이다. 뮤지컬로 환생한 왕년의 인기스타들인 셈이다.

[문화내시경]왕년의 명곡, 뮤지컬로 환생

주크박스 뮤지컬은 동전을 넣으면 흘러간 대중음악을 재생시킬 수 있는 음악상자처럼 왕년의 인기곡을 상업적인 뮤지컬 공연으로 재활용하는 형식을 말한다. 공연 애호가는 물론 예전에 그 음악을 즐겨 듣던 중장년층 팬들까지도 공연장으로 다가서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제작자 입장에서도 분명 남는 장사다. 관객에게 새로운 음악이 주는 낯설음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흥행의 실패 위험도 줄어든다.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는’ 상업 뮤지컬의 영리한 진화라 부를 만하다.

최근 우리 공연가에서 다시 막을 올린 뮤지컬 <올슉업>도 전형적인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 작품의 소재로 쓰인 것은 바로 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이다. 친근하고 익숙한 멜로디와 선율은 두말하면 잔소리라 할 만한 이 뮤지컬의 최고 별미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성공적인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문화상품이 늘 그러하듯 이 작품도 익숙하면서 새로운 향수 마케팅의 부가가치 창출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십이야(Twelfth Night)>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600년대 초반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이야기는 성(性)이 다른 쌍둥이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를 둘러싸고 여장 남자로 인한 좌충우돌의 사랑 소동을 그리고 있다. 요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17세기 버전이라 부를 만하다.

[문화내시경]왕년의 명곡, 뮤지컬로 환생

희곡의 제목인 ‘12번째 밤’은 크리스마스로부터 열 두 번째 날인 1월 5일의 전날 밤을 말한다. 아기예수가 태어난 날로부터 열 두 번째 되는 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찾아와 경배를 올렸다는 주현절 바로 전날 밤이다. 서구 역사를 보면 크리스마스 축제의 마지막으로도 통하는 이 날에는 일종의 ‘역할 바꾸기’ 게임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야자타임’과 견줄 만한데, 자신과 다른 이성의 복식을 입거나 사회적 신분을 바꿔 짐짓 행세를 풍자하는 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뮤지컬 주인공 채드와 나탈리, 데니스와 산드라가 남장여자로 등장하며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되는 애정관계는 바로 십이야의 전통 놀이를 현대적으로 변형시킨 스토리의 반영인 셈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만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면 진짜 재미는 놓쳤을 수도 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맘마 미아!>처럼 억지춘향식의 스토리만이 전부가 아님을 미루어 이해하게 해 준다.

“셰익스피어 이후에 새로운 스토리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좋은 이야기의 뼈대이자 스토리의 원형 노릇을 해 왔다. 뮤지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바뀌어 인기를 누렸고, <햄릿>은 <라이온 킹>으로 지금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원래의 이야기와 비틀어 재해석된 이야기 속의 변화를 꼼꼼히 짚어 보는 것은 음악 듣는 재미 못지않은 뮤지컬의 재미난 감상법이다. 마침 우리말 무대가 최근 다시 막을 올렸으니 꼭 시도해 보길 추천한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문화내시경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