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대중음악 표절은 ‘제2의 창작?’

대중음악계에서 표절 시비는 잊을 만하면 또다시 등장하는 고질적인 문제다. 표절 대상이 된 ‘라이트 라운드(Right Round)’의 원작자인 미국 래퍼 플로 라이더가 객원 가수로 참여한다는 조건으로 지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 사건이 수습되자마자 씨엔블루의 ‘외톨이야’ 사건이 법정에서 표절 여부를 가리게 됐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들이 육상경기의 이어달리기를 떠오르게 한다. 표절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한 편을 장식할 듯하다.

표절 시비에 휘말린 가수 지드래곤(왼쪽)과 씨엔블루.

더 심각한 문제는 매체에서 다뤄지면서 세인들에게서 큰 관심을 이끈 표절 의혹 노래가 아닌 작품들 가운데서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랜데?’ ‘외국 가수 누구의 곡과 상당히 흡사한데?’라는 생각을 품게 되는 곡이 종종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 가운데 어떤 곡은 이미 출시된 어떤 곡과 너무 닮아 있어 모눈종이를 대고 악보의 어딘가를 베낀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창작이 아닌 모사에 가까워 씁쓸함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실제로도 기획사 측에서 작곡가나 프로듀서에게 곡을 의뢰할 때 특정 노래를 거론하며 비슷한 분위기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고도 하니 모방은 업계에서 이미 공공연한 일이 된 셈이다.

요즘처럼 곡의 흥행 수명이 짧아진 상황에서는 한 번만 들어도 익숙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게 청취자들의 사랑을 얻는 데 가장 좋다. 그런 노래가 대체로 인기를 누리는 탓에 문제의 작곡가들은 외국에서 크게 히트한 노래나 어느 정도 대중에게 알려져 친근하게 들리는 리듬과 선율을 바탕으로 재가공한 음악을 버젓이 내놓는다.

하나의 곡만을 모델 삼아 만든 것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여러 개의 부품을 따와 완성한 ‘조립식’ 노래도 더러 나타난다. 지난 3월 중순에 출시된 사파이어의 ‘샤!’는 미국 가수 케샤의 ‘틱 톡(Tik Tok)’ 구성을 그대로 본땄으며, 2007년에 나온 장혜진의 ‘가라 사랑아’는 그웬 스테파니, 카일리 미노그 등의 노래 일부분을 접붙이기한 것으로 각각 전자·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곡들을 일일이 열거한다면 끝이 없다.

기존의 노래를 따라 만드는 폐단은 어제오늘 갑자기 터진 일이 아니다. 우리 대중음악사가 시작된 이래 쭉 존재해 왔다고 해도 심히 실례되는 말은 아닐 듯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런 일이 워낙 많아져 심각하게 여겨진다. 작곡가 가운데 몇 명은 창작자라기보다 일부러 원본과 조금 다르게 뽑는 인간 복사기나 다름없는 수준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런 일이 계속 빚어진다면 어떤 곡을 출품해도 의심부터 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해야 하고 추세와 유행을 따른다는 미명 아래 도를 넘어선, 습작에 불과한 노래를 발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테다. 자기 검열을 철저하게 해도 모자랄 판에 트렌드를 좇고 이름을 알리는 데 급급해 흉내 내기에만 머문다면 창작자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화내시경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렇지 않고도 중요하겠지만 그들이 만든 모방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기분이 개운치 못할 것도 생산자는 알아두어야 한다. “동일한 장르이기에 비슷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대중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코드 진행은 다 거기서 거기다” 등의 말은 창의성이 부족한 이의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장기적인 면에서 모작은 작곡가 당사자한테도 결코 이로울 수 없다.

한동윤<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