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내시경]성공하는 뮤지컬은 이유가 있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공연 관계자들의 공통된 고민이 있다면 초연에서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만만치 않은 티켓 가격은 관객들로 하여금 익숙한 콘텐츠에 먼저 지갑을 열도록 만들게 마련이고, 그래서 아직 브랜드 파워를 형성하지 못한 공연이 초연에서 수익을 남기기란 어지간해선 어려운 일이다. 기껏해야 한두 달 남짓한 공연장의 대관 일정도 걸림돌이 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초연에도 불구하고 대중성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무대는 축복받은 작품이라 부를 수 있다.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의 여주인공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이하늬, 제시카, 김지우(왼쪽부터)가 고양이를 끌어안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위) 제시카가 출연한 공연의 한 장면.(아래)

올해 초에 주목을 크게 받은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는 이런 의미에서 재미있는 사례다. 경제 한파로 제반 사정이 어려운 요즘 공연계에서 이 작품은 초연이면서도 뜨거운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막을 올렸던 초창기에 뜻하지 않은 안전사고 등 크고 작은 악재까지 있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가히 놀랄만한 흥행 성적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는 것처럼 이유 없는 흥행도 없다. <금발이 너무해>의 흥행 요인은 우선 절묘한 스타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 금빛 헤어스타일의 아이돌 스타인 소녀시대의 제시카와 미스코리아 출신인 이하늬,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로 공연계에서 촉망 받아 온 탤런트 출신의 김지우를 트리플 캐스트로 내세움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톡톡한 재미를 끌어냈다.

젊은 여성 관객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객석 풍경과 달리 대폭 늘어난 남성 관객의 비율은 스타 캐스팅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이 뮤지컬 작품이 얼마나 새로운 관객층 개발에 효과적으로 대처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실 흥행의 폭발력을 배가시킨 것은 단지 스타에게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장인정신 덕분이다. 이 점이야말로 흥미로운 성공 요인의 하나다. 이 뮤지컬의 진짜 미덕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스타를 무대의 꽃으로 승화시킨 조연들의 감칠 맛 나는 연기와 조화로운 무대였다. 헤어디자이너역의 전수경이 보여 주는 익살과 유머, 아랍 왕자에서 마초 건달 심지어 발레리노 게이 커플에 이르기까지 무대에 나올 때마다 폭소를 터트리게 하는 임기홍의 멀티 캐릭터, 인간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김도현의 젠틀한 이미지나 이영미가 보여 주는 시원스런 가창력 등은 종합예술인 뮤지컬에 조화로운 연기와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여실히 설명해 준다.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커튼콜의 박수 세례는 주연으로 등장하는 스타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덕션에 대한 객석의 만족감이 반영된 결과다.

원작의 유명세에 기대지 않고 우리식 감성을 덧붙인 장유정 연출가를 비롯한 제작진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는 흥행 요인이다. 이 덕분에 작품에 등장하는 헤어숍 이름은 ‘헤어 지지마’가 됐고, 여성스런 몸짓의 법정 증인도 유로피안 대신 발레리노가 됐다. 하버드대 법대 신입생들의 ‘공부가 가장 쉬웠다’든가 ‘재미로 만든 아이팟’ ‘난 왕자다’ 같은 노랫말도 폭소를 자아내는 우리 무대만의 재치와 해학이다. 좋은 라이선스 뮤지컬 제작의 바람직한 사례로 기억될 만한 배려들인 셈이다.

문화내시경

<금발이 너무해>는 서울 공연을 마치고 곧 지방 투어에 오른다. 초연의 흥행 돌풍이 전국으로 넓혀갈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생각이다.

원종원<순천향대 교수·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