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몸으로 실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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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원 SKC 회장의 상사정신(商士精神)과 극기복례(克己復禮)

최신원 SKC 회장이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에서 기부 영웅에 선정됐다. 사진은 지난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는 모습.

최신원 SKC 회장이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에서 기부 영웅에 선정됐다. 사진은 지난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는 모습.

최신원 SKC 회장이 <포브스> 아시아판이 선정한 ‘기부영웅’ 중 한 명으로 뽑혀 화제다. ‘뇌물수수’와 ‘성상납’ 파문 등으로 흉흉한 상황인지라 그의 미담이 더욱 돋보인다. 선정의 배경은 장학재단 설립과 자원봉사 등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 행보를 30년 가까이 묵묵히 실천해온 데 있다.

오사카 상인들이 만든 ‘상사’ 개념
상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일찍이 북학파(北學派)의 비조인 박지원이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조선이 궁색을 면치 못하고 백성이 누추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천시하는 조정 관료와 사대부들의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질타하면서 속히 상업에 종사해 재부를 쌓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양반 중에서도 문사(文士)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역으로 간주하던 당시 상황에서 이는 일종의 혁명선언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본의 오사카 상인들은 이미 <논어> 등의 고전을 익히며 상도(商道)를 실천하다가 메이지유신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거사자금을 대주어 이를 성사시킨 후 무사(武士)와 더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역이 된 바 있다. 일본에서는 이때부터 상인이 사인(士人)의 역할을 행하는 소위 ‘상사(商士)’ 개념이 만들어졌다. 조선의 ‘문사’들이 존망지추(存亡之秋)의 중차대한 시기에 ‘농공상’은 말할 것도 없고 ‘무사’까지 천시하면서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와 개화파(開化派)로 나뉘어 격렬히 다투다가 패망을 자초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숭문(崇文)’의 기조 하에 ‘천상(賤商)’과 ‘천무(賤武)’로 나아갈 경우 ‘부국강병’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강병’은 ‘부국’, ‘부국’은 ‘상사’ 개념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상사’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한국 정치를 전공한 김학준 전 서울대 교수는 제3공화국 이후의 일로 보고 있다.

“박정희는 ‘농업국가’에서 ‘상업국가’ 즉 ‘무역국가’로 대전환을 이뤄 대한민국을 흥륭케 한 주인공이다. 장사하는 사람을 제일 낮춰 본 ‘사농공상’의 시대에 그의 ‘상업국가론’은 혁명에 해당했다.”

사실 5·16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 각지에 소작인과 머슴이 대거 존재했다. 뉴라이트계 학자들은 제3공화국의 등장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생뚱맞게 ‘식민지근대화론’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일제가 왜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 ‘양반과 머슴’ 및 ‘지주와 소작인’의 낡은 틀을 온존시켰는지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제2공화국이 그대로 존속했을지라도 산업화를 능히 이룰 수 있었다고 보는 학자들 역시 민주당 정권의 주역이 대부분 지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유신독재에 지나치게 주목한 나머지 수백 년 동안 질곡으로 작용했던 빈곤의 사슬을 끊어낸 그의 치적을 도외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배링턴 무어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사회적 기원>에서 갈파했듯이 땅을 매개로 얽혀 있는 낡은 생산양식을 혁파하지 않고는 영원히 빈국의 수렁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남미와 필리핀 등이 식민지 유산인 플랜테이션을 기반으로 한때 번영을 구가했다가 이내 후진국으로 전락한 게 그 증거다. 산업화와 통상무역화로 상징되는 공상(工商)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은 채 중농주의에 함몰된 후과다.

원래 동양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상사’가 등장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 ‘사농공상’의 신분질서는 춘추시대 말기까지만 해도 ‘사’와 ‘농공상’으로 엄격히 분리되었으나 전국시대에 들어와 증산(增産)이 강조되면서 ‘농’이 ‘사’의 위치로 격상돼 ‘사농’을 하나로 묶어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전국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상’이 ‘사’의 우두머리인 정승의 반열에 오르는 일이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여불위(呂不韋)다.

그는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뒤 이를 토대로 최강국인 진나라의 정승이 되었다. 단 한 글자라도 잘못이 있으면 천금을 내겠다고 선언해 소위 ‘일자천금(一字千金)’의 고사를 만들어낸 <여씨춘추>의 출현은 본격적인 ‘상사시대’의 개막을 예고한 것이었다. 문객들을 시켜 천하의 모든 지식을 집약시켜 놓았다고 자부한 <여씨춘추>는 세계 최초의 백과전서에 해당한다. 이는 상업이 국부(國富)와 병강(兵强)을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뜻했다.

그러나 상업을 천시하는 춘추시대 이래의 전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맹자였다. <맹자- 공손추 하편>의 해당 대목이다.

“옛날의 교역은 자신이 갖고 있는 물건을 시장으로 갖고 와 갖고 있지 않은 물건과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천장부(賤丈夫)가 문득 나타나 농단(壟斷·사방이 훤히 보이는 높은 곳)에서 좌우를 둘러보며 시장의 이익을 그물질하듯 거둬가 버리기 시작했다. 상인에게 세금을 징수한 것은 바로 이 ‘천장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본인 이어 아들까지 해병대 입대

2004년 여름, SK텔레시스 임직원들과 함께 해병대 극기훈련에 참석해 노를 젓는 최 회장의 모습. <SKC 제공>

2004년 여름, SK텔레시스 임직원들과 함께 해병대 극기훈련에 참석해 노를 젓는 최 회장의 모습.

원하는 바대로 일을 멋대로 처리한다는 뜻의 ‘농단’은 여기서 나왔다. 이 일화는 전국시대에 열국의 상인들이 국경을 오가며 교역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고, 열국은 이들에게 세금을 매겨 전비(戰費)를 충당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다. 맹자가 ‘천장부’라는 감정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중상주의자들에 대한 중농주의자들의 격한 심경을 반영한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동양은 이후 한무제의 ‘독존유술(獨尊儒術)’ 선포로 유학이 유일한 관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시 상업을 천시하는 퇴행적인 전통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남송대에 성리학이 성립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에 사대부들은 ‘문사’가 되기 위해 평생 과거시험에 매달리거나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처럼 자급자족 차원의 농사를 지으면서 지은(知恩)을 베풀어줄 주군이 나타날 때까지 독서하며 소일하는 게 관행이 되었다. 관우처럼 소금장수를 하거나 장비처럼 개고기 장사를 하다가 당대의 ‘무사’로 입신한 경우도 있으나 이는 난세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는 ‘부국강병’과 동떨어진 ‘숭문천상’의 풍조가 청대 말까지 유지되었다. 조선은 한 술 더 떠 ‘천무’의 풍조까지 곁들여지면서 ‘빈국약병(貧國弱兵)’을 자초하고 말았다. 메이지유신 이후 ‘부국강병’을 이룬 일제에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한 채 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배경이 여기에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부상(富商)을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가 귀족을 대신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주역으로 등장하며 세계를 제패한 서양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사상 최초로 CEO 출신 대통령 시대이니만큼 본격적인 ‘상사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출범도 하기 전에 ‘고소영 내각’ 등의 풍자어가 난무하더니 집권 2년차인 올해에는 청와대 전·현직 비서관의 ‘성상납’과 ‘뇌물수수’ 사건으로 지탄받는 일까지 빚어졌다. ‘깨끗한 손’을 자처했던 노무현 정부마저 재임 중 대통령 부인이 ‘검은 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난 터에 청와대가 자칫 비리의 온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실제로 민비와 고종이 매관매직에 앞장섰던 구한말의 왕실은 부정부패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런 점에서 최 회장은 청와대를 대신해 ‘상사시대’ 개막의 가능성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는 빌 게이츠가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의 존재 목적이 과거와 달리 ‘이윤 추구’에서 ‘국가와 인류에 대한 봉사’로 바뀌고 있는 세계 조류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상사’ 행보는 해병대를 자원 입대한 전력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영원한 해병’을 자처하는 그는 지난해에 외아들도 해병대에 입대시켰다. 종제(從弟)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체중과다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과 대비된다. 수시로 군부대와 경찰서를 방문해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는 행보에 비춰 그의 미담도 이런 애국심에서 나온 게 확실하다.

20여 년 넘도록 노사분규 없어

고 최종건 회장의 추모식에서 향을 사르고 있는 최 회장. 고 최종건 초대 회장의 아들인 그는 그룹의 장자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눔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향신문>

고 최종건 회장의 추모식에서 향을 사르고 있는 최 회장. 고 최종건 초대 회장의 아들인 그는 그룹의 장자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어 나눔 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향신문>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의 요체는 해병대의 혹독한 훈련을 통해 체득한 ‘극기(克己)’다. 이는 노사가 한 몸이 되어 ‘흥업보국(興業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쉼없이 찾아나가는 모습으로 발현되고 있다. 노조 설립 후 20여 년이 넘도록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일어나지 않고,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노사 모두 임금을 동결하며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2인3각 행보를 보이는 게 그 증거다.

임직원들은 그의 리더십을 ‘해병대CEO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있다. 신속하면서도 과감한 결단력, 불퇴전의 추진력, 전우애의 협동정신 등을 칭송한 것이다. 이는 공자가 <논어-안연편>에서 역설한 ‘극기복례(克己復禮)’와 맥을 같이 한다.

“인(仁)은 ‘극기복례’로 이룰 수 있다. 하루 만이라도 ‘극기복례’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극(克)은 극복, 기(己)는 사욕, 복(復)은 복귀, 예(禮)는 자기절제의 리더십을 뜻한다. ‘극기복례’는 <춘추좌전-노소공 12년>조에 처음 나온다. 당시 초영왕(楚靈王)이 전횡하다가 신하들에 의해 쫓겨나 객사하자 공자가 이같이 평했다.
“초영왕이 극기복례를 행했다면 어찌 그런 치욕을 당했을 리 있겠는가.”

그의 리더십은 위정자의 자기절제를 통한 지극한 통치를 뜻하는 ‘극기복례 리더십’에 해당한다. 질병을 이유로 귀가 조치를 받았다는 이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 후 시종 갈팡질팡하며 인사정책 및 내부 단속에 실패한 것과 대비된다. 그는 ‘극기’의 효용을 이같이 설명하고 있다.

“극한 고난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극기복례’의 요체를 꿰뚫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도 이미 ‘CEO리더십’이 파탄난 만큼 그의 ‘극기복례 리더십’을 배움직하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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