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치에 순응하는 ‘슬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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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식습관을 바꾸자

패스트푸드 대안으로 전 세계서 활발… 우리 전통음식 대부분이 해당

7월 23일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 잔디밭에서 열린 슬로푸드네이션 축제에 참가한 소녀가 채소에 물을 주고 있다. <경향신문>

7월 23일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 잔디밭에서 열린 슬로푸드네이션 축제에 참가한 소녀가 채소에 물을 주고 있다. <경향신문>

2004년 11월 한국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슈퍼 사이즈 미>는 모건 스펄록 감독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어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감독은 촬영 한 달 내내 맥도날드 제품만 먹으면서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보여줬고, 미국 사회가 패스트푸드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여러 인터뷰에서 보여줬다.

이 다큐멘터리가 개봉된 후 패스트푸드의 대안으로 떠오른 ‘슬로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자 현재 슬로푸드운동 국제본부 회장인 카를로 페트리니가 패스트푸드에 대항하는 미각의 즐거움과 전통 음식의 보존 등을 내걸고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이 운동은 120여 개국에 1000개 이상의 지부가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슬로푸드의 로고는 느림을 상징하는 달팽이를 쓰고 있다.

고유한 음식문화 지키는 데도 도움
2000년 처음으로 국내에 슬로푸드 운동을 소개한 사람은 경남대 김종덕 교수(심리사회학부)다. 김 교수는 현재 슬로푸드문화원 이사로 참여하면서 슬로푸드 운동을 전파하고 있다. 김 교수는 ‘식량 및 석유에너지 위기와 대안 먹거리’라는 글을 통해 패스트푸드를 두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통상적으로 패스트푸드라 지칭하는 햄버거·피자·치킨 등으로 손가락으로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손가락 음식’이다. 또 다른 패스트푸드는 자연의 생산 과정을 단축해 생산한 먹을거리를 말하는데, 성장 호르몬, 사육 기술의 발전 등으로 사육 기간을 단축한 닭고기·돼지고기·쇠고기 등과 1년에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수확하는 채소나 과일 등도 패스트푸드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슬로푸드는 인공의 속도가 아니라 자연의 속도에 따라 생산된 먹을거리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사계절 모두 나오는 음식이 아닌 제철 음식과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조리한 음식을 슬로푸드라고 한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를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 패스트푸드는 맛을 내기 위해 고지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슬로푸드는 섬유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지방 함유율이 낮다. 또한 슬로푸드는 오랫동안 농민이 간직한 종자나 영농에 대한 지식을 지키는 힘이 된다. 슬로푸드 운동 회장인 카를로 페트리니는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이후)이라는 책을 통해 “수많은 종자가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졌다”면서 “슬로푸드의 복원은 이처럼 소홀히 다루는 농경 관련 문화와 소중한 자원을 주목하게 만들고 나아가 이를 지키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패스트푸드는 음식 문화의 표준화와 획일화를 가져오지만, 슬로푸드는 고유한 음식 문화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슬로푸드 운동은 ‘빨리빨리’ 문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김종덕 교수는 ‘슬로우 푸드 운동의 이념과 의의’라는 글에서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공업 중심의 사회가 되는 데 다른 나라는 100년이 넘게 걸렸지만, 우리는 불과 40여 년 밖에 안 걸렸다”면서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성장에 주력했고,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졌다. 우리 사회에 슬로푸드 운동이 확산되면 빨리빨리 문화가 완화될 것이며 빨리빨리 문화가 가져온 부작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진단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식탁에서 즐거움’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슬로푸드 운동 진영에서는 지켜야 할 것으로 3가지를 꼽힌다. ▲사라져가는 전통적인 식재료나 요리, 질 좋은 식품을 지키는 것 ▲아이들과 더불어 소비자에게 맛의 교육을 하는 것 ▲질 좋은 재료를 제공하는 생산자를 지키는 것이다.

사찰음식도 슬로푸드로 큰 각광
우리의 전통 음식은 대부분이 슬로푸드다. 메주로 담근 된장과 간장·고추장·김치·젓갈 등이 대표적인 음식. 대부분 발효식품으로 콩을 쑤어서 메주를 만들고 다시 이것으로 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식품업체 역시 슬로푸드를 이용한 음식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얼마 전에는 떡 급식전문업체인 오병이어는 ‘G Food show 2008’에 청국장과 떡을 결합한 ‘청국장 쿠키떡’을 만들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찰음식 역시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화학 조미료 대신 발효식품으로 간을 하고, 제철 음식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슬로푸드가 각광을 받으면서 사찰 음식을 배우려는 주부도 늘어나고 있다. <녹차와 채식>의 저자 홍승 스님은 “자연건강식품인 사찰 음식을 먹으면 미각 발달은 물론 건강도 돌볼 수 있다”면서 “바쁜 생활 속에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식습관에 맞는 다이어트식이자 자연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최상의 음식”이라고 말했다. 서울에만 50여 개의 전문 식당이 운영될 정도로 사찰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자체 역시 슬로푸드를 관광상품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4년 3월에는 파주의 장단콩 마을이 슬로푸드 체험 마을로 지정되어 계절마다 체험축제를 펼치면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마을로 변하기도 했다. 드라마 <식객>의 촬영지로 유명한 안성 서일농원 역시 슬로푸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2000개 이상 되는 장독 항아리가 정열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장관이다. 1983년 만든 곳으로 된장을 주제로 한 최대 농원이다. 서일농원의 된장은 미국 FDA의 승인을 얻을 정도로 유명하다. 방문객은 직접 장류와 장아찌류의 식품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전통 음식점인 ‘솔리’에서 농원에서 나온 장맛을 직접 맛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식품업계의 최고 등급인 ‘식품안전경영시스템’(ISO 22000)을 인증받기도 했다.

하지만 슬로푸드 운동도 몇 가지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많이 비판을 받는 점은 슬로푸드가 비싸다는 것.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슬로푸드 운동이 일부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슬로푸드 운동이 청소년의 호응이 낮고, 다른 운동과의 연대가 약하다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김종덕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간에 걸쳐 급속도로 성장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면서 “이제 느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원산지가 어디인지, 어떤 재배과정을 거쳤는지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슬로푸드 운동은 힘을 얻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이 음식 문화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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