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해는 어디에서 뜰까요?

몇 년 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책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미술 경진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림의 소재는 해 뜨는 모습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온 어린이는 바다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산골에서 온 어린이는 산에서 뜨는 해를 그렸습니다. 도시에 사는 어린이는 아파트 사이로 뜨는 해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들을 놓고 어린이들은 자기의 그림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해는 어디에서 뜰까요? 이 어린이들에게 과연 해는 어디에서 뜨는 것이라고 답변해야 할까요.

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해는 아파트 사이에서 뜰 수도 있고, 바다나 산에서 뜰 수도 있습니다. 빌딩 사이에서도, 들판에서도 뜰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달라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책 속의 한 어린이처럼 다른 사람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서 이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서울에 있는 사람은 아파트 사이로 뜨는 해를 보았고, 지방에 있는 사람은 산과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보았습니다. 총선이 끝난 뒤 다른 사람에게는 해가 다른 곳에서 뜨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2002년 대선이 끝나고 난 뒤 한나라당 내부에서 흘러나온 뒷이야기입니다. 이회창 후보가 불리하다는 내부의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보고됐습니다. 회의 참석자들은 외부의 여론조사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유리한데 왜 노무현 후보가 유리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느냐고 야단쳤습니다. 이들 중 영남지역 출신 회의 참석자들은 자기 주변에서는 모두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왜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대선 결과는 이회창 후보의 패배였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눈으로 본 것을,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것을 토대로 평가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은 틀리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한 어린이의 주장처럼 매일 해가 아파트 사이에서 뜨는 것이 맞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영남지역 출신 회의 참석자가 자기 주변에서는 모두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 후보가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총선 결과 각 당의 의석을 나타낸 지도를 봅니다.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은 야당이 차지하고,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여당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新)여촌야도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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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8개월 정도 남았습니다. 수도권에서 우위를 점한 야당이 대선에서 지방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것인지, 아니면 지방에서 우위를 점한 여당이 대선에서 수도권으로 영역을 넓혀 나갈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논박하는 정당보다는 왜 자신의 정당을 찍어야 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정당에 유권자들은 표를 던질 것입니다.
어느 당이 대선에서 승리할까요? 정답은 “해는 과연 어디에서 뜰까요”라는 물음의 정답과 똑같습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