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자멸한 민주통합당, 선장도 하차

4월 13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19대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월 15일 당 대표로 선출된 지 3개월 만에 불명예스러운 퇴진이다. 총선 패배 책임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 격화됐던 내분은 어느 정도 봉합됐다. 대신 한 대표 체제 이후 당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대표를 이어 새로운 리더가 누가 되느냐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관리형 대표 체제에 대한 실패로 인해 민주당은 ‘대여 강경투쟁’을 할 수 있는 공격형 리더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4월 13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당사 대회의실에서 4ㆍ11 총선 패배에 따른 당 대표직 사의표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MB를 심판해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심판 당했다. 지도부가 너무 무능했다.” “인물들은 살았다. 하지만 당이 죽었다.”

국회에서 만난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두고 ‘당의 위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127명(비례대표 포함)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18대 국회 85석(2012년 4월 13일 현재 80석)에 비하면 40석 이상을 확장한 성과를 냈다. 외견상 큰 성공으로 비쳐지지만, 전문가들은 민주통합당의 참패라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의 계속되는 실정으로 민주통합당 단독 혹은 야권이 1당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여대야소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도부 선출과정 대선주자들 행보는
4월 13일 민주당 상임고문단 간담회가 열렸다. 한 대표가 퇴진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한 대표는 일부 상임고문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결심했고, 이날 3시 “제가 대표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간다”면서 사퇴했다. 4월 14일 민주당은 당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고위원회를 소집해 당을 향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당 대표 궐위 시 2개월 이내에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해 당 대표를 선출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당 대표 직무대행은 선출직 최고위원 중 다수득표자와 원내대표 순이다. 1월 전당대회에서 2등을 한 문성근 최고위원이 맡거나, 김진표 원내대표 혹은 5월에 선출할 새로운 원내대표가 맡을 수 있다.

정치권의 관심은 한명숙 전 대표를 대신하는 리더가 누구냐에 쏠려 있다. 명지대 신율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번 총선 참패 책임론이 친노 진영에게 쏠려 있다”면서 “리더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친노와 구민주계 등 계파 간의 치열한 갈등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공천 과정에서 호남 지역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던 만큼, 박지원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친노 진영과 상당한 격돌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대선 주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도 관전 포인트다. 새누리당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라는 강력한 대권 주자가 존재한다. 박 위원장을 중심으로 대선 준비에 들어갔지만, 민주당은 박 위원장에 대항할 만한 유력 주자가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손학규·정세균·정동영·김두관 등 대권주자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확실한 카드라는 신뢰감을 심어준 후보는 아직까지 없다. 여기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빨리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문재인 카드가 부산에서 3석 이상의 성과를 냈다면 유력한 대권 주자로 떠올랐겠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면서 “이번 총선 과정에서 대선 주자들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안철수 교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해찬 상임고문 측은 “한 대표의 사퇴로 민주당이 직면한 문제는 대선 후보들을 어떤 식으로 무대에 올리느냐다”라고 말했다.

“관리형은 곤란, 강력한 리더십 필요”
대선 주자를 빨리 정하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도 높다. 박영선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너무 일찍 대선 후보로 결정되면서 당내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 대선 주자가 너무 빨리 정해지는 것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해찬 상임고문도 대선 주자의 조기 등판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일각에서 ‘당을 대선 체제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당헌에 따라 대선 후보 경선 전당대회가 6월 18일로 예정되어 있다.

4월 11일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 등이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19대 총선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18대 국회에 비해 40석 이상이 늘어난 127석을 확보했지만, 총선 패배라는 평가를 받았다. | 연합뉴스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로 오르내리는 이름이 박지원 최고위원이다. 원내대표 시절 보여준 정보력과 투쟁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내 계파 간의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신율 교수는 “박지원 최고위원도 좋은 카드라고 본다. 다만 친노 진영에서 구민주계와 호남을 대표하는 박 최고위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총선에서 배지를 달고 국회로 돌아온 이해찬 상임고문의 역할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상임고문은 당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 대표 이후의 대표는 자기를 버리고 당에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면서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한 대표처럼 관리형 대표로는 절대 안 된다. 여당을 상대로 강경투쟁을 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5월 초 새롭게 선출할 민주당 원내대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협상을 주도하는 중요한 자리로, 3선 이상의 중진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료 출신은 힘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경제부 장관 출신의 김진표 원내대표가 ‘대여 투쟁보다 협상’을 강조하면서 FTA 비준이나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구를 가진 정책위의장 출신의 3선 의원이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 “19대국회 야권 단합된 힘이 관건”

3선에 성공한 ‘저격수’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서울 구로을)은 이번 총선에서 ‘MB·새누리정권 심판위원장’을 맡으면서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19대 국회에서 국정조사와 청문회 등을 열어 의혹을 파헤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박 의원에게 19대 국회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번 총선 결과 야권의 참패라는 분석이 높다. 여대야소 국면에서 그동안 박 의원이 주장했던 언론악법 국정조사나 권력형 비리사건 특검 등이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나.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언론사 파업, 종편의 편향보도,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 내곡동 땅 문제, 이상득·최시중 측근비리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19대 국회에서도 야권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140석이나 된다. 국회에서 야권이 최대한 단합된 힘을 보여주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다. 야권은 여러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나 청문회 등을 끝까지 요구해야 한다. 여당과 야당이 의석수가 많이 차이나는 것도 아닌데,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당은 오만한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진정성이 있다면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된다.”

새누리당이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다.
“각종 의혹에 대해 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실이 은폐될 것이라는 점이 가장 걱정된다. 그렇게 되면 정의와 공정이 사라지게 되는데,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회균등의 사회가 아니라 특권층의 사회가 될 것이다. 그것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이 야당의 임무다.”

18대 국회에서 야권이 무기력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140석을 얻었는데 국회의 모습이 달라질 것으로 보나.
“18대 국회에서 여야는 3대 1 싸움이었다. 18대 국회에서 야당은 상임위원장 자리도 3분의 1을 얻지 못했다. 내가 속했던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16명의 의원이 있었는데, 그 중에 야당 의원이 5명이었다. 유권자들은 야권이 무기력하다고 느꼈겠지만,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의석수에 비하면 그나마 선방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야권이 모두 140석이 됐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야권이 예상보다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은 이유가 무엇인가.
“공천과정에서 비판을 많이 받은 것이 컸다. 지도부의 전략부재도 문제였다. 보수언론이 조그마한 사안을 침소붕대해서 여러 가지를 터뜨릴 것에 대비했어야 했다. 그런 전략이 부족했다. 또한 야권이 왜 과반수를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다시 얻었다.
“아직 정밀한 분석을 하지는 못했다. 충청·강원에서 힘을 발휘한 것은 맞다. 전국 인구수 대비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는지, 서울·수도권에서 어느 정도였는지 그런 분포를 봐야 한다.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위로가 되지만, 어쨌든 야권이 참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권은 서울·수도권의 힘을 바탕으로 다시 뭉쳐야 한다.”

한명숙 대표가 사퇴했다. 민주통합당은 어떻게 운영돼야 하나.
“당헌상 2개월 내에 임시전당대회를 열어야 하는데, 6월에 대선후보 경선까지 있다. 전당대회는 어려울 것 같다. 대신 원내대표를 빨리 뽑아야 하고, 비대위체제로 돌아서야 한다. 대선주자를 당의 인물로 세우기보다 당에 헌신을 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맡아야 한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