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누가 박근혜를 대적할 것인가

새누리당팀의 박근혜 선수는 역시 뛰어났다.
박 선수는 현란한 개인기로 한명숙·문재인·이정희 선수 등 범야권팀의 막강한 수비수를 제쳐 나갔다. 범야권 선수들이 한꺼번에 그를 막아봤지만 박 선수가 찬 볼은 이미 범야권팀 골 네트를 갈랐다. 경기장 밖에서는 김두관 선수가 곧 있을 선수교체를 위해 몸을 풀고 있다. 벤치에서는 안철수 선수가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 남은 시간은 8분, 경기장 분위기를 단번에 바꿀 조커가 투입될 시점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날개를 달았다. 박 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국회 과반의석(151석)을 웃도는 152석(비례대표 25석 포함)을 확보, 원내 제1당을 지켰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제1당 탈환에 실패함으로써 연말 대선가도에 잔뜩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의 오너인 박근혜 위원장에게 대권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박 위원장 눈 앞에 청와대가 어른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4월 11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제4투표소가 설치된 한강초등학교로 들어오고 있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그러면 대선 8개월을 앞두고 민주·진보진영에서는 이대로 주저앉을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같은 변화무쌍한 정치 상황에서 ‘대세론’이란 종종 무지개 같은 것이라고 진단한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앞으로 박근혜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설정 과정에서 친이계의 공격을 받아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며 “또한 야권의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교수가 나오면 대선판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의 후보 단일화 직전인 2002년 11월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정몽준 후보에 10%포인트 차로 뒤지고 있었다.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 측에 후보단일화를 제안했고, 지지율이 높았던 정몽준 후보 측이 혼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됐으며, 기적같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윈지코리아 이근형 대표는 “2002년 노무현 캠프에서는 정몽준 후보를 공격해서 표를 뺏어오는 것보다 후보단일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방안을 구상했다”며 “올해 대선 국면에서도 야권 후보들 간에 후보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범야권의 대선후보군으로는 민주통합당에서 문재인 상임고문, 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정세균 전 대표와 통합진보당에서 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 그리고 ‘장외의 숨은 진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들 중에 한 사람이 박근혜 위원장과 연말에 대권을 놓고 한판 붙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는 변화무쌍, 대세론은 없다?
우선 가장 주목을 끄는 인물은 안철수 원장이다. 민주통합당이 4·11 총선에서 패함으로써 야권과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시선은 온통 안철수 원장에게 쏠려 있다. 안 원장이 박근혜 위원장과 1대 1로 대적할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총선 직전인 4월 첫째주에 실시한 정례조사 결과를 보면 양자대결에서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은 47.8%로 박근혜 위원장(45.3%)을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총선 이후 제1 야당인 민주통합당 내에서조차 안철수 원장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18대 대통령 선거일(12월 19일)이 가까워질수록 안 원장의 정계진출 요구가 빗발치고, 안 원장의 주가도 치솟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안 원장도 정계진출 타이밍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는 서울대·전남대·경북대 등에서 특강형식의 강연정치를 했으며, 총선 이틀 전에는 총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동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일종의 메시지 정치를 했다. 이와 관련, 여의도에서는 안철수 원장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치컨설턴트, 전직 의원 보좌관, 대기업 연구소와 IT업체 출신 인사들로 구성된 이른바 ‘안철수 팀’이 가동되고 있다는 소문이 펴져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뒷받침할 만한 세력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특히 안철수 원장 측에서는 특정정당에 들어가면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민주당에 흡수될까 두려워 끝까지 민주당에 입당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그가 직접 신당 창당에 나서지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정계에 입문하더라도 그를 지지하는 단체들의 연합체나 연대회의를 이끌며,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와 지지율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경우 안철수 원장이 주도한 청춘콘서트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이 만든 청년당, 안 원장의 멘토인 법륜 스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평화재단 등이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원장 정계진출 타이밍 고민

문재인 당선자가 4월 12일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나오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이와 관련, 총선에서 득표율 저조로 정당등록이 취소된 청년당 강연재 대변인은 “청년당과 평화재단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교감해왔다”며 “안철수 원장이 정계에 입문하면 지원할지 여부는 당원 대표들 사이에서 논의 과정을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이번 총선에서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했다. 문 고문은 불모지인 부산에서 민주통합당의 깃발을 꽂는 데 성공했다. 특히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방문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 고문은 당선했다. 거기에다 민주통합당이 부산에서 정당득표율을 30% 이상 얻었다는 것도 문 고문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그의 기반인 부산에서 ‘문재인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민주통합당은 예상과 달리 부산에서 두 석을 얻는 데 그쳤다. ‘바보 노무현의 꿈’을 이루겠다고 뛰어든 문성근 후보 등 친노진영 인사들은 전멸했다. 정치컨설팅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문재인 상임고문은 이번 총선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며 “부산에서는 문재인 고문으로부터 나오는 바람보다는 노풍(노무현의 바람)으로만 선거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이번 총선 패배의 책임을 일정부분 떠안아야 할 의무도 있다. 그가 민주통합당을 만드는 데 산파 역할을 한 데다. 총선에서 한명숙 전 대표와 함께 ‘투톱’으로 나서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도 사실상 그의 손으로 성사시켰다, 하지만 야권연대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 대선 이후 야권 공동정부 구상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여대야소 19대 국회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사람은 문재인 고문이 될 것”이라며 “민주당 내에서 안철수 원장 등 ‘문재인 대안 찾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문재인 고문은 야권의 대선후보 티켓을 놓고 안철수 원장과 벼랑끝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기존의 문재인 고문에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뛰어들면 야권의 대선판이 재미있어질 것”이라며 “이 경우 민주통합당의 기반인 호남은 지난 2002년 대선 때처럼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크호스 김두관 경남지사도 대선에 뛰어들 공산이 크다. 그동안 김 지사 측은 경남지사직 수행과 대선 후보 출마의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해왔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총선 패배와 문재인 고문의 입지 축소로 김 지사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질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김 지사의 전국 팬클럽인 ‘모두 다함께’는 4월 27일과 28일에 전주와 대전에서 모임을 갖고 세를 과시할 예정이다. 김 지사 측이 2017년 차기 대선보다 올해 대선에 목을 매는 이유는 차기 대선 경선에서 승리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차기 대선에는 야권에서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최고위원,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김 지사가 이들을 물리치고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문재인 다소 타격, 김두관 다크호스

(왼쪽)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2월 16일 국회 민주통합당 당대표실에서 한명숙 대표를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4월 1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탄천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두관 지사는 대선 후보들 중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는 점과 야권의 각 정치세력과 원만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그는 동네 이장에서 장관에까지 오르는 등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두관 지사는 영남에 지역기반을 두고 있는 데다 친노의 핵심은 아니지만 친노그룹과의 관계도 있고, 온건 합리주의자로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두관 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경남지사직을 사퇴했을 경우 야권에서 재·보궐선거를 통해 경남지사를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지역의 진보 성향 인사들은 출마를 만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학규 상임고문도 여전히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손학규 고문은 수도권 출신으로 중도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확장력이 강한 대선주자라는 장점이 있다. 손 고문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도 전국을 돌며,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원했다. 손 고문 측은 현재는 지지율이 낮게 나오고 있지만, 대선 경선 국면이 되면 잃어버렸던 예전의 지지율이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다. 손 고문은 지난해 경기 성남 분당을 재·보궐 선거 승리 이후 대선후보 지지율이 15%까지 올랐었다. 손 고문은 대선 경선에 대비해 정책비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조직 정비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당선된 정세균 전 대표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정 전 대표는 친박계의 거물인 홍사덕 의원을 물리침으로써 대선에 출마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서울 강남을에서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에게 패한 정동영 의원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한 것을 설욕하기 위해 출마를 벼르고 있다.

통합진보당에서는 총선에서 살아돌아온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 그리고 유시민 공동대표의 대선 출마가 예상된다. 이정희 대표는 당권과 대권 도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통합진보당 대선 경선에 참여한다면 민주노동당 출신의 이정희 대표와 진보신당 탈당파인 심상정 대표와 노회찬 대변인, 그리고 국민참여당 출신의 유시민 대표가 각 계파의 지원 속에 세대결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