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2012년 선거 ‘녹색후보’ 경쟁력은

세 차례 지방선거에서 선전… 환경시민단체 본격적인 정치참여 논의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Ⅲ
저탄소 녹색정치가 열린다

“선거라기보다 축제 같았어요. 대학생 형·누나들이 많이 오셔서 로고송 부르면서 뛰어놀고, 아파트 벽에 빛을 쏴서 슬라이드 쇼를 보여준다든가….”

송준규씨(31)의 기억이다. 현재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5년 지방선거 당시 그의 나이는 15세. 아버지 송학선씨(현 송학선 치과의원 원장)가 경기도 과천시장에 출마했다. 무소속 출마였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출마자들은 많다. 하지만 송씨는 남달랐다. 왜 무소속 시장 출마를 결심했을까. 송 원장에게 물어봤다. “두 단체에서 등 떠미는 바람에….” 환경운동연합과 과천시민모임이었다.

과거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녹색후보’ 들은 비록 낙선한 경우라도 15~20% 득표를 받은 이가 꽤 되었다. 앞으로의 가능성은 얼마일까. 사진은 지난 1998년 경기도 광명시 지방선거 합동유세장의 모습. |이상훈 기자

송 원장은 출마를 처음으로 권유한 사람을 과천시민모임을 같이 했던 조석곤 상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기억한다. “그때 청계산에 서울시가 눈썰매장을 만든다고 했어요. 현재 서울랜드 땅인데, 서울시 소유의 공원부지였거든요. 과천시민모임에서 반대한 겁니다. ‘우리 목소리를 내는 신문을 만들면 좋겠다’고 논의하던 중이었어요. 조 박사가 어느 날 오더니 ‘신문 만드는 것보다 더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시장 출마하십시오’라고 하는 겁니다.”

송 원장이 받은 표는 6253표. 3등이었다. 시장에 당선된 이는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한 이성환씨였다. 이씨가 받은 표는 8696표. 약 2400여표 차이였다. 전체 투표자 중 그가 받은 표는 15% 정도였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이것이 녹색후보의 진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덧붙였다. “인물이라는 변수도 있겠지만, 온갖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 표를 얻었다면 해볼 만한 싸움 아니었나요.”

2002 지방선거 15명 당선시킨 녹색 위력
환경을 전면에 내세운 ‘녹색후보’ 출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일찌감치 1991년 지방자치 선거에서, 그것도 ‘강남구’ 지방의원으로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다. 바로 서울대 김정욱 명예교수다. “허허. 그건 정말 오래된 이야기라서 잘 기억나지도 않는데….” 김 교수의 기억에 따르면 당시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방선거가 제대로 되려면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지방살림을 하는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환경운동가 최열, 손봉호 교수, 이세중 변호사 등이 서울대에 찾아와 그를 설득했다. “왜 주저 안 했겠습니까. 처음에 이야기할 때는 10명 정도 나가기로 했는데, 결국 인하대 이영희 교수와 저, 두 명만 나갔습니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김 교수는 꽤 선전했다. 전체 7명의 후보가 나온 가운데 그가 거둔 성적표는 2등. 받은 표는 6724표였다.

그때 당선되었다면? “많이 달라졌겠지요. 안 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강남구 청담동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투표성향은 많이 달라졌다. “정작 개표를 해보니 당시 부자동네로 인식되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한양아파트 같은 데서 제 표가 많이 나왔습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죠.”

1995년, 1998년을 거쳐 2002년 지방선거에서 녹색후보 출마는 정점을 찍었다. 환경연합에 따르면 이 해 지방선거에서 환경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녹색후보로 선정한 인사들은 전국적으로 51명. 이 중 15명이 당선되었다. 당시 환경단체들은 수도권 인근 도시, 고양과 과천을 전략적 거점으로 선정해 집중적으로 후보를 내보냈다. 서형원 전 환경연합 정책팀장은 과천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했고, 이치범 당시 사무처장은 고양에서 출마했다.

당시 회원관리 업무 담당 간사였던 김혜련씨는 고양에서 기초의원으로 나왔다. 서 팀장·김씨 등은 당선되었지만, 이 처장은 고배를 마셨다. 다음은 이치범 당시 사무처장의 회고. “출마 결정이 난게 선거 6개월 전쯤이었습니다. 그때 서초동에 살고 있었는데 전세금을 빼서 3월에 이사가서 3개월 만에 치른 선거였어요. 고양시를 선정한 이유는 신도시인 데다가 그린벨트도 가장 많고 해서….”

당시 러브호텔 반대운동 등 지역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도 전략적 거점 선정의 또 다른 이유다. “고양시의 모든 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녹색시민후보’라는 타이틀로 단체장부터 도의회·시의회 의원까지 일제히 출마했습니다. 성과가 꽤 있었죠.” 2002년의 경험이 2010년 고양에서 이뤄진 연대·연합 실험인 ‘무지개 연대’의 밑바탕이 된다. 이치범 처장은 낙선했지만 그 후 참여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역시 환경부 장관을 지낸 이재용씨도 무소속 ‘녹색후보’로 출마, 대구 남구청장을 두 번 연임한 경험이 있다.

남구청장 재임시절 ‘녹색자치단체장’으로 그의 모습은 두드러졌다는 것이 지역시민사회 인사들의 회고다. 당시 미군기지 모니터 활동을 벌였던 배종진씨는 “요즘 고엽제와 관련해서 왜관 미군기지 문제가 다시 부각되는데, 당시 바로 그 부대에서 보일러 기름 유출사건이 있었다”며 “SOFA 합동위원회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미군 당국이 스스로 인정하고 오염 정화를 하도록 한 것은 오로지 구청장 역량 덕분이라는 게 중론이었다”고 회고했다.

정당공천제도 도입으로 열풍 사그라들어
그런데 2002년 이후 지자체 선거에서 ‘녹색후보’는 거의 살아남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02년 당시 고양에서 기초의원에 당선되었던 김달수 현 경기도의원은 2006년 선거부터 도입된 정당공천제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무소속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제약이 많았다.” 그 후 2010년 선거에서 김달수 의원은 민주당으로, 김혜련 의원은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해 다시 당선되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환경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녹색정치’라는 화두를 두고 내부 논의가 한창이다. 본격적으로 ‘녹색당’ 창당작업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2006년과 2010년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녹색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던 최경석 도의원은 “아직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은 없지만 만약 (녹색당 건설이) 수면 위에 올라온다면 나 같은 경우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최 의원의 전 직책은 전남 환경운동연합 의장이다. 김혜련 고양시 의원은 “녹색당이 설 수 있는 대중적인 정서는 성숙했지만 투표를 통해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치범 전 장관은 ‘녹색가치’ 실현을 목표로 한다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현재 정치권 중심으로 논의되는 평화와 복지라는 ‘화두’와 아울러 ‘생태적 가치’가 함께 해야 다시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환경단체가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인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2012년이 갖는 의미가 또 한 차례의 정권이 변화되는 수준일지, 아니면 진정한 녹색국가로 나아가는 기틀로 삼아야 할지를 두고 내부 토론을 진행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환경연합 등 환경시민단체들은 올 7~8월 정도에 이 문제를 논의할 녹색정치위원회를 띄울 예정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