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독일 녹색당 약진, 총리까지 꿈꾼다

기민당 아성 지역서 주총리 배출… ‘현실정치와의 타협’ 비판 받기도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Ⅲ
저탄소 녹색정치가 열린다

지난 3월 27일.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혼란을 겪고 있을 시각, 지구 반대편에서는 독일 역사상 최초의 녹색당 출신 주총리 탄생이라는 소식에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것도 보수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기민당이 지난 58년간 집권한 그야말로 그들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녹색당 출신 주총리가 선출된 것이다. 때문에 녹색당 출신 신임 주총리 빈프리트 크레치만은 일약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과 전문가는 이번 주총리 당선은 녹색당이 창당 이래 주창해온 그들의 이념인 환경과 시민참여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주저 없이 얘기한다.

지난 4월 20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선출된 녹색당 출신 주총리 빈프리트 크레치만(왼쪽)과 사회민주당 주 대표 닐스 슈미트가 슈투트가르트 역사(驛舍) 재건축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AP/연합

주도(州都)인 슈투트가르트에서는 90년된 낡은 역사를 철거하고 다른 도시와의 연결이 용이한 새로운 중앙역을 건설하는 ‘슈투트가르트21’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결정하고 밀어붙이기식 행정을 일삼자, 유권자들은 단단히 뿔이 났다.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이지만,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환경의식이 높기로 소문난 곳. 기민당의 환경파괴, 찍어누르기식 정책 집행에 화가 난 유권자들은 환경과 주민자치를 줄곧 외친 녹색당에 표를 던졌다. 여기에 더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는 핵폐기를 우선 정책으로 내건 녹색당의 손을 들어주는 데 방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2006년 선거에서 12% 득표를 거뒀던 녹색당은 이번 3월 선거에서는 24.2%를 얻어 기민당에 이어 제2당이 됐다. 3위인 사민당과의 연합정부 구성에 합의해 연합정부 파트너를 찾지 못한 기민당을 권좌에서 쫓아내고 당당하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3월 선거서 24% 얻어 제2당으로
1970년대 각 주에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통해 선거에 참여했던 녹색당은 1980년 1월 13일, 생태·사회·직접민주주의·비폭력을 기치로 전국 규모의 정당으로 탄생한다. 1983년 5.6%의 득표로 처음으로 연방의회 원내 진출에 성공,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후 성장세를 지속하다 통일 후 치러진 첫 연방선거에서는 통일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은 등한시하고 ‘모든 이들이 독일을 얘기할 때 우리는 날씨를 얘기한다’는 표어로 환경의 중요성만 강조하다 결국 된서리를 맞는다. 이후 동독 출신의 연합90(Bundnis 90)과의 합당을 통해 구 동독 지역으로의 세 확장을 꾀하게 된다.

1998년 치러진 연방선거는 원내진출뿐 만 아니라 녹색당에 집권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전체 지지율은 6.7%에 불과한 3위였지만, 약진한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하는데 성공, 마침내 국정을 운영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녹색당 출신의 요슈카 피셔(Joschka Fischer) 외무장관은 무난한 국정운영으로 녹색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반대파들에게서 지지를 받기도 했다.

특히 녹색당이 집권했을 당시 확정된 두 개의 법은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2000년 신설된 재생가능에너지법(EEG)은 과거 풍력발전에 제한되었던 발전차액지원제도(FIT)에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모든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포함했다. 이 법을 통해 독일은 태양광 산업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지난해 가을 현재 총 2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지난 2009년의 국제 금융위기 가운데서도 독일은 반대로 경제가 성장하고 실업률이 감소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는 재생가능에너지법에 따른 재생에너지 산업의 덕분이라고 보수성향의 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할 정도다.

다른 하나는 최근에도 논란이 되고 있는 원자력 수명과 관련이 있다. 지난 2002년의 원자력법(AtG) 개정이다. 새로운 발전소의 건설을 금지하고 가동 중인 원전은 설계 수명이 다하는 시점에서 폐쇄할 것을 법으로 명시했다. 현 메르켈 정부는 지난해 가을 녹색당이 확정한 이 내용에 손을 댔다 전국적인 반핵 시위를 경험했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결국은 녹색당이 결정했던 내용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자신들의 핵정책을 후퇴하는 정치적인 수치를 경험해야만 했다.

오는 9월 베를린 시장 당선 기대
2005년 선거에서 패배로 다시 야당으로 돌아간 녹색당이지만, 최근의 기세는 매우 매섭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리 당선 이후, 지난 5월 브레멘 주 선거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민당을 제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오는 9월 예정된 베를린 지방선거에서도 녹색당 출신 시장 당선을 예상하는 정치 평론가들이 상당히 많다. 지난 가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20% 이상의 지지를 기록했던 녹색당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속적인 상승 분위기에 있다. 다양한 정치적 변수와 다음 총선까지 2년의 시간이 남긴 했지만, 만약 은퇴한 요슈카 피셔를 총리 후보로 내세울 경우 녹색당 출신 독일 총리의 탄생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할 정도에 이르렀다.

녹색당의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그룹은 매우 다양하다. 정가에서는 녹색당의 유연성 없는 이념이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조율하고 통치하기에는 아마추어적인 한계가 많다고 고개를 젓는다. ‘녹색’을 지지하는 환경단체에서도 녹색당에 마냥 박수만 보내지는 않는다. 현실과 너무나도 많은 타협을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안 동의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슈투트가르트21 프로젝트’에 대한 대처다.

지난 2001년 녹색당은 전당대회에서 미국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독일군을 파병할 것을 승인한다. 연정 해산을 불사한 사민당의 전략에 굴복한 셈이지만, 그간 전쟁 반대와 평화를 외쳤던 녹색당은 그 이후 자신들의 지지자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탈당도 있었다. 집권한 지 2개월 남짓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총리는 후보시절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를 줄곧 반대했고 또 이 덕분으로 주총리에 당선됐다. 하지만 독일철도의 공사 재개 결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많은 시민들은 명확하게 이 사업을 반대한 녹색당에 투표했으나, 석 달이 흐른 지금 그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와 공사 중단을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독일 녹색당은 세계 최초의 녹색당은 아니지만 현재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이들은 원내 진출뿐만 아니라 국정 운영의 경험도 갖고 있으며, 현재 핵정국의 주도권 또한 갖고 있다.

독일 녹색당의 성공은 독일만의 특유한 선거제도의 도움 덕분이다. 국회의원 정원의 50%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전통, 선거에서 1위를 하지 않더라도 연합 정부를 구성하면 집권이 가능한 내각제가 그것이다. 이런 선거제도는 시민들로 하여금 1위 또는 1위가 될 가능성이 있는 정당에 어쩔 수 없이 투표해야 하는 부담감을 없애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소신껏 투표할 수 있는 자유를 충분하게 제공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염광희<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