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세계의 녹색리더는 누구?

<타임>이 선정한 환경 영웅들… 앨 고어, 앙겔라 메르켈,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Ⅲ
저탄소 녹색정치가 열린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7년부터 해마다 환경 영웅을 선정해 왔다. 다분히 미국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고 있는 이 잡지는 자신들이 선정한 환경 영웅을 ‘지구별의 대변인’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스스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데, 환경 영웅들이 지구를 대신해 지구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있다는 얘기다.

(왼쪽부터)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찰스 왕세자.

오늘날 세계 정치인들 가운데 제 나라 유권자들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지구별의 이익을 위해 발언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국가 규모에 관계없이 그런 정치인들을 한둘쯤 갖지 않은 나라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지도의 측면에서라면 <타임>이 ‘지도자와 선구자(Leaders
& Visionaries)’ 부문에서 환경 영웅으로 선정한 이들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라 할 만하다.

“메르켈이 없었다면 교토의정서 없었을 것”
먼저 환경운동으로 지난 2007년 노벨평화상까지 거머쥔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 앨 고어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시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그는 환경운동가로서의 행보를 적극적으로 이어 왔다.

2006년에는 기후변화를 다룬 저서 <불편한 진실>로 퀼 문학상을 받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책은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의 동명 다큐영화로 제작돼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2006년 선댄스 영화제와 칸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앨 고어는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맡았다.

퇴임 후 행보가 주로 주목받긴 했지만, 고어는 대학 시절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일하면서 1997년 교토의정서 채택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많은 노력을 했다. 퇴임 후 그는 기후보호연대(ACP)라는 단체를 창립했는데, 환경운동 기획자로서도 능력을 과시했다. 2007년 7월 7일 일본 도쿄, 호주 시드니,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24시간 동안 진행된 대규모 콘서트 ‘라이브 어스(Live Earth)’가 대표적이다. 그가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이러한 활동 덕분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 환경장관 시절부터 국제적인 환경문제 해결 노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메르켈의 정치력은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국제적 차원의 협력틀 마련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타임>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한 미국 고위관료는 “그녀(메르켈 총리)가 없었다면 교토의정서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 동독에서 양자화학을 전공한 메르켈은 특히 기후온난화 방지 노력에 소극적인 선진국 정상들을 설득하는 데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2007년 G8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올려놓았고, 회의 과정에서 부시 전 대통령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정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2008년 메르켈을 ‘지구를 구할 5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 왕실 농장에서 유기농 재배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소련을 이끌던 지도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였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소련 붕괴 이후인 1992년, 환경단체인 국제녹십자(Green Cross)를 창립했다. 국제녹십자는 기후변화부터 화학물질에 의한 오염 문제까지 환경에 관한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는 세계적인 환경보호기구로 성장했다. 그는 2006년 한 호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전 세계적 환경위기, 인간과 자연 사이이 갈등에 직면해 있다”며 “그것은 우리가 정치와 자세 측면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2008년 서울 국제환경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는 “석유와 대포로는 현재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석유와 군수산업에 의존하는 강대국을 비판했다.

상당수 영국인들은 찰스 왕세자를 ‘식물과 대화하는 괴짜’라고 부른다. 그의 자연 애호를 비꼬는 표현이다. 그러나 환경보호 영역에서 그는 선구적인 혜안을 보여준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영국 왕실 농장에서 이미 1986년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이 농장에서 생산된 채소들은 그가 1992년 설립한 친환경 식품회사가 제조하는 유기농 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10대 때부터 인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문제를 걱정해 왔다는 찰스 왕세자는 1990년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올해 2월에는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열린 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지금처럼 우리가 지구를 탐욕스럽게 소비해버린다면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내에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그는 기존 도시를 보다 인간적인 지역공동체로 바꾸자는 도시마을(urban villages) 운동을 후원하고 있고, 친환경 주택 건설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2008년에는 스물한 살 생일 때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선물받은 애스턴 마틴을 비롯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승용차들을 모두 100% 바이오에탄올 연료로만 움직이는 자동차로 개조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앞선 정치인들과 함께 2007년 <타임>의 환경 영웅으로 선정됐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추진한 청계천 복원 덕분이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타임>은 “불도저가 녹색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환경운동계의 평가는 다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지난해 9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한강에 시멘트 발랐는데 되살아났다고 하고, 청계천도 물 끌어올려 보여주는데도 일단 좋다고 하는 거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중 성과로도 환경 관련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지난해 유엔생물다양성협약(UNCBD)은 한국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평가한다며 이 대통령에게 생물다양성협약 공로상을 줬다. 이 역시 논란거리다. 세계습지네트워크(WNN)는 지난해 9월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사무총장 앞으로 서한을 보내 “전 세계 습지와 생물다양성 관련 단체, 학자들이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초대형 개발사업의 파괴성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10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이 대통령에게 공로상을 수여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원전에 대한 두 나라의 입장은 극과 극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 카이스트 개교기념식에 참석해 “비행기가 사고율이 낮지만 치사율은 높다고 비행기를 타지 말아야 하는가”라며 “더 안전한 원전을 만들어내야지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달 30일,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집권 기민련·자민당 연정은 2022년까지 독일의 모든 원전을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