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유럽은 녹색 정치의 고향이다

1960년대부터 환경문제 부각… 안정적 삶 위기의식이 지지 이끌어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Ⅲ
저탄소 녹색정치가 열린다

지난 3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건 이후,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정당으로서는 최초로 원자력 발전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이를 당의 강령으로 채택한 녹색당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2년 9월 3일, 총선 유세 지원차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를 방문한 녹색당 출신 요슈카 피셔 당시 독일 외무장관(앞)과 녹색당 지도부가 밤베르크 시내에서 조깅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생활 이슈’ 다룬 신사회운동이 녹색당 세워
유럽은 녹색정치의 고향이라 할 정도로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녹색당이 창당되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 외에 호주와 뉴질랜드,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녹색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유럽 못지않게 활성화되어 있다.

독일에 미치지 못하지만 특히 유럽에서 (사회)운동 정당이라 할 수 있는 녹색당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요인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서유럽(냉전체제 하에서는 동유럽을 제외한 지역) 국가들은 산업화와 민주주의 발전 정도가 거의 동일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경험도 그렇고 사회문제 역시 거의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서 환경오염 문제는 이미 1960년대부터 이 지역의 새로운 사회문제로 강력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둘째, 1968년의 학생운동은 당시 보수적이었던 서유럽 국가들에서 진보 정치집단이 집권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가 퇴진한 것도 이 68학생운동의 결과였던 것이다.

셋째, 68운동 이후 소위 신사회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신사회운동은 일종의 체제변혁, 혹은 개혁운동으로 체제를 극복하고 해체하려는 구사회운동과 구별된다. 이 신사회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환경, 여성, 평화, 인권, 소수자 보호 등과 같이 과거 구사회운동에서 간과되었던 생활 속의 이슈들을 운동 전면에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조직의 형태도 지도자 중심으로 수직적으로 구성된 구사회운동과는 달리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회원과 참여자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신사회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대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구석으로까지 확대되어 나갔다.

넷째, 이렇게 신사회운동이 발생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역시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운동이라 할 수 있는데,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원전 건설 반대가 중심인 환경운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이 운동 못지않게 핵무기와 핵무장을 반대하는 평화운동도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나토군이 구소련의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중거리 핵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함으로써 핵전쟁 발발 위험성이 높아졌고, 위기의식을 갖게 된 서유럽 시민들은 스웨덴에서 독일로 행진을 하는 등 국경을 넘나드는 각종 퍼포먼스를 시도하며 평화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에 환경운동 진영도 가세하면서 이 운동의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공동의 역사와 사회 경험을 통해 형성된 유럽 녹색당은 자연스럽게 이런 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녹색당의 정체성과 전통이 확고해졌다. 이런 가치를 추구하고 지지하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녹색당의 지지자가 되었고, 당시 유럽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던 환경오염, 원자력발전소, 핵무기 배치 등을 전면적으로 반대했던 녹색당이 출범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되었다. 이런 신생정당이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현상 자체가 고정 유권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 민주주의가 확고한 유럽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선 20% 넘기며 제2정당으로 부상
1970년대 후반부터 녹색당 창당 움직임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1979년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 ‘Coordination of European Greens’(CEG)로 참여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동질적인 녹색당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급진적인 군소정당과 연대를 하였고, 3%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이후 서쪽의 아일랜드에서부터 동쪽의 오스트리아, 북쪽의 핀란드와 남쪽의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에서 녹색당이 창당되었다. 1984년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당명을 ‘European Greens Coordination’(EGC)으로 변경하고 재출범한 유럽 녹색당은 그 해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11석을 얻어 5년 사이 유럽에서 녹색당의 선호도가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실감케 했다.

그 후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EGC는 26석(1989), 20석(1994), 38석(1999), 35석(2004), 46석(2009)을 얻으면서 지속적으로 의석을 확보해가고 있다. EGC는 2004년 로마에서 32개국의 녹색당이 참여하는 ‘유럽연합녹색당(European Federation of Green Party)’으로 재창당하면서 유럽 녹색당의 위상을 확보했다.

녹색당의 양상은 나라에 따라 매우 상이한데, 프랑스는 환경정당으로 1974년 최초로 대통령 선거에 참가했고, 한때 3개의 녹색정당이 경쟁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스페인에서는 공식적으로 2개의 녹색정당이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잉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가 각각 EFGP에 가입하고 있다.

유럽의 녹색당이 국가 차원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경우는 독일,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에 국한되어 있지만,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 유럽 지자체에서는 녹색당 의원과 정치인들이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좌파 집권 시기 파리 시장을 비롯해 몇 개 부처의 장관들이 녹색당 출신이었다.

유럽 녹색당이 추구하는 가치는 생태가치,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 다양성, 사회정의, 성평등, 지구 차원의 지속가능 발전과 평화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그 어떤 정당도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30%의 지지율이 최대다. 독일에서 녹색당은 이미 20% 이상의 지지를 얻어 지방에 따라서 제2의 정당으로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계 파괴와 기상이변으로 인해 사람들의 안정적 삶이 위협받고 있는 한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운동 정당으로 출발한 녹색당은 반대와 비판이 아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수권정당으로서 보다 강한 책임을 갖는 정당으로 진화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근대 산업사회의 산물인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상징인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양당 구조를 극복하고 환경과 같은 좌와 우의 경계를 초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녹색당이 제 1 정당으로 부상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유럽에서는 말이다.

차명제<성공회대학교 NGO 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