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녹색진보가 정치권으로 진출 해야”

좌담회 <녹색정치의 시대가 열린다>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Ⅲ
저탄소 녹색정치가 열린다

지난 3월 27일 독일 정치사상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최초의 녹색당 출신 주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보수 중도우파를 표방하는 기민당이 무려 58년 동안 집권했던 지역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주총리에 녹색당 빈프리트 크레치만(61)이 당선됐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2년 후 메르켈 총리 후임에 은퇴한 요슈카 피셔가 등장한다면 녹색당 출신 총리 탄생도 가능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6월 16일 환경재단 회의실에서 ‘한국 녹색정치의 의미와 가능성’을 주제로 좌담회가 열렸다. 좌로부터 최열 대표, 김호기 교수, 유지나 교수, 윤순진 교수.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4대강, 구제역, 미군기지 다이옥신 등 수년 동안 끊임없이 불거지는 환경문제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적 세력이 없다. <주간경향>은 지난 6월 16일 오후 환경재단 2층 회의실에서 ‘한국 녹색정치의 의미와 가능성’에 관한 좌담회를 열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유지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최열 대표 20세기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물질적으로는 ‘소비의 시대’, 색깔로는 회색, 건강상태로는 고혈압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1960~70년대 학생운동, 빈민운동 세력이 1980년대 녹색당을 만들었고, 또한 많은 나라에서 녹색당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2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환경지속성지수가 142개국 중 136위였다. 현재의 환경사안인 4대강, 새만금, 구제역, 미군기지 다이옥신 문제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치적 쟁점을 만들고 국민의 욕구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든다.

김호기 교수 “20세기는 이념정치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녹색정치입니다.”

김호기 교수 2000년대 이후에 세계사적으로 정치가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던 정치에서 포스트 모던 정치로의 변화다. 20세기는 좌파와 우파의 정치, 이념 정치가 중심이었다면, 포스트 모던 정치의 핵심은 이념을 넘어서는 ‘녹색정치’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하는 ‘자연의 정치’, 환경이나 여성의 인권 같은 구체적인 삶이 이슈가 되는 ‘생활 정치’가 그 예다. 정당이나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사회 조직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개인의 정체성이 새로운 정치의 주체가 된다. 이런 녹색정치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유지나 교수 개인적으로 개발이 지연되더라도, 심지어 그걸 버릴지라도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게 198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이었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3색(色) 시리즈 영화에도 나오는데, 등 굽은 파리의 노인들이 손이 안 닿는 가판대의 분리수거용 벽에 빈병을 넣으려고 온몸을 떨면서 스트레칭하는 장면을 많이 봤다. 개개인의 행복권이 추구되는 것들이 정치 어젠다가 되는 것, 그것이 곧 환경정치다. 한국은 OECD 중 자살률은 가장 높고, 행복지수는 제일 낮은 나라, 개인의 행복권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다. 이걸 환경정치로 메워가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윤순진 교수 저탄소 녹색이 이슈화되는 건 분명한데, 그 이슈를 담아낼 공간이 새로운 형태의 녹색당일지, 아니면 기존 정당일지,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유럽의 경우 녹색당의 형태로 갔는데,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나 각 지역에서의 풀뿌리 운동, 유럽의 사회적 맥락 등에서 녹색운동이 정치세력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양당제다. 독일이나 유럽 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없다. 녹색운동이 하나의 정당세력으로 형성되기에는 사회적 조건이 받쳐주지 않는다.

그럼 우리는 어떨까. 기존 정당이 사회정의, 여성문제, 성소수자, 환경 등의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지 못하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운동이 정당의 형태가 되는 게 적절할지, 아니면 시민운동을 통해 기존 정당을 평가하거나 힘을 보태서 이런 가치를 담아내도록 해야 될지 여부에 대한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최열 대표 “4대강, 새만금 등에 대해 국민을 대변할 새 정당이 필요합니다.”

최열 저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중앙정치보다 지자체에서부터 녹색의 생활정치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해 1998년 환경운동연합 ‘녹색자치위원회’를 구성했다. 1998년과 2002년에 무소속으로 두 차례 후보를 내는 시도를 했다. 과천시장에 출마한 송학선씨는 20% 정도 얻어서 낙선했고, 대구 남구청장에 출마한 이재용씨는 당선됐다. 이재용씨는 구청장이 된 후 4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새벽에 직접 쓰레기 청소를 했다. 기존 지자체장과 확실히 차별성이 있었다. 2002년에는 경기도 ‘고양시’를 녹색문화도시로 만들자 해서 고양환경연합 공동의장인 이치범씨가 고양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했지만 13%의 득표를 했다. 환경운동연합 사업부장이던 김혜련씨는 당시 27세 최연소로 고양시의원으로 당선됐다.

제 나름의 결론은, 대도시에서는 자질이 있는 후보자가 출마하면 10~30%의 표를 얻는 것이 실제 증명됐다. 하지만 그게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정치권에 가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시민운동가들이 갖고 있는 결벽주의 때문이었다.

김호기 녹색의 정치세력화, 그 귀결이 바로 우리가 아는 녹색당이다. 독일이 전형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녹색당이 전국정당으로 결성된 건 1980년이고, 1983년 연방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이 5.6%를 얻었다. 80년대 중반에는 헤센주에서 최초로 주정부 차원의 적록정부(사민당과 녹색당 연정)가 나타난다. 요슈카 피셔(Joschka Fischer)가 헤센주 환경부 장관이 되었는데, 유럽에서는 아주 역사적 사건이었다. 올 3월에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녹색당이 전체 투표 2위를 차지해 3위인 사민당과 적록 연립정부를 구성해 녹색당 출신 주정부 총리가 최초로 탄생한 것이다. 이는 민노당이 한나라당이 된 격이다. 녹색당은 기본적으로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에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가 이야기했던 ‘탈물질적 가치’가 발전해야 한다.

윤순진 우리 사회는 탈물질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홍성태 교수가 최근 토론회에서 정경유착 표현 외에 ‘정민(政民)유착’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정민유착은 민이 물질에 가치를 많이 두고 정치가 민의 그런 점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경기 여주 남한강 이포보에서 농성했던 염형철씨는 자기를 괴롭히고 절망을 느끼게 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너무나 큰 스피커 소리였다고 한다. “너 때문에 우리 지역 발전 망가진다”는 소리. 지금도 물질적인 보상과 환경을 거래하는 사회적인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을 반대한 환경단체들의 회원 가입이 늘 줄 알았는데, 안 늘었다.

유지나 교수 “성장보다 환경가치가 삶의 질, 행복권 추구라는 인식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유지나 한국은 구체적인 물적 토대나 역사적 변화를 보면, 사실 유럽의 작은 국가인 헝가리나 아일랜드와 유사하다. 정서적 강렬함, 강대국 속에 놓인 약소국으로서의 위치다. 하지만 이게 일본 식민지 해방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면서 왜곡됐다. 미국이 환상적인 욕망의 대상이 됐는데, 잘못됐다. 우리 체질에도 안 맞는다. 우리는 나라도 좁고 도로도 좁고 인구는 많은데, 큰 차를 탄다. 미국이라는 잘못된 욕망의 대상을 책정함으로써 우리에게 굉장히 많은 내부 모순과 이중성이 생겼다.

최열 큰 흐름으로는 어쨌든 가치 중심으로 가는 세력이 형성된다. 극단적인 물질 중심으로 가는 세력도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김호기 우리나라는 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녹색정치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서구의 경우 계급정치에서 녹색정치로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화도 압축, 민주화도 압축되다보니 균열구조가 여러 개 동시에 공존한다. 지역, 계급, 물질만능주의 대(對) 생태존중(물질-탈물질) 균열 구조가 동시에 존재한다. 여기서 물질-탈물질의 균열이 크게 강조되기가 어렵다. 이밖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처럼 일단 정치권에서 소수정당의 진입이 잘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 사회에서 녹색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서유럽과 유사한 과정이 되풀이돼야 한다. 서유럽의 녹색당 기반이 된 주요 사회운동은 환경운동, 평화운동, 여성운동 등이다. 이건 신사회운동이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운동은 제가 보기에는 생태주의적 환경운동을 제외하고는, 구사회운동적 성격도 크다고 본다. 구사회운동들은 녹색당과 같은 새로운 정당에 의존하기보다는 기성정당과 정치적 분업을 맺으려고 한다. 이러다보니 녹색정치의 운동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운동정치와 제도정치의 가교라는 게 중요하다. 녹색당은 환경당을 넘어서서 환경당 플러스 알파가 되어야 한다.

최열 정당은 조직의 최고 형태다. 하나의 전문성만 갖고는 정당이 안 된다. 대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조직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정당정치는 안 했지만 정치적 활동은 계속해 왔다. 낙선운동도 하고 물갈이 연대도 했다. 하면서 느낀 건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를 통해서 외형적 민주주의는 됐지만 환경에 대한 것은 큰 변화가 없다. 예를 들면 갯벌 문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새만금 개발했고, 민주당의 호남 국회의원들은 지역사안이라 대부분 찬성했다. 4대강 공사를 강행하는 이명박 정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정부가 원전을 계속 추진하는 걸 보면서, 3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왔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환경운동과 녹색당, 두 개의 축으로 가야 한다.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이 났을 때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갔다. 그 느낌을 정치적 중심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시 개별화된다.

윤순진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되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인터넷 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 기존 정당과 달리 무겁지 않게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고 사회적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기존 정당들에게 자극이 될 수 있고 견인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우리는 개인적 대응만 했다. 미역이나 소금을 더 사먹는 방식으로. 조직화되어서 사회적 힘이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못 갔다.

김호기 생명과 평화의 가치는 갈수록 중요해진다. 문제는 정치사회 내에서 녹색정치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정치적 목소리가 없다. 정치의 본질은 오바마 미 대통령이 얘기했듯이 ‘목소리가 없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주는 것’이다. 녹색진보가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윤순진 교수 “가입이 자유롭고 사회적 힘이 있는 인터넷 정당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윤순진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환경이슈이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협한 게 4대강이다. 국민의 70%가 반대했음에도 진행됐다. 이를 저지할 정치적 흐름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녹색정치세력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사업이 나중에 발생시킬 유지비용이라든지 환경파괴 이슈들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지는 게 필요하다.

김호기 4대강은 이명박 정부의 최대 사건이다. 지방적 차원에서는 4대강 옹호세력이 적지 않았겠지만 전국적 차원에서는 60%의 국민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했다. 이것의 정치적 결과는 지난 지방 선거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1월 한 언론사 주최로 조국 서울대 교수와 대담을 가진 적이 있다. 그때 조국 교수가 “4대강 사업은 정치적 사건이므로 4대강 보 폭파를 선거 공약의 하나로 내걸자”고 했다. 일본 민주당이 50여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후 군마(群馬)현 얀바댐 건설을 백지화한 것처럼 말이다. 진보를 표방한 정치세력이라면 일부 보를 폭파하겠다는 걸 선거공약으로 내걸 수도 있다. 4대강을 반대한 국민 지지에 일정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유지나 녹색은 반(反) 성장이다. 그러나 아무도 반성장을 용감하게 말 못한다. 표 떨어지니까. 성장보다 환경가치, 그게 삶의 질이고 행복권 추구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내년 선거에서 녹색정치를 출발할 수 있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

윤순진 녹색정치의 필요성, 세력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지는 논의가 필요하다. 호흡을 너무 빨리 가지면 녹색의 탈색화로 이어진다. 생협, 유기농, 귀농, 귀촌세력, 대안의료, 대안교육 등 대안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대안적 꿈을 실현하려는 의지가 모여야 한다. 그리고 기존정당이 녹색적 가치를 실현하는 세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너무 다르다. 환경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사안을 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서 환경이슈에 대한 평가나 활용이 달라지는 거다.

최열 기존의 제도권 정당으로서는 힘들다. 녹색정당이 필요한데, 그것이 어떠한 조건 하에서 언제 만들어져야 할 것인가. 국민에게 지지받는 핵심세력이 나타나야 한다. 풀뿌리 운동이 중앙까지 올라가는 건 어떻게 보면 이러한 운동과 정치를 할 수 있는 핵심세력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정리·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