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임’ 공동대표 명진 스님 “아이쿠, 2년밖에 안 지났나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연초 새누리당은 새 원내대표를, 새정치민주연합은 새 대표를 각각 뽑았다. 두 정당 모두 “국민을 위한 당, 수권정당이 되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대표 효과를 보며 지지율이 새누리당에 육박했다. 새정치연합의 상승세 속에 쑥 들어간 게 ‘국민 모임’의 신당이다. 얼마 전까지 제1야당의 전당대회보다 더 주목을 받았던 ‘국민 모임’의 신당은 아직 잠잠하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국민 모임이 신당을 창당할 경우 지지율이 18.7%에 이를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는 당장이라도 창당대회를 열 기세였는데 왜 조용할까.

‘국민 모임’의 공동대표인 명진 스님을 만났다. ‘강남 좌파 스님’ ‘누리꾼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지도자’ ‘막말 스님’ 등 별명도 많고 팬클럽까지 거느린 스님을 만나 신당을 왜 만드는지, 신당작업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어떤 모습의 당이 될지 물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국민 모임’ 공동대표 명진 스님 “아이쿠, 2년밖에 안 지났나요”

신당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저는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하는 정도이지 직접 정당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당에 참여하기로 한 다른 분들이 지금 부지런히 인재 영입이나 정당정책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네요. 야당에서 신당에 오려는 이들을 각종 조건을 내걸어 회유를 하기도 하고….”

스님이 지난 대선 당시에 지지선언을 했던 문재인씨가 새정치연합 당대표가 되었습니다. 신당 창당보다 새정치연합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고장 난 헌 집을 수리·보수하는 것보다 새집을 짓는 것이 낫습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이후 국가의 도덕지수가 최하로 땅에 떨어졌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그 집안은 망한다’고 하는데 국가시스템이 너무 부끄럽게 돌아가는데도 새누리당은 그렇다 쳐도 야당마저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같아요. 현재 야당은 야성을 잃었어요. 야당이 아니라 허당, 허수아비들이 이끄는 당입니다. 130여명의 국회의원이라면 큰 숫자인데 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여당에 질질 끌려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에 반창고 하나 붙인다고 병이 낫겠습니까.”

신당을 만들 결심을 한 계기가 있습니까.
“신당의 모태는 지난가을,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했던 광화문 농성장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하나도 지키지 않았어요. 제대로 해결해 주기는커녕 왜 유가족이 피눈물을 흘리는지조차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야당도 똑같아요. 여당에 끌려가기만 할 뿐 제 역할을 못했어요. 당시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두 번이나 여당이 만든 세월호 특별법안을 들고 와서 설득만 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무능하고 국민의 마음을 모르는 야당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니 신당을 만들자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인 거죠. 또 다른 이유는 이 정부 자체가 불법·부정선거로 탄생한 정부이니 다음 정권을 창출할 당이 필요해서입니다.”

모든 정당들은 국민, 특히 서민을 위한 당이라고 주장합니다. ‘국민 모임’에서도 국민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하는데 너무 막연합니다. 신당의 ‘새로운’ 콘셉트는 무엇입니까.
“여당의 부패와 야당의 무능함에 절망한 국민들이 신당을 요구했습니다. 발기인 명단만 봐도 저를 비롯해 감독, 화가 등 직접 정치에 나서 한 자리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신당은 900만 비정규직과 800만 영세 자영업자 등 진정한 서민을 위한 당이 될 겁니다. 다들 ‘서민’ ‘서민’ 하지만 여야 모두 서민을 모릅니다. 신당의 차별화는 우선 사람입니다. 마침 4월 보궐선거가 있는데 그때 우리 당이 후보로 내세울 사람의 면모를 보면 신당의 방향과 색깔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또 신당 창당을 야권 분열로 볼 가능성도 있는데, 경비가 들더라도 결선투표를 통해 단일화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국민 모임’ 공동대표 명진 스님 “아이쿠, 2년밖에 안 지났나요”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하려면 ‘돈’과 ‘일자리’가 있어야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습니까. 신당에서 돈을 풀 것도 아니고….
“신당이 하나 나타난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아픔과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신당은 보다 더 본질적인 해결책을 고민합니다.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북문제입니다. 중국의 저가 생산품, 독일 등의 고부가가치 생산품을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남북의 평화가 중요합니다. 당장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며 주민들의 교류나 경제활동을 같이하면 한반도의 경제발전과 평화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각종 갈등 해소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북이 평화를 유지하면 무기 구입 등 국방비에 들어갈 예산을 복지에 쓸 수 있게 되고, 그 효과는 남북 모두 엄청날 겁니다. 신당에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영입한 것 역시 그분의 통일에 대한 탁월한 인식과 진정성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정말 혹독하게 비난을 했죠. ‘MB가 서울을 하늘에 봉헌한다는데 난 MB를 봉헌하겠다. 물론 하느님이 왜 그런 사람 올려보냈냐고 화를 내실 거다’ 등등 독설도 많이 했는데,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별로 큰 비판이나 독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박근혜 정부가 3년차를 맞는데, 지난 2년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아이쿠, 2년밖에 안 지났나요? MB는 누차 강조했듯 정말 염치 없는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박 대통령의 애국심은 믿었는데 너무 실망스럽죠. 이번 이완구 총리만 봐도 그래요. 제 고향이 충청도인데 충청도 분들이 우리 고향 사람이 총리 되었다고 기뻐한다면 정말 ‘멍청도’란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장상 총리 후보는 위장전입 하나만으로 낙마했는데, 요즘은 위장전입은 애교이고 탈세, 투기, 군면제 등 4종 세트가 고위직 자격증 같습니다. 박 대통령 정권 출범 초기에 낙하산 인사 안 하겠다더니 선거 때 도와준 사람, 신세진 사람, 챙겨줘야 할 사람 다 챙겨주고 있지 않나요.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기업에 낙하산 인사 얼마나 했습니까. 인사가 만사인데 이렇게 사람을 쓰니 부패의 고리가 끊길 턱이 없습니다. 자살률은 가장 높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나라가 된 것은 꼭 돈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 양심이 무너진 사회에서 아무런 희망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하는데,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정상적 국가라면, 비정상을 정상화한다면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지 않습니까. 또 문재인 대표도 대표가 되자마자 ‘전면전을 선포한다’고 했는데 왜 이제야 전면전을 합니까. 세월호 당시엔 왜 못했습니까. 야당의 무능, 무기력, 상황판단 부족에 실망이 큽니다.”

스님이 절보다 농성장에 자주 나오고 불경보다 정치 관련 말을 많이 하는 이유가 뭔지요.
“언젠가 제가 ‘법구경을 읊어야 하는데 욕구경만 읊게 된다’는 말을 했죠. 한국 사회가 불행하면 국민이 불행합니다. 중생의 삶을 외면하는 것은 종교인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혼자 득도하면 뭐합니까. 임진왜란 때 승병이 많이 나선 것은 그들이 전쟁에서 공을 세우려는 야심 때문이 아니라 진심으로 중생들을 걱정해서였습니다. 중이 가족이 있나요, 집이 있나요. 두려울 게 없습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국민 모임’ 공동대표 명진 스님 “아이쿠, 2년밖에 안 지났나요”

스님은 정말 두려운 게 전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는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외도에 고통받다 자살했습니다. 친가와 외가를 전전하며 초등학교만 6곳을 거쳤습니다. 외가에 가면 ‘네 아빠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 원수를 갚아라’고 하고, 친가에 가면 ‘두 어린 아들을 두고 죽은 니 에미가 독한 여자다’란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죽는다는 것이 무얼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왜 살까’ ‘하늘을 끝까지 가다보면 뭐가 나올까’ 등을 고민했습니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에 싸움도 죽기살기로 해서 말썽도 많이 피웠죠. 가정형편이 어려워 사촌형의 권유로 대학입시 준비를 절에서 하다 불계에 들어섰고요. 유일한 피붙이인 동생은 제 권유로 해군에 입대했다가 1974년 해군 예인정이 침몰한 사고로 충무 앞바다에 수장됐습니다. 그 후 죽음을 스승으로 삼아 죽음의 문제를 물어가고 있습니다. 부귀영화를 좇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다 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일 텐데 뭐가 두렵습니까. 주지로 있던 봉은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했고, 정치권에서도 별별 비난을 다 받았지만 무서울 것은 없습니다.”

봉은사에서는 왜 물러났습니까.
“너무 서두르다 개혁에 실패한 조광조 신세가 된 거죠. 중들이 신도들이 낸 돈으로 골프 치고 배불리 먹고 해외 사찰 순례 등 여행을 하면 됩니까. 선거 때마다 돈봉투가 오가고 사찰 관리비로 나랏돈을 받으니 정권에 굽실거리게 됩니다. 전 봉은사에 가자마자 불전통 열쇠는 신도들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고 1000일 동안 하루에 1000배를 드리며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 목사들은 새벽기도부터 하루에 네 번이나 설교를 하는데 스님도 신도들이 준 돈으로 배불리 먹고 염불만 할 수 없어 일요일에 법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면했던 신도들이 제 신심을 알고 모여들기 시작해서 신도가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하루는 어느 중년 남성이 와서 ‘스님, 내 똥배 책임지세요. 스님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 일요일마다 가던 등산을 못해 똥배가 나왔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봉은사를 조계종에서 직접 관리하게 됐죠.”

스님의 화두가 ‘깨달음’이 아니라 ‘아는 것으로부터의 해방, 모름으로 끝없이 향해가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알고 배우기 위해 사는데 모름을 향해 가라니요.
“우리가 뭘 알까요.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죽음 이후의 세상은 어떨지를 누가 압니까. 제가 세상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한 마디 메시지는 ‘마음에서 힘을 빼라’입니다. 마음을 비우라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고정관념,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길들여져 있던 습관을 모두 버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힘을 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압니까. 모릅니다. 그러니 그 알 수 없는 물음으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 보세요. 내가 ‘안다’는 생각이 비워지면 내가 정말 ‘모른다’는 생각만 오롯이 남이 있게 됩니다. 그렇게 모든 앎이 끊어지고 완전히 힘이 빠진 자리에, 그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에서 무한한 지혜와 자유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중들처럼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런 의식주 해결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생활고를 걱정하지 않고 즐겁게 일을 하면서 자신의 지혜를 찾을 수 있도록 정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신당 창당도 그런 이유에서랍니다.”

“내가 전문가다” “내가 잘 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만 보다가 “오직 모를 뿐”이라고 강조하는 명진 스님과의 만남은 신선했다. 너무 유명해져서 불편한 것은 없느냐는 질문에 “피곤해서 대중탕에 갔는데 알몸으로 합장하며 인사할 때 좀 당혹스럽다”고 말하는 유머감각도 유쾌했다. 부디 정치인들이 잘해서 스님의 입에서 더 이상 ‘욕구경’이 안 나오기를….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유인경이 만난 사람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