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용 삼성라이온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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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성질대로 했는데 남들이 리더십이래”

[유인경이 만난 사람]김응용 삼성라이온즈 사장

“사장님이 굉장히 과묵하셔서 인터뷰하시기 힘들 겁니다. 워낙 바쁘신데다 길게 시간
을 드려도 별 말씀이 없으실 테니 30~40분만 하시죠.”

삼성라이온즈의 안현호씨는 김응용사장(63)과 약속을 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야구가 100년사를 쓰고 프로야구 23주년을 맞는 2005년 봄. 한국야구사의 가장 화려한 주인공에다 최근에는 그의 리더십연구서까지 줄지어 나온 김응용사장을 만나고 싶었는데 특유의 어조로 “우~ 할 말도 없고, 우~시간도 없고…”라고 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됐다. 또 엄청난 거구에다 악력이 세기로 소문난 그와 악수하다 손이 으스러지는 게(?) 아닌가 불안했는데 모든 게 기우였다.

점퍼와 야구모자 차림이 아니라 근사한 정장의 김사장은 영화배우 안소니 퀸처럼 푸근한 분위기를 풍겼고 악수를 할 때 어찌나 부드럽게 손을 쥐는지 마치 전혀 다른 사람과 악수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야구에 문외한인 기자의 한심한 질문에도 참을성있게 답했고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김응용의 힘’ 등 최근에 출간된 그의 리더십 관련 책들 이야기부터 꺼냈다.

“다 거짓말(?)만 쓴 거예요. 난 리더십의 ‘리’자도 몰라. 그냥 내 성질대로 한 거지. 옆에서 지켜보고 자기들 생각으로 분석하고 포장을 한 거예요. 읽어보니 어찌나 멋지게 썼던지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기분이더군요. 감독에서 쫓겨나서 백수가 됐는데 사장을 맡으라고 해서 내가 제일 놀랐지.”
지난해 11월에 사장에 취임했으니 5개월이 지났다. 새로운 도전인 ‘사장 생활’은 어떨까. 그의 답은 간단했다.
“좋아요.”

넥타이만 매면 속이 메스꺼워 못 견딘다던 그가 이젠 넥타이에 익숙해졌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좋지 않을까. 승용차도 SM5에서 에쿠스로, 먼지나는 유니폼 대신 정장으로 바뀌었고 또 더우나 추우나 운동장에 있어야 하는 감독이 아니라 최고경영자로 안락한 회전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좋다’는 이유는 그런 유치한 조건들이 아니라 ‘생명’과 관련된 문제였다.

“피말리는 경쟁도 안 하고 시합마다 수백 가지의 작전을 짜며 투수교체 등 수십번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감이 없으니 살 것 같아요. 감독일 때는 시합에 지면 ‘아, 그때 투수를 바꿨어야 하는데’하고 후회하느라고, 또 이긴 날에는 ‘내일은 어떤 작전을 써야 연승할 수 있나’ 고민하느라 잠을 못 자서 매일밤 소주 3, 4병에 맥주 10병을 탄 소주폭탄을 마시고 취해서 억지로 잠이 들었거든요. 술 마시다 보면 안주도 먹게 되니 살은 더 찌고… 술 안 마시고 잠 잘자니 체중도 빠지고 야구생활 50년 만에 처음으로 발 뻗고 잡니다. 항상 감독생활 1년만 더하다가는 내가 죽지, 죽지 하면서도 그동안 죽지 않고 살아온 것도 신기해요.”

요즘은 40이 넘어서도 직장에 다니면 가문의 영광, 50이 넘어서도 일을 하면 조상묘를 잘 써서라는데 환갑 넘어 ‘사장’, 그것도 삼성 라이온즈 사장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는 하늘이 돕는 사람이다.

“힘들기도 해요. 말도 잘 못하는데 생전 안해보던 축사, 답사를 할 곳이 많고, 여기저기 찾아다닐 곳이 많아요. 군부대도 가고 아마 동네 동장들까지 다 만난 것 같아. 오늘도 명함 20장 갖고 나왔는데 다 썼어요. 그래도 그동안 야구와 전혀 관계 없던 이들이 사장을 했는데 야구감독 출신이 사장이 되었으니 차원 다른 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을 감독살이

1941년생인 김응용사장은 평안남도 평원에서 아버지 손잡고 월남해 부산 개성중학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고향은 평양, 성장한 곳은 부산, 전라도 광주에서 오래 감독생활을 해서 퓨전 스타일의 언어를 구사한다. 부산 가면 부산사투리를 쓰는데 이상하게 욕을 할 때는 전라도 사투리가 나온단다.

선수 시절, 하도 공을 날름날름 코끼리 비스켓 받아먹듯 잘 받는다고 ‘코끼리’란 별명을 얻은 그는 실업야구 한일은행에서 홈런왕으로 명성을 날렸고 32세에 한일은행 감독을 맡아 지난해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33년동안 감독생활을 했다. 10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고 프로야구에서만 2004년까지 총 2653 경기에서 1463승이란 대기록을 남겼다. 한국시리즈라는 전쟁터에서 50% 가까운 승률을 올린 것은 대단하다 못해 징그러운 일이다. 다른 감독들의 평균승률이 5%도 안되는데 말이다. 그가 해태 감독 시절 기록한 4연패, 통산 10회 우승기록을 깨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냉혹한 승부사, 자기관리의 달인, 깡패 감독….

그에 대한 수식어는 너무나 많다. 그에 얽힌 일화는 전설 수준이다. 화가 나면 앉아 있던 의자, 불타는 드럼통을 냅다 걷어차고 던질 게 없으면 차고 있던 시계도 던졌단다. 그 단단한 야구방망이도 부러뜨리고 툭하면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를 해서 현장에 있던 이들은 “정말 섬뜩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자신에 대해 제일 잘못 알려진 일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일생 단 한번도 화내본 적이 없는 유순한 사람처럼 답했다.
“뭐 성질 더럽다, 산도적같이 생겼다, 칼바람이 분다 등등 너무 거칠고 무섭게만 알려졌는데 꼭 그렇진 않아요. 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감독으로 선수들이나 주변에 분위기를 잡기 위해 일부러 그럴 때도 있었지만 다 젊을 때 이야기지. 다들 내가 사복을 입으면 ‘부처님’같다고 한다니까.”

야구기자로 김감독을 10년간 만났으면서도 5분 이상 대화를 못해봤다는 이도 수두룩한데 그들은 “선수들 훈련할 때 분명히 딴전을 피는 것 같은데 경기장에선 족집게같이 컨디션 좋은 선수만 집어내고, 곰인가 싶으면 어느새 잔재주를 피우는 여우”라면서 “그를 한마디로 단정짓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고 결론내린다. 겉모양은 장비지만 지략은 제갈공명이고 시침 뚝 떼고 던지는 잔꾀는 조조를 닮았단다. 때론 선수들에게 너무 가혹해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인가 싶으면 뜻밖에 정이 많아 감동의 눈물을 주루룩 흘리게 만든단다. 그러나 다들 입모아 말하는 공통점은 무언과 무표정이다. 왜 그리 말이 없고 항상 무표정이었을까.

“경기중에 말을 많이 하면 생각이나 작전수행에 방해됩니다. 또 야구는 세번에 한번만 쳐도 타율 3할의 훌륭한 선수인데 오늘 잘 했다고 칭찬하고 내일 못했다고 야단치면 되나? 또 경기에 따라 웃고 화내고 울고 찡그리고 웃으면 변태 같지 않겠어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여러 모로 좋습니다. 조용히 있으면 다들 내 기분을 자기들이 알아서 해석하고 알아서 처신하거든.”

그리곤 “이상윤, 김봉연, 김인식, 김준환, 선동열 이종범 등 워낙 우수한 선수들을 만났고 코치 등 훌륭한 스탭들이 도와준 덕분”이라며 자신의 성공비결은 ‘운이 좋아서’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또 그동안 주장·코치·심판을 못해봤는데 주장은 하기 싫어서, 코치는 안 시켜줘서, 심판을 할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김응용 삼성라이온즈 사장

야구생각 잊기 위해 술 먹고 책 읽어

전문가들이 김응용 사장의 리더십이나 경영법을 분석하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그의 성공비결은 ‘집중’과 ‘절제’의 미덕인 듯하다.
그의 모든 세포는 야구에만 반응한다. 앉으나 서나 밥 먹을 때나 화장실에 있을 때도 야구생각뿐이다. 몇년 전 경기까지 복기할 수 있는 기억력이지만 매일 아침 출근할 때는 아파트와 주차장을 몇번씩 왕복한다. 전날 차를 어디 세워두었는지도 모르고 열쇠나 휴대전화를 빠뜨리고 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는 이유도 야구생각에 잠을 못자 잠자기 위해서고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로 알려졌는데 책읽는 시간만이라도 야구를 잊기 위해서란다. 너무 야구생각에 골몰한 탓에 앞차를 들이받거나 자동차가 뒤집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등의 위험한 사고를 겪었지만 정작 본인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아 주위사람들이 놀랐다. “수호신이 있는 모양”이라고 부러워하자 “운동감각이 있으면 어떤 순간에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알아서 다치지 않는다”며 운보다 실력임을 은근히 자랑한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누워서 경기 작전만 구상한다. 부인 최은원씨는 3일쯤 되면 남편 시중에 입술이 부르틀 만큼 피곤해져 “언제 경기장 가냐”고 묻는단다. 극장에 가서도 끝까지 본 영화가 드물다. 야구만큼 재미있지 않아서란다.

“야구는 최강팀과 최하위팀이 붙어도 팽팽한 대결을 벌이고, 어제 10-0으로 졌어도 오늘 승리를 할 수 있고 9회말 경기가 끝나야 결과를 알 수 있잖아요. 어느 선수가 어떤 사인을 받아 공을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정말 드라마틱하게 펼쳐지죠. 부분부분 다시 봐도 재미있고….”

그 어떤 드라마보다 야구가 재미있다지만 감독이 어디 만만한 일인가. 허허벌판의 야전사령관처럼, 거친 바다 한가운데의 선장처럼 우뚝 서서 고독하고 치열한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는가. 또 어느 선수가 유망주고 누가 꾀를 부리는지 등을 파악해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절제력이다.

그가 선수들에게 살갑게 굴지 않은 것, 독하게 야단친 것 등은 모두 훌륭한 선수를 기량을 발휘하게 해 경기에 우승하려는 의도였다. 몇억씩 받고 들어온 70여명의 선수들 가운데 그날 경기에 등판하는 주전 선수는 9명. 그래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원망스런 존재다. 구단주까지 감독을 무시하면 장악력도 사라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굴 편애하거나 선물을 받았다거나 등의 헛소문을 원천봉쇄해야 한다. 그러니 항상 큰소리로 야단치고 무섭게 굴 수밖에 없었다. 생일에도 흔한 축하인사나 선물 하나 못 받는단다.

“야구 잘 하는 게 인사라고 말은 했지만, 나이들어 생각하니 말벗이라도 하나 만들어둘 걸 그랬어….”

그 무섭고 고독한 감독에서 벗어나(?) 이제 사장 자리에 오른 그는 행복해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욕은 먹는다. 70억의 사나이로 불리는 심정수를 비롯, 스타들을 삼성이 거액의 연봉으로 ‘싹쓸이했다’는 비난도 받는다. 그는 특유의 어투로 답했다.
“그거 계산이 잘못된 거라니까. 심정수만 해도 현대에 20억 물어준 거고 본인 연봉으로 치면 몇억 안 된다구. 또 이승엽, 마해영 등이 빠진 건 왜 안치는 거야. 그리구말요. 내가 일본 가서 구단주에게 물었어요. 왜 그렇게 거액을 선수에게 주냐고. 그랬더니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그러더군요. 누구나 야구만 열심히 해 실력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훌륭한 선수도 되고 부자도 된다는 꿈을 준다는 거요. 근데 우리나라는 ‘내 연봉이 얼만데 새파란 선수가 몇억씩 받냐’고 시비를 걸잖아요. 나도 이제 사장으로서 리틀야구팀, 유소년 야구도 활성화시키고, 야구 게임시간도 3시간 이내로 줄여 좀 더 재미있고 팬들에게 사랑받는 야구를 하는 방안을 모색중입니다.”

국내 최초 야구감독 출신의 사장으로 야구선수와 감독들의 희망과 꿈이 된 김응용. 사장을 그만두면 뭘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또 야구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우~ 운동장가서 후배들에게 놀아달라고 해야지. 자장면 사주면서 같이 놀자고 해야지. 그런데 날 끼워줄까? 노인냄새 난다고 피하진 않을까?”
갑자기 그의 옷을 살짝 벗겨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혹시 등에 ‘야구 만세’라고 문신을 새긴 건 아닌지 궁금해져서… .

<글/유인경편집장 alice@kyunghyang.com >
<사진/김석구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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