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저격수가 아니라 꿈꾸는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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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감시는 국회의원 본분이라고 항변하는 ‘신념 사나이’

[유인경이 만난사람]“난 저격수가 아니라 꿈꾸는 로맨티스트”

“내가 혁신위원장이 되니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 ‘박근혜대표가 독(毒)을 삼켰다’ 등 말이 많습니다. 내가 고양이고, 독약이란 말입니까? 비유도 참 졸렬합디다. 박대표가 내게 혁신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혁신위원장은 임기도 따로 없는 비정규직인데 왜 그리 말이 많은지…

이회창 전 총재 때도 그랬지만 항상 주변 사람들이 문제예요. 당을 걱정하고 한나라당이 나아갈 바를 조언해도 시비가 끊이지 않아요. 이총재 시절엔 내가 그들을 ‘내시 그룹’이라고도 비난했지만 여전히 입발린 말만 하는 이가 많아요. 대부분 자기가 혁신 대상인 이들이 그런 것 같습니다만….”

홍준표의원(52)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입을 열자마자 저격수, 공격수다운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이 쏟아진다. 지성과 교양으로 포장을 하고 “아, 전혀 화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분들도 물론 매우 훌륭하죠” 등의 외교적 언사만 늘어놓는 이들보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하는 이들을 보면 참 반갑다. 하지만 항상 남들에게 ‘무차별 폭로’ ‘독설과 저격’을 일삼는 사람으로만 비치면 본인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게다.

“그런 오명을 덮어쓰고도 당과 조직을 위해 일했습니다. 진정한 저격수란 자신이 저격대상으로 총 맞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즉 돈과 여자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깨끗해야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1991년 조직폭력 수사 이후 24시간 미행과 감시를 당하는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털끝만큼이라도 내게서 부정이나 의혹을 발견했다면 날 그냥 뒀겠습니까? 내 아들의 저금통장까지 다 뒤지고도 털끝만큼의 의혹거리를 못찾았으니 아직 무사한 것 아닙니까.

또 무차별 폭로를 일삼는다고 하는데 내가 밝혀낸 것들 중에 사실이 아닌 것이 뭐가 있습니까. DJ 비자금, 나라종금, 연예인 성상납 등 다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양도성 CD 1300억원만 미결로 남아 있는데 그것 역시 진행형입니다. 1300억원이 아니라 1800억입디다. 만약 그게 엉터리라면 왜 날 고소하거나 구속하지 않습니까?”

“난 대통령 ‘깜’이 아니다” 주제파악

혁신위원장을 맡은 포부가 궁금해 찾아갔는데 홍의원은 ‘억울하다’란 말부터 시작했다. 자신이 너무나 부당한 대우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첫째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직무에 충실할 뿐인데 ‘폭로주의자’ ‘저격수’로 오해를 받고 있단다.
“국회의원의 헌법상 직무 중 하나가 권력과 비리를 감시하는 것입니다. 사법부의 사정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국회의원이 나설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DJ 시절에는 검찰총장까지 구속되고 검찰이 비리에 연루되었으니 국회의원으로서 국민 앞에 국민의 세금을 떼어먹는 비리자들을 공개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런 나를 저격수라고 비난하는 것은 난센스지요. 나는 국민들에게 의혹을 제기하고 검찰에 수사하라고 촉구했는데 검찰에서 ‘증거를 갖고 오면 수사하겠다’고 합디다. 증거 갖다 줘야 일하는 검사라면 아무나 할 수 있지요. 송광수 전 검찰총장 시절에 별로 폭로사건이 없었던 것은 검찰이 제 구실을 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검사 출신이라 후배검사들이 도와준다고 생각하지만 저를 믿고 제보를 해오는 이가 많습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사를 해보고 크로스체크를 하고서야 발표하는 겁니다.”

두번째로 억울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다. ‘특공대’로 이미지가 굳어 ‘계엄사령관’ 격인 혁신위원장을 맡아도 여전히 공격수로만 여긴다는 것. 몸을 아끼지 않고 궂은 일을 했는데 포상은커녕 계속 궂은 일만 맡기는 셈이다. 나이도 비슷한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늘 우아하게 이미지를 관리하며 열린우리당의 수장도 경험하고 차기 대권주자 중에서도 수위를 달리는데 정작 그는 이명박 라인 등으로 분류되니 원통할 만도 하다. 17대 의원으로서는 중진인 3선의원에 경륜도 풍부하니 자신의 계보를 거느려도 충분한데 말이다.

“혁신위원장이 되고 나니 ‘박근혜 공격수에서 지원병으로’란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지원병이라니 참… 정치경력으로는 내가 박대표 선배거든요. 또 이명박시장은 대학 선배이고 1999년 워싱턴에 연수갔을 때 손학규지사와 친하게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왜 그쪽 직계입니까. 갖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의혹을 제기하고 구시대 유물인 계파나 조직을 타파하자고 강조했는데….”

그렇다면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나가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는 혁신위원장의 역할을 말하면서 ‘박근혜·이명박·손학규·강재섭 등 4명의 대권주자를 잘 보필하고 능력을 발휘하게 해서 한나라당을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왜 자신은 명단에서 빠졌을까.

“난 대통령 `깜’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란 인물은 본인보다 국민이 파악할 문제이긴 합니다만 난 주제 파악은 확실히 합니다. 아직 공부가 덜 됐어요. 큰 정치를 하려면 경륜, 지식,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갖춰야 하거든요. 3김 이후 카리스마 정치인 시대가 무너지니까 곳곳에서 아무나 나서는데 자신에 대한 절차탁마가 필요합니다. 하긴 뭐 노무현대통령도 내가 보기엔 ‘깜’이 아니라고 생각했어도 대통령이 됩디다만….”

그는 노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래도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그분이 신장 등 건강이 나빠서 임기중에 수술을 권했는데도 거부했답니다. 수술하면 마취를 해야 하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몇시간이라도 유고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답니다. 신장투석도 퇴임하고 나서야 받았지 대통령 시절에는 그것도 안받았답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쌍꺼풀 수술도 하고, 참….”

아내에겐 ‘종교’인 지순한 순정파

전현직 대통령을 오도독 소리가 날 정도로 통렬하게 ‘씹는’데도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어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홍준표의원. 그의 그런 저격수다운 힘은 엄청난 열등감과 끝없는 자신감이 교차해서 만들어낸 것 같다.

그가 최근에 펴낸 ‘눈물과 회환의 50년 인생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나 돌아가고 싶다’란 책을 읽으면 인간 홍준표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에서는 그는 지지리도 가난하던 어린 시절, 결혼생활에 실패한 누이들 이야기, 또 대학 첫미팅에 나가서 30초만에 여대생에게 딱지맞은 일, 부부 생활 등을 놀랄 만큼 솔직하게 담았다. 지난해 가을에서 겨울까지 두달 동안 점심시간마다 고려대 법대 동기생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이어선지 그가 보기와 달리 로맨티스트에 지순한 순정파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빼빼한 몸매(지금은 중년답게 살이 좀 쪘지만 대학시절엔 46㎏이었단다), 장학금 때문에 다닌 3류 중·고교 등 신체와 집안과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하다고 스스로 고백한다.

반면 자신의 사랑과 일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전국의 ‘귀가시계’였던 SBS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이 연기했던 멋진 검사의 모델이 그다. 그는 가족몰살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상부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조직폭력수사에 나서 광주시민들에게 칭송을 들었으며 카지노대부 정덕진, 6공 황태자 박철언, 이건개 전 검찰청장까지 구속했다. 물론 드라마에서 박상원이 보여준 것과는 달리 자신은 피의자를 지독하게 다루는 무서운 검사였다고 자백한다.

사랑에 대한 자신감도 대단하다. 대학시절, 고려대 앞 은행에 근무하던 아내에게 반해 열애끝에 결혼한 그는 아내가 자신을 ‘종교처럼 믿고 따른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 자신이 결혼 전 약속-예를 들어 다른 여자에게 딴눈 안 팔겠다 등등-을 지켰기 때문이란다. 맹세코 결혼 후 여자문제가 없었으며 불가피하게 룸살롱 등을 가도 30분만 앉아 있다 나온단다. 부인을 만나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우리 마누라에겐 내가 종교”라고 믿게 했다면 정말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인 것 같다. 아들로 하여금 담배를 끊게 하려고 3년 전부터 금연을 한 아버지 홍준표의원은 담배는 끊었지만 30분 간격으로 금연껌을 씹어대며 가족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촌놈이 검사가 되어 원도 한도 없이 일했고 3선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검찰총장은 못 해봤지만 국민들이 검찰총장 이름은 잘 몰라도 홍준표는 다 기억하지 않습니까. 그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난 더 나빠질 것, 버릴 것이 없어서 겁날 것도 없습니다.”

[유인경이 만난사람]“난 저격수가 아니라 꿈꾸는 로맨티스트”

늘 당당함 잃지 않는 비주류

다들 조국과 국민을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는데 그는 생계와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 1995년, 검찰고위간부 비리를 밝혀 검찰조직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다는 욕을 먹은 그는 검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신나게 놀았다. 퇴직금이 5900만원이었는데 제주도 등을 놀러 다녔더니 한달 생활비가 400만원이 넘게 들어 깜짝 놀라서 40일 후에 후배사무실을 비집고 들어가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러나 전관예우는커녕 검찰과 사이가 나쁘다는 게 알려져 사건 의뢰도 제대로 안 들어와 생계도 걱정되고, 과거 수사했던 조폭들이 가족납치와 살해 등의 위협을 해와 힘있는 국회의원이 되려고 시작한 정치란다.

정치인이 된 후에도 그는 ‘검사스럽게’ 몸에 익힌 법과 신념에 따라 다른 정치인들을 추궁하고 비리를 폭로해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때론 ‘폭로전문가’로 엇갈린 평가를 받지만 그의 열정과 신념만은 인정해준다. 그래서 항상 비주류로 분류되면서도 당당했다. 검찰, 정당 등 항상 속한 조직과 불화를 겪기도 하지만 그는 17대 선거에서 ‘정의에 대한 열정, 조직에 대한 열정을 넘어 이제는 국가를 위한 열정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의 진정한 생계, 즉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일들을 떠맡은 혁신위원장이 되었으니 기대가 크다. 검사 시절, 물불 안 가리고 철저하게 조사하던 저력에다 돈이나 명예에 연연치 않는 성격의 그라면, 또 당대표건 대통령이건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총을 들이대는 그라면 ‘당을 완전히 뜯어 고치고 새롭게 칠을 하는’ 혁신위원장 역을 맡을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당헌, 당규 개정을 포함한 포괄적 혁신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수구, 특권, 무능, 부패의 4가지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 강한 야당을 만들어야지요. 지금까지 당의 이미지를 손상시킨 것은 온정주의 때문인데 부패한 당원에 대해선 출당 등의 조치도 취할 것이고 ‘수구 꼴통’이라는 이미지를 벗으려면 대북정책 등에서도 남북화해 구도를 지향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야 합니다. 혁신(革新)이 ‘가죽을 벗긴다’는 뜻이니 가죽을 벗기다보면 피도 날 거고 저항도 만만치 않겠지만 지금 변신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에 미래는 없습니다.”

‘가죽을 벗겨낼’ 각오를 다지면서도 정작 그는 사람들에게 저격수가 아니라 꿈꾸는 로맨티스트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1972년 2월 24일 새벽, ‘껌정 고무신’ 차림에 아버지가 주신 1만4000원을 들고 새벽에 서울역에 내렸던 46㎏의 스무살 청년 홍준표는 이제 제일 유명하고 무서운(?) 정치인이 됐다. 그는 “이만큼 출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앞으로도 두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로 남고 싶다”면서 ‘언제라도 고향 밤마리강변으로 돌아가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런데 저격수, 공격수가 떠난 정치판은 얼마나 재미없고 심심할까. 괜히 그를 오래 붙들어두고 싶다. 아직도 총맞을 정치인이 많지 않은가.

<글/유인경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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