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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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화합시대적 소명 자부”

쓴소리 마다않는 준비된 군기반장으로 ‘공격형 정치’ 진두지휘

[유인경이 만난 사람]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

단식도 릴레이하듯 교대해서 하고, 뜻이 안 맞는다고 사표를 던지고, 동료가 아니라 적처럼 서로 헐뜯는 이들이 모인 곳. 난장판, 폭발 직전의 지뢰밭 등으로 폄훼되는 한나라당. 험난한 가시밭이라고 남들이 더 걱정하는데 강재섭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예전부터 꿈꾸던 ‘대표’란 자리를 차지해 감격스러운 걸까. 아니면 특별한 처방전이라도 있는 걸까.

“제가 원내대표가 되고 겨우 며칠밖에 안 지났지만 한나라당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신문에도 났죠? 독도 문제만 해도 우리 한나라당이 먼저 이니셔티브를 쥐고 특별법안 등을 제안했고 당 지도부들이 곧 독도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재오의원 등 수도지키기투쟁위원회(이하 수투위) 의원들과도 계속 대화를 할 겁니다. 당 내분은 곧 수그러들 겁니다.”

일부에선 박근혜대표와 함께 대구 출신인 그가 한나라당을 TK지역 정당으로 한정해 그의 대표 선출이 한나라당에 오히려 마이너스란 지적도 있다. 5선 의원이란 경륜에 이력은 화려하지만 카리스마가 약한 그가 ‘봉숭아 학당’이란 비아냥까지 듣는 한나라당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을까란 우려도 있다.

“이제 막 무대에 올라 아직 실력 발휘를 못했습니다. 연기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는 지켜 보셔야죠. 제가 만 40세에 국회의원을 시작해서 그동안 항상 ‘차세대 주자’ ‘꿈나무’로만 불렸어요. 전에 최병렬 선배 등과 당대표로 나설 때는 너무 젊다고 인큐베이터에 있다 나오라고 하더니 17대 총선 이후엔 완전히 세대교체가 되어 겨우 50대 중반인 저를 고물로 취급하는 겁니다. 주변에선 얼마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으냐며 체면 구기지 말라고 만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해 대표 경선에 나섰습니다.

지금 당이 워낙 어렵잖습니까. 지리멸렬한 당에 돌파구를 찾아 줘야죠. 흙탕물 뒤집어 쓸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화합과 경륜과 젊은 감각이 필요한데 제가 그런 시대적 소명을 받았다고 자부합니다.”

하루 한두갑씩 피우던 담배까지 끊으며 원내대표 활동에 의욕을 보이는 그. 마치 선배들이 주역을 맡아 연기하는 무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저 대사는 이렇게 처리해야 하는데…’ ‘나라면 손동작을 더 크게 할텐데’라고 연구분석하다가 드디어 주인공을 맡게 된 ‘준비된 주역’처럼 뭔가 보여주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다.

모나지 않는 친화력의 소유자

그의 이력서는 화려하다. 학창 시절 수석 입학과 수석 졸업을 놓친 적이 없고 총선에 출마해서도 낙선의 쓰라람을 단 한번도 맛보지 않고 5선이라는 관록을 자랑한다. 경북고를 거쳐 서울 법대 재학중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32세란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전두환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갔으며 한나라당 대변인, 총재 비서실장,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 최연소 국회법사위원장,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800년대에 태어나 2001년에 102세의 연세로 돌아가셔서 3세기를 사신 할머니는 장수 유전자를 주셨고 교장이시던 아버지는 서울서 대학다니는 아들을 찾아와 “여자들 나오는 곳은 가봤나”고 물을 만큼 개방적이셨단다. 심지어 강대표의 외아들은 선천적인 척추분리증으로 군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아버지에게 누가 되기 싫다며 해군, 육군 등에 자원해도 거절당하자 결국 단기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효자다.

당 전체가 차떼기당으로 오명을 쓸 때도 그는 돈과 관련해 한차례도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일 때 이해관계가 있는 대기업에서 후원금을 갖고 그를 찾아왔으나 돌려보냈다는 아름다운(?) 소문만 들린다. 부인 역시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흔적이 아직은 없다. 마음껏 잘난 척하고 독선적이어야 어울릴 것 같은데 그를 잘 아는 이들은 그의 친화력을 가장 큰 덕목으로 꼽는다. 정당에서 30여명의 대변인을 모셨다는 여직원이 퇴임하면서 그를 “어려울 때 가장 힘이 되어주신 분”으로 칭송하는 것을 보면 인간미도 있나보다.

동석했던 황희성 특보단장은 “강대표는 골프, 볼링, 당구, 포커, 고스톱에 노래까지 못하는 게 없다”고 전한다. 그러다 너무 노는 이미지로 보일까 걱정이 됐는지 “하지만 일에는 정말 철저한 완벽주의자여서 주말도 없이 일하고 또 아침에 시킨 일을 저녁에 꼭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이쯤 되면 부러운 게 아니라 은근히 심술이 난다. 그래서 살짝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유능한 분인데 왜 강재섭대표를 생각하면 아, 하고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을까요. 또 성격 좋다는 평은 듣지만 정치, 특히 원내대표가 어디 좋은 성격으로 하는 건가요? 카리스마가 없다고도 하고 자기 포장술이나 마케팅에 게으르다는 평이더군요. 또 결정적인 순간에 뒷심이 무르다는 소리도 있던데요. 또 곳곳에서 차기 대권주자 리서치를 해도 상위권에는 못 들어가잖아요.”

성격 좋은 그는 이런 시비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조사야 실력이나 정치력보다는 대중들의 인지도 조사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상위권에 오른 이들은 시장, 도지사, 당대표, 장관 등 직책을 맡아 항상 이슈가 있어서 매스컴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기 때문이죠. 저도 원내대표가 되니 기자들도 찾아오고 인사하러 오는 이도 많습니다. 그런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큰 목소리로 제 존재를 알리는 성격은 아닙니다. 억지로 길을 내 제게로 끌어당기지도 않고요. 향기좋은 나무는 저절로 길을 만든다는 말을 믿습니다. 톡 쏘는 겨자나 유해색소 뿌린 음식이 아니라 등푸른 생선처럼 항상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또 공기나 물 등은 평소엔 의식을 못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진가를 발휘하지요. 그동안은 선배들에게 희생도 하고 양보도 하면서 지냈는데 이제 그 미덕이 ‘먹히고’ 있습니다. 선배들도 저를 편안해하고 후배들 역시 제가 보수 꼴통은 아니니까 대화를 나눕니다.

저의 경력이나 다양한 취미활동이 정치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정치란 종합예술이고 퓨전음식 같아서 한가지 색깔만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분야거든요. 일단은 한나라당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고 희생할 생각입니다. 당이 어려울 때 구원투수가 되어야죠.”

[유인경이 만난 사람]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나라당 살 길은 ‘트로트 개혁’

확실히 달라졌다. 점잖게 미소만 짓던 그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기다려왔다는 듯 왕성한 활동으로 주위를 놀라게 한다. 담배도 딱 끊고 저녁형 인간이어서 아침 일찍은 통 못 일어나는데 조찬모임, 회의 등에 참여하느라 하루 2, 3시간밖에 못 잔단다.

또 우유부단한 화합형에서도 탈피했다. 당직자 회의 때마다 쓴소리를 해서 ‘군기 반장’같다는 평을 듣는다. “아무 생각 없이 회의에 오지 말고 신문, 뉴스, 인터넷을 꼭 보고 이슈를 챙겨오라”고 하거나 “정책의장과 정조위원장은 회의에 들어와 각자 딴 이야기하지 말고 사전에 조율하라”고 주문했다. 경선에서 2차까지 가리라던 걱정과 달리 1차에서 가뿐하고 깨끗하게 당선된 자신감 덕분인 듯하다.

“큰일을 맡으면 운동선수들은 머리를 깎는다는데 그럴 수 없어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각오를 다지는 건데 담배는 이렇게 정신없이 바쁠 때 끊는 게 좋습니다. 솔직히 담배 피고 싶어 미칠 지경이긴 합니다만….

저 혼자의 각오와 다짐으로야 됩니까. 당원들에게도 봉숭아 학당이란 욕 그만 듣고 염창동 제철소, 여의도 용광로로 만들어 생산적인 정당을 만들자고 강조합니다. 무조건 헌법재판소와 시민단체에 나랏일을 맡기지 말고 이슈를 선점해서 철저히 공격형 정치를 하자고 했지요. 그것만이 한나라당이 살 길입니다.

또 한나라당이 트로트가수 장윤정을 닮아야 한다고 했더니 언론에 많이 소개되었더군요. 억지로 힙합을 부르려 하지 말고 트로트라도 젊고 신선한 스타일로 부르자는 겁니다. 트로트라고 해서 고복수씨처럼 구성진 옛스타일을 고집할 필요 없지요. 트로트도 개혁을 하는데 당연히 정치도 달라져야죠.”

사실 개혁이나 환골탈태는 듣기나 멋있지 개혁은 가죽을 바꾸는 것, 환골탈태는 뼈를 새로 짜맞추는 것인데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픔이 따르는 일인가. 게다가 한나라당은 자신이 어떤 병에 결려 있는지, 주변에선 얼마나 걱정하는지도 모르는 듯하니 말이다.

여당과의 상생이나 투쟁에 앞서 일단 당 안의 문제들도 가득하지 않은가. 목소리 큰 수투위 멤버들도 다독거려야 하고 박근혜 대표와 뜻 안맞아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이들도 설득해야 하고, 단식하는 의원에겐 밥먹으라고 해야 하고 3대 입법 처리안도 조율해야 한다. 무엇보다 4월 재보궐 선거의 결과에 따라 강대표는 비난을 한몸에 받을 수도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제철소와 용광로가 되자고 강조하고 그에게 한나라당의 불을 끄는 소방수가 되라고 하지만 정작 그 뜨거운 불에 그가 먼저 탈 수도 있다.

“다들 걱정 많이 하시는데 자신있습니다. 학습 능력, 인간관계의 친화력, 설득력 등이 리더의 자질이라는데 전 그런 점은 다 갖췄거든요. 아, 제가 평소에 제 자랑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요즘은 PR시대고 인터뷰 시간이 짧아 솔직하게 다 말씀드리는 겁니다.
경력이나 연령, 성격이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기 쉬운 편은 아니지만 요즘은 소규모 연구모임이 많아 오히려 편안하게 만나 이야기하기 좋습니다. 지도부가 충분히 의원들과 의사소통을 하면 건전한 정책정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예전의 야당은 시궁창이 더럽다고 비난만 했지만 이젠 그 시궁창을 직접 치우고 깨끗하게 정화할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지요.”

그의 화려한 이력서나 다부진 각오보다 그의 인간적 매력에서 더 그에게 희망을 엿본다. 그의 좌우명은 ‘바다는 강물을 골라 받지 않는다’이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초등학교 때 은사인 김용대선생님이란다. 정치인은 ‘이순신과 김구선생만 존경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진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을 존경한다니 신선하다. 강대표는 또 ‘쉬운’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말은 기막히게 뛰어난 언어예요. 가장 중요하고 원초적인 것은 모두 간단히 한 글자로 시작합니다. 눈 코 입 귀 뺨 목 뼈 등 신체부위부터 쌀 논 밭 소 말 닭 개 물 땅 해 별 빛 등이 그렇죠. 그러다 슬슬 사기술이 끼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눈치 코치 이빨 몸짓 발길질 등으로 단어가 복잡해집니다. 제가 추구하는 정치는 시시한 일에는 ‘입’ 다물고 ‘물’처럼 흐르면서 ‘별’처럼 꿈많은 그런 정치입니다. 백성들이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고 ‘돈’ 잘 벌어 ‘술’도 먹을 수 있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말이 어려워 정치가 복잡했나. 정치인들의 잔머리와 때가 낀 마음들이 정치를 더럽고 답답하게 만들었지… . 제발 그가 말도, 마음도 쉽고 재미있는 정치를 해주기를 기대한다.

[글/유인경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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