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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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우리의 선생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겐 '선생님'이란 호칭이 어울린다. '김대중 선생님'은 대통령이란 지위나 노벨평화상이란 영광보다 더 커다란 우리의 존경과 사랑, 또 눈물과 한숨을 담은 존재이다. '인동초' '불사조' '대통령병 환자' 등 갈채와 비난을 모두 받은 그이지만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스승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마음도 크기 때문이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와 함께 나타난 김 대통령은 청와대 시절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연하게 화장을 해서인지 혈색도 좋아 보였고 즐겨 매는 빨간 넥타이가 여전히 잘 어울렸다. 정치의 달인답게 그는 "경향신문의 애독자이며 뉴스메이커도 참 재미있게 잘 만들더라"란 칭찬과 덕담으로 시작했다. 그리곤 그의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는 수첩을 살짝 펼쳤다. 인터뷰 요청과 질문지를 받고 준비했다는 답변요지를 깨알같이 적었고 그 옆에 메모지까지 붙여져 있다. 애장품 1호 역시 수첩들이라는데 요즘도 과거 대통령 시절의 메모를 보며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단다.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강의' 같았다. 단 한마디도 머뭇거림 없고 수치와 인명 등 인용구도 풍부하고 군더더기도 없다. 한 정치부 기자의 말이 기억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말이 곧 글이어서 그대로 받아 적으면 기사가 된단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느 전문가를 만나도 본인이 더 말을 많이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무슨 말을 물어도 "좋은 질문입니다. 신중히 생각해서 다음에 답하겠습니다"라며 넘어가거나 핵심을 비켜나 기사쓰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토록 기자들에게 인터뷰하기 편한 김 전 대통령이 정작 언론에는 '무섭고 어렵고 힘든' 모습으로 보여졌을까.

국민 손잡고 반박자만 앞서라

그가 대중들에게 제일 처음 각인된 것은 1970년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등장했을 때다. '40대기수론'을 내세우며 이젠 트레이드 마크가 된 한손을 세워 또랑또랑 연설하는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후로는 정말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테러, 일본 동경에서의 납치, 수감생활, 가택연금 상태와 망명, 사형선고... 당연히 억울함과 부당함을 토로하거나 선거 유세에 나와 커다란 목소리로 선동하는 듯한 모습만 비쳐졌다. 딱딱하고 무섭게 보였다. 어떤 이들은 "빨갱이래요"라고 수군거리기도 했고 "대통령이 되면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그의 이미지는 매우 부드러워졌다. 웃는 모습이 자주 소개되었고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은연중 남아 있던 독기나 원한도 사라진 듯했다. 그가 주장하는 햇볕정책처럼 따스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절대 홍보용 이미지가 아님을 알게 된 것은 당선 직후 청와대에 초대받았을 때였다. 각 신문사들의 여기자들을 모아 여성정책을 알리는 자리였는데 영부인이 된 이희호 여사가 너무 세련되고 예뻐지셔서 '미모의 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김 전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아 "참말로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이 여사는 대통령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 보며 아침식사로 애용하는 인절미를 비롯, 굉장히 대식가라고 소개했다. 독서광이라 책만 볼줄 알았는데 코미디 프로그램도 보는 대통령이라면, 웃을 준비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우리 국민들도 즐겁게 해줄 것 같았다.

감옥에서나 망명지에서 항상 대통령 준비를 해왔다는 그는 일흔네 살에야 꿈을 이뤘지만 정작 부도난 국가를 떠맡게 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IMF 외환위기라는 폭탄을 맞아 쉴 여유도 없이 당선 다음날부터 실질적 대통령 역할을 하며 나라경제를 챙겼다. 또 햇볕정책을 펼쳐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켰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이제 미국에선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고 대선에서도 한반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에선 은근히 김 전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고, 북한에서도 그의 방북을 바란다고 한다. 퇴임 후 이렇게 '요긴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북한인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은 정치-사회적 인권이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하는 원초적 인권이 더 중요합니다. 탈북자들도 북한 독재에 대한 반대보다 식량을 구하러 나오는 겁니다. 그런 원초적 인권을 제일 도와주고 있는 게 한국이죠.

북핵 문제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데 내가 볼 때 북한은 핵은 수단이고 목적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입니다. 북한이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있나요? 또 북한에 핵이 있다한들 미국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죠. 북한의 목적은 사는 겁니다. 살기 위해서 나 죽이면 너 죽이고 나 죽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김정일을 만났을 때도 '당신들이 핵이라든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말이 있는데 절대 안 된다. 미국 감정 조장하고 남한도 절대지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죠. 부시를 만나서도 말했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는데 한국 사람치고 공산주의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전 사회가 감옥 같은 나라를 누가 좋아하느냐. 그러나 우린 같은 민족이고 통일할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화해야 한다. 대화라는 것은 맞는 사람끼리만 하는 게 아니다. 서로 안 맞는 사람, 심지어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끼리도 해야 한다. 레이건 전 대통령도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도 햇지만 소련과 대화했다. 이런 말을 했죠."

[유인경이 만난 사람]김대중 전 대통령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경제지도자, 재벌총수를 만나 '세상에서 제일 좋고 가장 싼 물건을 만들어 팔아 무한경쟁시대에 이겨서 돈벌고 세금 많이 내라, 그게 애국자다. 국내에선 외국 투자가와 하고 해외에선 외국 시장과 경쟁해 이겨라'고 주문했어요. 노벨상을 받은 시카고 대학 루카스 교수가 말하기를 경제의 요체는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잘 된다는 기대와 기다림을 기업, 국민, 노동자에게 줘야 기업은 투자하고 국민은 물건을 사고 노동자는 신나게 일을 하게 되죠. 또 경제만이 아니라 모든 정책은 국민의 손을 잡고 반 발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국민과 같이 나란히 서도 발전이 안 되고 손놓고 한두 발 먼저 가면 국민과 유리됩니다. 옳은 일인데 국민이 안 따라오면 기다리고 설득해야 해요."         

이제 평화운동을 한다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주 눈물을 보인다.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져 그렇겠지만 정몽헌 현대 회장의 자살소식에도 눈물을 비쳤고 아끼던 박지원씨의 병상을 찾아가서도 눈물을 흘렸다. 또 지난 6월 15일에 국민의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했던 언론인들이 200송이의 빨간색 장미를 바탕으로 DJ와 6-15란 글자를 수놓아 보냈을 때는 흡족해서 눈시울을 붉혔단다. 그렇게 감성적인 면이 많으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세상을 정확히 읽는 눈과 '절제의 미학'을 실천했기에 '퇴임 후가 평화스러운'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지난 4월 총선이 끝났을 때 '김대중을 3김으로 묶지 말라'는 경향신문 김택근 부국장의 칼럼은 DJ의 자리를 확실히 알려줬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이겼다. 현실은 노무현-정동영-박근혜-권영길 같은 사람을 승자의 반열에 올려놓겠지만 역사는 DJ를 진정한 승자로 기록할지 모른다. 그는 이겼다. 어쩌면 그의 생에세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뒀는지 모른다. 자신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는 약속대로 정치판에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DJ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현장을 좇아다니는 아들에게 연민의 감정이 왜 없겠는가. 추미애 의원의 삼보일배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는 선동하지 않았다. 그는 참았다. DJ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던 지지자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비로소 선거판에서 DJ가 사라졌다. 그렇게 지지자들에게 지워짐으로써 인간 김대중으로 돌아왔다. 그도 자유를 얻었다....

자유인인 김 전 대통령은 이제 평화운동에 앞장설 예정이다. 김대중 도서관에서 '노벨 평화상 현장 학습 프로그램(Peace Education Program)'을 마련해 학생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에게도 왜 평화가 중요하며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지 교육한다. 방문자들은 중앙현관에 있는 노벨상 메달의 홀로그램을 보며 직접 만지는 듯한 체험도 하고, 도서관에 비치된 각종 자료를 보며 DJ의 발자취와 철학도 알 수 있다. 도서관에는 전문서적만이 아니라 소장했던 각종 책들을 볼 수 있다. 최인호씨의 [별들의 고향] 같은 소설책도 있고 감옥에서 보냈다는 편지는 어찌나 글씨가 자잘한지 돋보기가 비치되어 있다.

1주일에 세번 신장투석을 하고, 얼마 전 심혈관 수술을 받았지만 '평화운동' 등 할 일이 많고 그를 찾는 세계인들이 많다는 기쁨에서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심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이제 퇴임 후가 행복한 대통령, 국민에게 부담이 아닌 자산이 되는 대통령을 갖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지난 역사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전직 대통령이 봉사하고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조언할 수 있도록 해주자.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자존심일지도 모른다.

글 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 권호욱 기자 bigg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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