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다정한 노조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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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생산직과 사무직 간 대화

김철수(생산직 노조원·40대·15년차): 대리님, 요즘 사무직 노동조합 교섭단위 분리 때문에 회사에서 얘기가 많던데, 사무직 노조에서는 어떤 얘기가 나와요?

이수진(사무직 노조원·30대·7년차): 네, 선배님. 우리 사무직은 생산직과의 차별이 너무 심하다고 봐요. 특히 생산직에는 없고 사무직만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사무직만 정년 퇴직일이 최대 11개월 더 빠른 문제, 사무직에는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는 문제에서 특히 불만이 많았어요.

김철수: 사무직과 생산직 간 차별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줄은 몰랐네요. 사무직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이수진: 물론 생산직 선배님들도 힘들지만, 나름의 고충이 있어요. 예를 들어, 사무직은 연봉제이고 성과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다 보니 항상 성과 압박을 받아요. 그리고 가족수당, 별도 연장근로수당, 각종 수당도 없고요. 이게 다 사무직은 생산직 단체협약 적용을 받지 못한 결과죠. 여기 보면 직군 간 차이가 명확해요.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 (34) 다정한 노조가 살아남는다

김철수: 그렇군요. 우리 생산직은 호봉제라서 해마다 임금이 올라가고, 연장근로수당도 받는데, 차이가 있네요.

이수진: 네. 맞아요. 생산직 노조가 우리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생산직 노조와 별도로 독자적인 교섭권을 얻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법원에서 인정해 줬어요.

김철수: 대기업에서 최초로 사무직노동조합 교섭단위 분리가 인정된 사건이라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뭐였나요?

이수진: 네. ①위와 같이 현저한 근로조건 차이가 인정됐고 ②고용 형태 차이는 ‘직군 간 인사교류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점’으로 인정됐어요. ③교섭 관행은 이제 신설된 노조라 아직 관행이 없더라도 법원이 이해해 줬고요. 마지막으로 ④생산직 노조(교섭 대표노조)에서 교섭단위 분리를 찬성한 게 결정적이었다 해요. 그 점에서 생산직 노조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김철수: 사무직군에서 평소에 생산직 노조와 우호적으로 지냈기 때문이겠네요. 분리되고 나서 회사 분위기는 좀 바뀌었나요?

이수진: 네.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사무직의 목소리가 회사정책에 잘 반영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우리 의견도 많이 듣고 있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독자적인 단체협약도 체결했어요. 불만이 컸던 임금피크제, 격려금, 연차수당이 개선됐어요. 사무직과 생산직 그리고 회사가 서로 협력하면 더 발전적인 회사를 만들 것 같아요.

■다정한 회사가 살아남는다

어느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민주노총 노조 탈퇴를 압박했습니다. “점포 차릴 때 민주노총 출신이면 못 차린다”, “민노총이라서 실적 좋아도 승진에 배제된다”, “지원기사(상위 직급) 할 생각 없냐?”라면서. 승진에서 차별하겠다는 협박은 실제로 실행됐습니다. 956명의 승진자 중 민주노총 조합원은 21명(2.2%)으로 승진대상자 대비 6%, 한국노총 조합원은 814명(85.1%)으로 승진대상자 대비 30%였습니다. 민주노총을 탈퇴한 조합원 중에서는 72명이 승진했습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위 같은 현상에 대해 “노조에 대한 회사의 비우호적인 시각이 반영된 승진 차별이자 불이익 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윗선’, 회장과 대표이사는 구속기소 됐습니다.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2024년 현재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주간경향 1573호 ‘노조 파괴 몸통은 회장님?’).

일전에 다른 회사에서도 노조 탈퇴를 지시하면서 회사가 ‘밀고 있는’ 다른 노조에 가입하게 했습니다. ①회사에 의해 노조가 조직·운영되거나 ②노조설립부터 노조와 회사가 적극적 공모·합의가 이뤄진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대법원은 “설령 설립신고가 행정관청에 의하여 형식상 수리되었더라도”, “이러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법상 설립이 무효로서 노동 3권을 향유할 수 있는 주체인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2017다51610). 회사가 주도한 ‘어용노조’는 설립 자체를 무효로 본 것입니다. 외부 업체로부터 ‘노조파괴’ 컨설팅을 받은 회장은 결국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앞에서 본 교섭단위 분리 사례처럼 정해진 법질서 내에서 노·노 간, 노·사 간 화합하는 ‘다정한 노동조합’은 존재 목적대로 근로조건을 발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설령 회사에 비우호적이더라도 경우에 따라 비난받을 뿐입니다. 조합 활동과 쟁의행위는 원칙적으로 적법합니다. 대법원도 “노동 3권은 법률의 제정이라는 국가의 개입을 통하여 비로소 실현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법률이 없더라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20. 9. 3. 선고 2016두32992 전원합의체 판결).

그런데 노조에 적대적인 회사는 여론 문제를 넘어 형사처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노동조합법 제81조는 “사용자는 부당노동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부당노동행위 주체는 오로지 ‘사용자’입니다. 법은 특히 사용자에게 노·사 간 다정함을 강요(?)합니다. 그 다정함의 척도에 따라 노조는 더 발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을 뿐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노조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형평성·포용성을 포기한다면, 그야말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현행법은 그렇습니다.

※첫 단락의 대화는 필자가 담당했던 금호타이어 사무직노동조합 교섭단위 분리사건(위원장 김한엽, 서울행정법원 2023구합51304: 확정됨)을 모티브로 했습니다. 위 노조는 설립된 지 3년여 만인 2024년 4월 생산직 노조와 별도의 단협을 회사와 체결했습니다.

<한용현 법무법인 해내 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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