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직장 괴롭힘 증거, 녹음이 능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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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기. 픽사베이

녹음기. 픽사베이

인사팀에서 녹음하라고 했는데요?

신고인(A): 작년부터 F와 G 두 동료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요.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인사팀 차장(H):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었나요?

A: 무시하거나,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업무상의 실수를 과도하게 지적하는 등의 행동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이 저를 스트레스받게 하고 업무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있어요.

H: 혹시 이러한 상황을 녹음하거나 증거로 남길 수 있는 자료가 있나요?

A: 아니요.

H: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에서는 녹음이 근로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녹음하세요.

A: 네. 감사합니다.

A는 실제로 인사팀의 조언에 따라 휴대전화로 G와 F의 통화를 녹음했습니다. 여기까지는 A도 대화 당사자이니 법의 보호 범위 내에 있습니다. 그런데 A는 본인이 없을 때 이야기가 더 궁금했습니다. 회사 내 자신의 컴퓨터에 마이크를 연결해 6회에 걸쳐 매회 2~3시간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근무자들의 모든 대화를 녹음했습니다. 다시 말해, 타인 간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그런데 딱 걸렸습니다. F는 며칠 전부터 A의 컴퓨터 본체에 마이크가 달린 이어폰이 설치된 것을 보았습니다. F와 G는 지체없이 이를 인사팀에게 알렸습니다. A는 인사팀의 방침에 따라 녹음행위를 시인하는 진술서를 작성했습니다.

A에 대한 인사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A에 대해 ‘정직 3개월’ 징계처분이 내려졌습니다. A는 부당한 징계라고 다투었습니다.

노동위원회(지노위·중노위)는 정당한 징계라고 보았습니다. 법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①징계 사유를 인정했습니다. “녹음행위는 직장 동료 간 불신을 초래하고 불안을 유발하며,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서, 상벌규정 ‘직장규율 및 질서문란’, ‘형사사건 위반’에 해당하고, 이 사건 징계처분의 징계사유는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②징계양정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인사팀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녹음하라고 했는데요?”였습니다. “안내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대화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녹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불법적으로 하는 녹음까지 안내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설령 다소 모호하게 안내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녹음이 불법이라는 점은 공지의 사실”로서 그러한 안내가 있었다 하여 원고의 이 사건 녹음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대전지방법원 2023. 6. 8. 선고 2022구합103163 판결: 확정).

남의 대화를 엿들은 중죄

P는 회사에서 실장으로 근무한 사람입니다. P도 언제부턴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마치 평범한 USB 저장장치인 것처럼 위장한 휴대용 녹음기기를 사무실에 설치해 동료 직원들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P는 사무실 내 컴퓨터 본체 위 달력 뒤에 몰래 놓아둔 위 USB 녹음기를 이용해 동료 직원들 사이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습니다. 이로써 P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동료들은 역시 발끈했습니다. 여기서는 A의 사례처럼 회사 내부 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경찰에 P를 형사고소했습니다. P는 기소됐고, 형사법원은 P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P는 오로지 직장 내 괴롭힘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녹음기기를 구매·설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P는 피해자들의 직장 상사(직장 내 괴롭힘은 상급자가 하는 것인데 피해자가 오히려 하급자라는 의미)다. 더구나 P는 경찰 조사에서 대화 녹음 경위와 관련해 ‘직원들이 자신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러한 P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 내용 및 피해자들의 경찰 진술에 의하면, P가 자신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만을 위해 피해자들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꼼꼼한 판결입니다)

그리고 양형에서 “P는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 다만 피해자들을 위해 각 100만원을 공탁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P에게 실형을 선고하지는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인데, 초범에 실형을 고려할 만큼 큰 범죄입니다.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창원지법).

이렇게 대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①공개되지 않은 ②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면 불법녹음으로 생각보다 크게 형사처벌 되거나, 손해배상 당하거나, 중징계받을 수 있습니다. 인사팀에서 “녹음하라”라고 했더라도 불법녹음이라는 결론입니다. 인사팀 입장에서도 모호하게 “녹음하라”라는 조언은 위험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vs 대화의 비밀

대법원은 최근에 ‘공개되지 않은’(비공개) 대화의 범위를 더 넓혔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는 비밀 녹음은 처벌 가능성이 커지고, 그 녹음의 증거능력도 없어졌습니다. 초등학교 학부모가 30명이 참여한 수업에서 발언을 몰래 녹음한 경우도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봤습니다.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면 대화자 내지 청취자가 다수였다는 사정만으로 ‘공개된 대화’가 아니라고 봤습니다(대법원 2024. 1. 11. 선고 2020도1538 판결). 그래서 타인 간 비밀녹음의 증거로서 능력이 없다고 봤고, 해당 담임교사는 무죄판결이 예상됩니다.

그래도 드물지만 예외적으로 타인 간 비밀녹음의 증거능력이 인정된 사례도 있습니다. 최근 유명 웹툰작가가 학부모로서 피해자 측이, 특수교사가 피고인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원지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특수교사-학생)의 대화를 부모가 아들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녹음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정당성·상당성·긴급성·보충성이 인정된다면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이 사건은 장애아동의 부모와 특수교사라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데, 녹음 외에는 아동 학대 정황을 밝혀낼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이례적인 판결이고, 항소심 진행 중입니다).

녹음행위가 장기간에 걸쳐 무작위로 이루어지면 함께 근무하며 유기적 협력이 요구되는 직장동료 간 불신을 초래하고 상시 불안을 갖게 하며, 일상에서 자기 검열에 이르게 하여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밉더라도 반드시 동료와 이웃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해야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녹음은 ①“대중에게 공개된 대화” 또는 “자신이 대화의 당사자”이고, ②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방어 차원일 경우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방어 차원’이라는 것은 비교적 엄격합니다. 설사 내 귀에 대화가 들리더라도 그걸 녹음해 푸는 것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내 귀에 동료들의 대화가 들리니 나도 동료들과 대화 당사자인 거로 알고 녹음했다”는 변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직장 내 괴롭힘 신고인에서 전과자로 신분이 바뀐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동료들의 대화를 녹음한 사람이 “가청거리 내에서 타인 간의 대화를 청취할 수 있었다”는 항변을 한 사건에서, 대법원 2020도1007 판결로 유죄 확정됐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대표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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