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나무숲을 지킬 수 있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주영재 기자

주영재 기자

사시사철 푸릇해야 할 소나무숲이 갈색으로 생기를 잃더니, 이내 회색이 되고, 결국 여기저기에서 소나무들이 부러지고 뿌리째 뽑힙니다. 지난 4월 초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 일대를 다니면서 본 소나무숲의 모습입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휩쓸고 지나간 곳입니다. 숲에는 초록색 ‘무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소나무재선충과 그 매개충의 유충을 죽이기 위해 고사목에 약품을 뿌리고, 비닐로 덮은 ‘훈증 작업’의 흔적입니다.

소나무재선충은 길이 1㎜의 작은 선충으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이 선충에 감염되면 100% 죽게 됩니다. 감염됐다는 걸 확인한 순간엔 내부적으론 이미 대사활동이 멈춘, 사실상 죽은 나무입니다. 치료법도 없어서 예방주사를 놓고,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를 벌목해 확산경로를 차단하는 게 유일한 방책입니다. 하지만 피해지역이 워낙 넓어 방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입니다. 이 지역 소나무숲이 수년 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소나무숲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듯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광합성을 위한 충분한 수분이 있어야 하는데, 겨울 눈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건강이 약해진 상태라 소나무재선충병에 더 취약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솔수염하늘소와 같이 소나무재선충병을 옮기는 매개충의 활동 시기와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소나무가 겪는 고난에 인간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사과가 금사과가 되고, 오징어는 금징어가 되고, 김치는 금치가 되고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기후위기는 금사과, 금징어, 금치라는 말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왔습니다. 익숙했던 것들이 기후변화로 하나둘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다음 차례는 소나무일까요. 우리는 소나무숲을 지킬 수 있을까요. 숲을 보존하려는 마음과 실천이 있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고, 화석연료를 반대하고, 인간 중심주의를 버리고, 모든 생물이 공존하는 길을 택하는 것만이 숲을 지키고 우리의 미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