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위기도 기후위기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윤호우 선임기자

윤호우 선임기자

춥지 않은 겨울이 끝나는 즈음에 돌연 꽃샘추위가 찾아오더니 봄꽃들이 개화를 미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봄꽃들이 밀린 숙제를 하듯 개화 순서도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피어버렸다. 꽃잎이 떨어지자마자 여름 날씨가 4월 중순을 덮치고 있다. 어느덧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로, 그리고 ‘기후위기’라는 용어로 변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4·10 총선 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치는 ‘정치변화’를 넘어서서 ‘정치위기’로 격상됐다. 거대 양당의 대립 구조는 더욱 격화돼 진영 간 갈등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제3지대의 역할은 미미해졌다. 올바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져야 할 정당은 한 석의 자리도 확보하지 못한 채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유권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신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정권’을 우선 심판했다. 유권자가 내린 ‘정치적 1심 판결’이다. 차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패배자의 사과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하루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윤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과를 했다는 말만 전해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총선 결과만으로 스스로 위로를 해야 할 판이다. 여권은 여전히 이·조 심판에 몰두할 태세다. 22대 국회 역시 온통 사법리스크와 특검 등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커졌다. 야권 사법리스크에 더해, 오히려 특검 정국으로 여권의 사법리스크 마저 불거질 가능성이 커졌다. 사법리스크가 정치의 손을 떠나 사법부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불투명해진다. 뿌연 황사 하늘처럼 정치적 전망마저 어두워지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1차 피해자는 선진국이 아니다. 후진국의 기후 약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피해가 먼저 찾아간다. 정치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가 사법리스크로 격돌하는 동안 민생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늘도 생계 현장에서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약자들을 위해서라도 22대 국회는 사법리스크 정국에서 길을 헤맬 것이 아니라 민생 정치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