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 않은 겨울이 끝나는 즈음에 돌연 꽃샘추위가 찾아오더니 봄꽃들이 개화를 미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봄꽃들이 밀린 숙제를 하듯 개화 순서도 지키지 않고 한꺼번에 피어버렸다. 꽃잎이 떨어지자마자 여름 날씨가 4월 중순을 덮치고 있다. 어느덧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로, 그리고 ‘기후위기’라는 용어로 변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4·10 총선 결과가 말해주는 것처럼 정치는 ‘정치변화’를 넘어서서 ‘정치위기’로 격상됐다. 거대 양당의 대립 구조는 더욱 격화돼 진영 간 갈등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제3지대의 역할은 미미해졌다. 올바른 정치적 지향점을 가져야 할 정당은 한 석의 자리도 확보하지 못한 채 원외 정당으로 밀려났다. 유권자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신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정권’을 우선 심판했다. 유권자가 내린 ‘정치적 1심 판결’이다. 차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패배자의 사과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하루 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윤 대통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과를 했다는 말만 전해지고 있다. 유권자들은 총선 결과만으로 스스로 위로를 해야 할 판이다. 여권은 여전히 이·조 심판에 몰두할 태세다. 22대 국회 역시 온통 사법리스크와 특검 등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커졌다. 야권 사법리스크에 더해, 오히려 특검 정국으로 여권의 사법리스크 마저 불거질 가능성이 커졌다. 사법리스크가 정치의 손을 떠나 사법부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불투명해진다. 뿌연 황사 하늘처럼 정치적 전망마저 어두워지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1차 피해자는 선진국이 아니다. 후진국의 기후 약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피해가 먼저 찾아간다. 정치위기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가 사법리스크로 격돌하는 동안 민생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늘도 생계 현장에서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약자들을 위해서라도 22대 국회는 사법리스크 정국에서 길을 헤맬 것이 아니라 민생 정치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