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순수한 내 편 vs 부패한 네 편…‘극단의 정치’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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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지지자가 몰려 손을 내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 유세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많은 지지자가 몰려 손을 내밀고 있다. AP|연합뉴스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최근의 정치 지형에서 흥미로운 현상은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의 등장이다. 포퓰리즘 정치란 사회를 ‘순수한 우리 편’과 ‘부패한 네 편’으로 나누는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정치공학을 의미한다. 즉 극단의 정치다.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 내 일자리를 뺏어갔다고 믿는 이민자 그룹, 때로는 전문가 그룹도 부패한 네 편으로 설정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엔 개발도상국이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주로 나타났지만, 이제는 선진국이나 서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극단의 정치를 추구하는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경제적 성과는 어떨까. 최근의 한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마누엘 푼케 등 3명의 경제학자는 1900년부터 2020년까지 세계 60개 국가에서 포퓰리스트로 분류된 51명의 정치지도자가 재임하는 동안의 정부 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의 재임 기간 중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떨어지고 정치적인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 포퓰리스트 정치지도자들은 좌파와 우파를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한국, 일본, 미국, 영국, 대만 등의 경우에는 21세기 들어 최근에 발생한 것으로 분류됐다.

경제구조 변화에 미친 영향

포퓰리즘 정치의 부상은 현상적으로는 기존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불만에서 기원한다. 그래서 그 원인도 다양하다.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춰보면 탈공업화와 지식기반 경제로의 이행이라는 경제환경의 변화는 포퓰리즘 정치의 토양을 제공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디지털 기술은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 전반에 구조변화를 본격적으로 초래했다. 구조변화는 인더스트리 4.0,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지식 경제, 자본 없는 자본주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핵심은 인터넷 확산과 정보통신기술 발전의 가속화로 경제활동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에서 제조업 생산양식이 변화하면서 지식기반 산업의 비중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지식기반 산업은 제조업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부문에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정치적으로는 어떤 영향을 가져왔을까. 특징의 하나가 포퓰리즘 정치, 즉 극단의 정치가 선진국에서도 등장한 것이다.

대부분의 서방 선진국에서는 전체 고용에서 제조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고 있다. 미국은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1960년대에 27%로 정점에 이른 이후 지속해서 조금씩 하락해 최근에는 10%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의 제조업 비중은 1990년대 초반까지 24%대로 높게 유지됐으나, 이후에는 지속해서 감소해 2023년 현재 16%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1989년 28%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해서 감소해 지난해 2분기 기준 15.5%까지 낮아졌다. 서유럽 국가들을 보면 가장 최근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영국 9%, 프랑스 11%, 독일 19% 수준으로 과거보다 모두 다 크게 줄어들었다.

고용에 있어서 제조업의 비중이 줄고 대신 지식기반 산업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경제적 불평등도 확대됐다. 경제적 불평등은 근로자 간, 그리고 지역 간 격차의 확대로 나타났다. 일반 제조업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근로자들에게도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반면 지식기반 산업은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근로자를 더 많이 고용한다. 제조업기반 경제발전은 통상 중산층을 두껍게 하고 따라서 부의 분배가 보다 평등하게 이루어진다. 반면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고숙련 고학력 노동자들에게 더 보수가 높은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경제 전반적으로 소득의 불평등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강하다(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한 요인을 경제구조 변화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생산 과정의 자동화·세계화에 따른 공장 이전, 이민 노동자의 유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지역별 격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미국의 2020년 지식기반 산업 분포를 보면 캘리포니아 24.5%, 텍사스 8%, 워싱턴 6.2%, 뉴욕 5.2%, 매사추세츠 4.5% 등으로 이들 5개 주가 전체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미국 경제의 이러한 지형변화는 선거에서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지난 2020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후보 지지층과 바이든 후보 지지층의 지형은 산업지형에 대체로 일치해 나타났다.

한국은 아직 제조업 비중이 낮은 수준이 아니어서 미국이나 서유럽과 같이 급속한 탈공업화 단계는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지식기반 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특수한 상황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2021년 당시 전체에서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연구개발비의 경우 70%, 특허출원의 경우 64%로, 그 비중이 과거에 비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이러한 경제기반의 차이가 투표 성향의 차이로 아직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 한국의 투표에서 지역은 비수도권에서 지역 연고로 작용해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일러스트|김상민 기자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것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판짜기가 한창이다. 거대 양당에서는 후보자를 선정하느라 시끌벅적하고, 거대 양당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도 떠들썩하다. 선거철이 되면 반복되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움직임들이 얼마나 제대로 국민의 소망을 담아내고 있는가. 이들 움직임은 지역 경제의 당면 과제에 대처할 수 있는 정책 대안과 미래를 향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가. 정치권에서 이들 질문에 대해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다면, 또 유권자들의 바람과 정치권의 대응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면, 선거 결과와는 무관하게 정치에 대한 국민의 허무감은 커지게 된다. 결국은 어느 당이 승리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전체로 국민이 바라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번 선거가 ‘순수한 우리 편’과 ‘부패한 네 편’이라는 구호를 넘어 우리 경제의 도전과제에 대처할 대안을 점검하고 실행 방안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현명한 유권자들은 이러한 구호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편 가르기를 하는 후보자에게는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지역의 당면문제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자를 지지할 것이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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