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이경채 | ‘맛집’에 길든 내가 ‘짜글이’에 눈뜬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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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읍 운교리 ‘참푸른식당’

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인 짜글이 한상차림. 기본 반찬도 모두 주인이 직접 만든다. / 이경채 제공

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인 짜글이 한상차림. 기본 반찬도 모두 주인이 직접 만든다. / 이경채 제공

어릴 적부터 외식을 많이 하지 않았다. 밖에서 파는 웬만한 음식은 어머니께서 집에서 다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더 맛있게 해주셨다. 김치찌개, 된장국, 미역국, 오리탕, 계란찜 등 평범한 음식도 어머니 손을 거치면 특별한 음식이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만 싸가도 친구들한테 가장 인기가 있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무슨 음식이든 뚝딱뚝딱 빨리 만드셨다. 요리가 쉬워 보였고, 어머니가 힘들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그렇다. 삼겹살이나 오리구이 정도는 밖에서 사먹을 만도 한데, 어머니만 만나면 으레 집밥을 기대한다. 잠깐만 앉아 있으면 식당보다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니 굳이 외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한없이 게으른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면서 어머니의 집밥을 떠나게 됐다. 젓갈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전라남도 음식과 하숙집 음식은 많이 달랐다. 그래도 시원한 김치를 비롯해 모든 음식이 정말 깔끔하고 맛있었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첫 하숙집은 서대문구 창천동 창천놀이터 앞 건물 5층이었다. 하숙생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중학생 은진이 엄마가 하숙집 주인이자 셰프였다. 그는 매 끼니 밥을 고봉으로 주고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 주셨다. 혈기 넘치는 하숙생들이 잠을 포기하고 아침을 먹고, 저녁이면 밥을 먹겠다고 하숙집으로 서둘러 귀가를 했으니 말 다한 것 아닐까.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고향도 광주, 대구, 진주, 부산, 대전 등 제각각이어서 밥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서로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저녁식사 토론이 그대로 술자리로 이어진 적도 많았다. 첫 객지생활이어서 어리바리했던 ‘촌놈’에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준 창천동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군대에 다녀와서는 바로 복학하지 않고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이었던 어학연수를 호주 시드니로 떠났다. 시드니에서 좀 떨어진 퉁가비(Toongabie)라는 곳에서 하숙을 했다. 정말 희한하게도 하숙집 주인인 ‘레이(Rae)’ 아주머니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셰프를 하다 온 분이었다. ‘정말 내가 먹을 복은 타고났구나’ 아침과 저녁만 먹기로 하고 들어간 하숙집이었는데 비행기로 13시간 떨어진 먼 나라에서 온 빼빼 마르고 시커먼 청년이 불쌍해 보였는지 그는 아침, 저녁은 물론이고, 날마다 샌드위치를 싸주며 점심까지 챙겨주셨다. 이러니 외식을 하고픈 마음이 들겠는가. 호주 어학연수 시절에도 거의 밖에서 음식을 사먹을 일이 없었다.

전남 담양군 일대에서 쇠고기, 돼지고기와 짜글이 메뉴로 유명한 참푸른식당 외부 전경 / 이경채 제공

전남 담양군 일대에서 쇠고기, 돼지고기와 짜글이 메뉴로 유명한 참푸른식당 외부 전경 / 이경채 제공

레이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는 정말 일품이었다. 볼로네이즈 소스를 곁들인 스파게티, 미트파이, 칠면조 요리 등 각종 요리 덕에 지금도 어떤 맛난 서양요리를 먹어도 시시하게 느껴진다. 남편과 사별한 레이 아주머니는 뉴질랜드 출신의 ‘피터(Peter)’ 아저씨를 새로 만났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두 분은 결혼했다. 가족 친지들이나 친구들 모임이 생기면 항상 같이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감사한 마음에 시키지는 않았지만 구석구석 하숙집 청소를 했고, 내친김에 자동차 세차도 말끔하게 해치웠다. 얼마나 깨끗하게 했던지 레이 아주머니는 “1년에 한 번 할 대청소를 뭐 이리 자주 해주냐”고 말하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국경을 초월한 하숙집 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복학해서 묵었던 대학생활 두 번째 하숙집도 ‘맛집’이었다.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전라남도 담양의 ‘참푸른식당’ 얘기를 해볼까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아 고향을 다시 찾았다. 광주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였다. 광주는 내 손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는 완전 ‘서울 촌놈’이 돼 있었다. 봉선동이라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거기 살던 짝꿍(조성현)은 집에서 오리 여러 마리를 키웠다. 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오리알 프라이를 싸왔다. 그랬던 봉선동이 지금은 광주의 ‘대치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사택이 자리한 풍암동은 3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동네였다. 광주가 그리 낯설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분은 역시 어머니였다. 연세가 여든이 넘었는데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택에 들러 음식과 밥을 한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신다. 맛이 여전하니 외식할 일이 또 없다.

전남 담양의 참푸른식당에서 대표메뉴인 ‘짜글이’를 맛보고 있는 필자

전남 담양의 참푸른식당에서 대표메뉴인 ‘짜글이’를 맛보고 있는 필자

그렇다고 ‘집밥’만 고집할 수는 없다. 회사 업무 관계(KT는 AI나 클라우드 사업 등 다양한 디지털 테크 사업에 투자하며 새로운 시장을 물색하고 만들어 가는 중이다)로 사람들을 만나 신사업을 제안하고 시장을 개척하려면 외식이 필수다.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서빙로봇과 테이블 오더 시스템의 주요 수요처가 식당이라는 점에서도 맛집 탐방은 내게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 과정에서 ‘참푸른식당’이라는 맛집을 발견했다. 올초 문을 열자마자 쇠고기, 돼지고기 맛집으로 소문이 난 식당이다. 그중에서도 ‘짜글이’ 메뉴가 기가 막히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직장 동료들과 가장 자주 먹던 음식 중 하나가 김치찌개·짜글이였는데 이상하게도 광주에서는 김치찌개나 짜글이를 하는 집이 별로 없었다. 광주 발령 이후 김치찌개나 짜글이를 점심이나 저녁 회식 메뉴로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매운 걸 잘 먹지 못하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다. 참푸른식당을 알게 되면서 김치나 양념 맛이라고 생각했던 짜글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바뀌었다. ‘짜글이는 고기맛이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두툼한 돼지고기를 충분히 넣고 짜글짜글 끓이니 우러난 비계 기름이 남도 김치 특유의 젓갈 짠맛과 매운맛을 잡아줘 깊고 구수한 맛을 느끼게 한다. 참푸른식당은 기본 반찬도 손수 만든다. 대부분 손님이 기본 반찬을 비우고 한 번 더 시킬 정도다. 가격도 착하다. 담양을 찾을 일이 있다면 한번 방문해보라고 자신 있게 권한다. 식사 후 바로 옆 카페 ‘담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소금빵과 커피 한잔하는 호사까지 누린다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KT에서 커머스&콘텐츠사업을 시작으로 통신·방송 관련 법·규제 개선 업무를 담당하는 정책협력팀장, 미디어정책팀장을 경험하고 현장 영업·마케팅을 총괄하는 광주지사장으로도 4년간 근무했다. 지금은 광주·전남·전북·제주를 총괄하는 전남·전북광역본부의 혁신성장담당(상무보)으로 AI로봇, 테이블 오더, 클라우드, AI솔루션, 업무프로세스자동화 소프트웨어 로봇(RPA) 등 KT의 신규 미래사업 영업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경채 KT 상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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