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최은주 | 예술가를 지탱해준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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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상주식당

68년째 상주식당을 운영 중인 차상남 선생. / 최은주 제공

68년째 상주식당을 운영 중인 차상남 선생. / 최은주 제공

어느 날인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한 사람인 차계남 작가를 만났다. 아마 1990년대 중반이었지 싶다. 일본 오사카에서 행사가 있기도 했고 일본 현대 작가들의 동향도 살펴야 해서 길지 않은 출장길에 올랐다.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의 기무라 관장이 만찬을 준비해 줬는데, 그 자리에서 차 작가를 처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기무라 관장은 차계남 작가가 너무나 훌륭한 작가이며, 그의 예술이 추구하는 세계가 얼마나 독창적이고 야심만만한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차계남 선생의 도도한 첫인상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그렇게 내게 또렷하게 각인됐다.

미술계엔 유난히 미식가가 많다. 어느 지방에 가면 어떤 식재료가 좋고, 그것을 어떻게 요리해 먹으면 맛있으며 그런 음식을 잘하는 음식점으로는 어디가 으뜸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대구에 있다는 상주식당(추어탕 전문) 이야기는 박서보, 심문섭, 윤진섭 선생 같은 한국미술계의 거목들로부터 여러 번 들었다. 대구에 가면 반드시 상주식당에서 한 끼를 하거나 대구미술인들과의 모임을 그 집에서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상주식당이 차계남 작가의 언니분이 하는 집이라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대구 상주식당 실내 전경. / 최은주 제공

대구 상주식당 실내 전경. / 최은주 제공

지금부터 4년 전, 대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2019년 3월에 대구미술관장으로 부임하면서 난생처음 해보는 자취생활에 많은 것이 불편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건 음식 문제였다. 혼자 해먹자니 음식의 종류와 양을 정하기 힘들었다. 가뜩이나 한국 음식은 조리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는 편이어서 점점 요리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외식에 의존하는 상태가 돼갔다.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되지 않아 한계와 맞닥뜨렸다. 처음에는 맛있는 듯하다가도 이내 싫증이 났다. 짤 뿐더러 특유의 조미료 냄새까지 더해지니 코와 입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디 순하고 영양가 있으며 어머니가 해주시는 것 같은 음식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상주식당이 생각났다.

지난 7월 말 오랜만에 상주식당에서 만난 차상남 선생, 최은주 관장(가운데), 차계남 작가(오른쪽). / 최은주 제공

지난 7월 말 오랜만에 상주식당에서 만난 차상남 선생, 최은주 관장(가운데), 차계남 작가(오른쪽). / 최은주 제공

마침 차계남 선생이 일본과 프랑스에서 돌아와 대구에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함께하며 작업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도 나눌 겸 상주식당을 찾았다. 들어선 순간 알았다. 오래된 한옥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가지런히 누워 추어탕에 들어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배춧잎의 정갈한 모습에서 주인장의 정직성과 자부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빚은 사발에 담긴 추어탕을 먹으면서 추어탕의 예술적 경지를 경험했다. 간이 심심해 술술 넘어가면서도 영양 만점이었다.

이후 기력 보충이 필요하다 싶으면 습관적으로 그곳을 들렀다. 청양고추와 제피를 어느 정도 첨가해야 추어탕의 진미를 경험할 수 있는지 알게 됐고, 반찬으로 나오는 백김치의 담백함에도 눈을 떴다. 서비스로 주는 신김치는 한국 사람만이 아는 그 맛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주인장의 성함은 차상남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차씨 집안의 장녀다. 어머니 천대겸 여사의 음식 솜씨를 물려받은 그는 상주식당을 68년째 운영 중이다. 차상남 선생은 어려서부터 물을 긷고 배추와 미꾸라지를 손질하면서 어머니를 도와 식당을 일궈냈다. 동생들 뒷바라지도 그의 몫이었다. 성공을 기약하기 어려운 예술가 동생을 묵묵히 격려하고 지원했다.

고랭지 배추를 고집하는 상주식당 추어탕(위), 숙성 중인 배춧잎들. / 최은주 제공

고랭지 배추를 고집하는 상주식당 추어탕(위), 숙성 중인 배춧잎들. / 최은주 제공

상주식당 추어탕은 사태, 미꾸라지, 배추와 마늘, 청양고추와 제피를 주재료로 쓴다. 앞의 재료 세 가지는 추어탕 국물을 만드는 데 쓰고, 나머지 재료는 양념으로 사용된다. 이 집은 일체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원재료 고유의 맛과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양질의 사태와 국산 양식 미꾸라지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우려낸 다음 채반으로 거른다. 배추는 상주식당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재료다. 얼갈이배추나 우거지를 사용하는 추어탕집도 있지만, 상주식당은 고랭지 배추만을 고집한다. 좋은 배추를 구하기 위해 차상남 선생은 전라남도 해남에서부터 강원도 태백까지 계절을 따라 이동한다고 했다.

대구미술관을 떠나 지난 4월 서울시립미술관장이 됐다. 7월 말 여름휴가를 이용해 대구에 갔다. 그 맛을 느끼고 싶어 상주식당을 다시 찾았다. 차상남 선생은 올해 폭염이 심해 배추 구하기가 정말이지 어렵다면서 며칠 전에 강원도에서 값을 두 배로 치르고 배추를 들여왔다고 했다. 야물고 아삭하고 단 배추를 기어이 구해 언제나 그랬듯 손님에게 대접하고자 하는 추어탕 장인의 결의가 추어탕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나왔다. 맛있게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분이 예술을 했어도 아마 멋있게 하셨을 거야!’

차상남·차계남 선생은 새벽 4시에 일과를 시작한다. 차상남 선생은 배춧잎을 하나씩 다듬고, 차계남 선생은 한지 위에 먹으로 반야심경을 쓴다. 차계남 선생이 한지에 먹으로 써내려간 반야심경은 1㎝의 간격으로 켜진 후 꼬임 작업을 통해 실타래로 만들어진다. 이 실타래에서 풀려나온 실들이 화면을 씨줄과 날줄로 구성하며 차계남만의 독창적 추상화면으로 완성된다. 칠흑처럼 어두운 화면에서부터 때론 투명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환한 화면이 탄생하기도 한다. 자신의 평면작업에 대해 차계남 작가는 마음을 담아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중 가장 큰 마음은 평생 자신을 지지해준 언니에 대한 고마움임을 작가는 숨기지 않는다.

차계남의 작업은 대규모 조형작업으로까지 나아간다. 대구미술관이 제정해 2021년 첫 전시를 한 <다티스트>전에서 차계남은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리고 그 전시는 국내외의 열렬한 호평을 받았다. 차계남 선생의 아우인 차우철 선생은 차계남 작가의 아트 디렉터로서 작품 제작과 대형전시 및 출판물 전시 기획, 출판물 기획 등을 도맡아 진행한다. 한 사람의 뛰어난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 어떤 각오와 희생이 있어야 하는지를 상주식당 삼남매는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다. 매일매일 추어탕을 끓여 내는 일, 반야심경을 쓰고 그것을 실로 엮어내는 일, 전령사 역할을 하며 두 누님 사이를 오가는 일 모두 삶과 예술에 대한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그들을 통해 배운다.

필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89년부터 큐레이터 활동을 시작했다. 덕수궁미술관장, 경기도미술관장, 대구미술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근현대미술의 역사와 의미, 국제적 맥락을 다룬 전시를 국내외에서 다수 기획했다. 지금도 활발히 운영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전, 대구미술관의 <다티스트>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발굴제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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